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산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을 관개(灌漑)시설인 방산저수지(1986년 완공)를 만드는 바람에 현 위치로 옮긴 석불이다. 항일운동가였던 이남규(1855~1907)의 고택(충남 유형문화재 제68호)입구 한켠을 얻어 곁방살이를 하는 신세가 된 가련한(?) 부처님이시다.

한 뼘 가웃 정도 두께의 판형(板形) 대리석에 성글기는 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석불이다. 어여머리 모양의 편안한 얼굴은 전형적인 촌 아낙을 닮아 친근감이 간다. 나발이 없는 머리에 계주(啓珠)를 두어 형식을 갖추었으나 밋밋하게 생긴 코 그리고 오망부리 같은 입이 가운데로 모여 있어 볼이 상당히 넓다. 바튼 목에는 삼도를 새기고 통견의 대의 가운데로는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양손의 모습은 합장한 모습의 다른 표현이리라 생각되고 오른발이 왼발을 누르고 있는 전형적인 길상좌의 모습이다.

호듯한 얼굴 바깥쪽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화불을 네 분씩 여덟 분을 모셨고 가슴께부터 위쪽으로는 연잎과 연꽃 봉오리를 두툼하게 양각을 했다. 연잎 줄기는 불상의 옆면까지 뻗어 나가 안정감이 있어 보기 좋고 좌대 사면에도 생동감 있게 조각을 했다.

고려후대 특색 중의 하나인 불상의 지방화가 많이 진행된 듯 보이기는 하나 보기가 편한 맛에 만만하다. 가까운 예산 화전리에는 보물 제794호인 석조사면불상이 있는데 전국에 몇 군데 없는 귀중한 자료다. 둘러 볼만하다.

어찌됐던 저수지를 만드는 바람에 옮기게 됐으면 그 연혁을 자세히 밝혀 후대의 사람들이 헛보게 되는 실수를 하지 않게 해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응당 스님들이 해야 하는 일이나 여의치 못하면 관과의 협조체계를 갖추어 공조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될 것이다.

◀ 계신 곳: 충남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

[불교신문3125호/2015년7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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