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완호당 낙현스님 진영

1960년대 초 원덕문스님이 견본채색(絹本彩色)한 진영. 크기는 55×40cm. 사진제공=단청문양보존연구회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삼대 산맥으로는 금용 김일섭 스님, 만봉 이치호 스님, 월주 원덕문 스님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월주 원덕문스님(1927~1992)은 근대기에서 현대기 불교미술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화승 가운데 한 분이다. 그런데 이 스님이 불교 미술계의 거장이 되기까지 아낌없는 가르침을 준 스승이 바로 완호당(玩虎堂) 낙현(洛現)스님(1869~1933)이다. 1960년대 초 조성된 이 진영은 제자 월주스님이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그린 보기 드문 성보이다.

완호스님이 주로 활동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이 시기 일본은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말살하기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때문에 한국불교 포교는 물론이고 창작활동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완호스님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스님의 원력은 불화 하단에 기록되는 화기(畵記)의 표기에도 나타난다. 스님이 남긴 작품에 단 한 점도 일본 연호로 표기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일제가 강요하는 그들 연호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세존응화(世尊應化)라 표시하거나 불기(佛紀)를 끝까지 고집했다. 뿐만 아니라 스님은 당시 일본인이 선호하던 서양화법을 불화에 적용하지 않았다. 동양화법에 서양화법을 가미한 기형적인 화법이 유행하고 화파 간 특징도 사라지던 때 스님은 전통성을 고수했다.

스님은 또 1920년대 부산 범어사 말사인 복천사에 주석하며 불화소(佛畵所)를 개설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불상과 불화를 제작하고 제자를 길러내 복천사는 한국불교 3대 불화소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주로 양산 통도사와 범어사, 경주·선산 등지에서 활약했으며 신심과 정성이 대단했다. 불국사 석굴암에서 대불모의 원력을 세우고 기도해 이를 성취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제자들 또한 이런 스님의 그릇을 본받아 전통을 이어갔다. 대표적인 분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월주 원덕문 스님이다. 불교조각장으로 전국의 많은 불상을 조성해 온 권정두 선생도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현재 이들이 길러낸 2대 제자들은 한국 불교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완호스님이 전국 각지에 조성한 성보들이 문화재(부산 실상사 신중도, 통영 용화사 괘불도 등)로 지정되면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이수자인 김석곤 작가는 “완호스님의 정신과 가르침이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수준 높은 필력을 보여주는 성보”라며 “앞으로 조선후기 화승에서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화맥 흐름을 밝힐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신문3123호/2015년7월22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