고인 된 아들 대신 28년 모은 보훈연금 모교에 기탁

군대서 사고로 하반신 마비

신장병까지 얻어 23년 투석

투병 끝에 최근 세상 떠나자

 

노모, 고인 된 아들 대신해

28년 모은 보훈연금 5억원

아들 모교에 기탁해 ‘감동’

지난 11일 오전 서울 보훈병원 법당에 49재가 봉행됐다. 스님의 구슬픈 ‘회심곡’ 소리에 유족들은 눈물만 훔치고 있다. 상단 위 액자 속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 젊다. 그 앞에 흰 베옷을 입은 노모는 합장을 하고 연신 아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군 복무 중 부상을 당해 28년간 투병 끝에 숨진 아들의 보훈연금을 아껴 아들의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 5억 원을 쾌척한 이옥한(76·사진) 불자와 고인이 된 그의 아들 정선용 씨다.

성균관대 84학번인 고(故) 정선용 씨는 28년 전 군 복무 중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혈기왕성한 20대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에도 정 씨는 굴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대학을 졸업했고, 컴퓨터 조립회사에 취업도 했다. 하지만 장애인의 직장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화장실 가기조차 수월치 않아 참고 일하다 보니 신장에 무리가 온 것이다. 신장 투석을 시작하면서, 이옥한 불자는 아들의 두 다리가 돼 1주일에 2~3번 씩 보훈병원 치료를 전담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병원법당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들이 다쳤다고 나라에서 연금을 줬는데 첫 달에 40만원이 나오더라. 어느 부모가 그 돈을 쓸 수 있겠는가. 절대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아들에게 말하고 차곡차곡 모아뒀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아들의 연금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어머니.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자기 돈’이라고 말한 적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어느 때는 아들 수발에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옷이라도 사 입으라”고 권유했지만, 어머니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그간 모은 돈을 어떻게 쓸까 물었더니 역시나 “어머니 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절대 쓸 수 없다는 어머니,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정 씨는 “장애를 얻은 것에 대한 원망도 없이 나라에서 받은 돈이니까 돌려주고 싶다”며 자신의 모교인 성균관대학에 5억 원 기부를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17일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아들 대신 정 씨의 친구들과 함께 성균관대를 방문해 5억 원을 쾌척했다.

거액의 후원금을 낸 것에 대해 이옥한 불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우리 가족 누구도 그 돈을 우리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며 “어렵게 공부하는 학교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또 후배들이 아들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다.

49재에 참석한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은 ‘정선용 장학금’을 만들고 공과대학 캠퍼스에 ‘정선용 강의실’을 만들 것이라고 약속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보훈병원 법당 지도법사 태범스님은 “고인은 어머니와 함께 법당에 자주 들렀는데, 마지막 가는 길까지 무주상 보시를 실천해 큰 감동을 받았다”며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이옥한 보살이 아들의 49재에 참석 대중에게 절을 하고 있다.

[불교신문3129호/2015년8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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