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만에 출가 결심, 지금도 잘한 일”
“3일 만에 출가 결심, 지금도 잘한 일”
  • 울진=어현경 기자
  • 승인 2015.05.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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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9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나의 초발심 일기Ⅰ
울진 불영사 회주 일운스님

 

불영사 회주 일운스님은 “출가해 부처님 인연법을 공부한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며 산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꿈꾸던 여고생 마음공부 결심

교복 입고 가방 멘 채 입산해 ‘주경야독’

‘初心不可忘’ 새기고 시은 갚는 데 최선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소녀가 아름드리나무가 웅장한 산을 오르고 있다. 우연히 만난 비구니 스님 서너명을 아련한 눈길로 바라본다. 힘들었던 마음도 잠시, 마저 걸어 도착한 곳은 청도 운문사다. “학생 어떻게 왔나?” “마음공부 하러 왔습니다.” “그럼 있어 봐라.”

지난 12일 울진 불영사에서 만난 회주 일운스님의 이야기다. 스님의 원래 꿈은 사회복지사였다. “1960년대만 해도 가난한 시절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거지도 많고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회복지사가 돼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방학 때는 농아학교에서 봉사하면서 수화도 익혔다.”

교회에서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터라, 절에는 가본 적도 없고 스님 역시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스님이 될 수 있었을까. 불연(佛緣)을 만난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고등학생 시절 해인사로 출가했다가 부모의 반대로 스님이 되지 못했던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어느 날 역사 선생님 요청으로 인쇄작업을 거들었다. 무슨 글인가 하고 읽었는데 원효스님의 얘기였다. 해골의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이야기와 세상의 주인은 마음인데 내 마음을 찾지 않는다면 헛사는 것이란 글이었다. 종이를 1장 얻어와 100번은 넘게 읽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교사를 찾아가 마음공부 하는 법을 물었다. 답은 하나였다. 스님이 돼야만 공부할 수 있으니 청도 운문사로 가라는 것이다. 출가할까 말까 고민한지 3일째 되는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간 곳은 학교가 아니라 청도 운문사였다.

“3일 만에 출가할 수 있었던 건 제 결단력보다 과거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복지사가 돼 밥을 주고 옷을 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많은 대중들에게 부처님 연기법을 알고 무명을 깨치게 하는 것은 출가하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운문사에는 60~70명의 학인 스님들과 10여명의 노스님이 있었다. 대중이 생활하는 수행처에서 행자 일은 늘 고됐다. 장작을 쌓아두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저녁 땐 노스님 방에 군불을 지피고, 방마다 호롱불을 켰다. 새벽엔 불을 피워 밥을 하고, 숯은 따로 담아서 나물을 볶고 된장을 끓였다. 노스님 방에 요강을 비우고, 그을린 호롱불의 유리뚜껑을 닦는 것도 행자의 몫이다.

낮에는 보리밭, 감자밭에 나가 울력을 했다. 쉴 틈 없이 일했지만 힘들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7~8명의 행자들이 같이 생활했는데 일 하는 것도 재미있고 어른 스님 시봉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 때만 해도 동진출가자들이 많아 스무 살이 넘어 출가하면 늦깎이라고 무시했다. 동진출가한 저는 상대적으로 예쁨을 많이 받았다. 스님들이 서로 나를 상좌로 삼으려 했다는 말씀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어른 스님들이 탐내던 행자는 결국 수원 봉녕사승가대학을 설립한 묘엄스님의 상좌가 됐다. “열일곱에 삭발을 하고 사미계를 받았는데, 은사 스님이 공부에 집중하고 훌륭한 스님이 되라며 ‘일운’이란 법명을 주셨다.”

스님은 운문사에서 2년간 행자생활을 했다. 아침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널어놓고 오후에 다시 올라가 걷어 내리는 일을 반복했다. 낮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엔 좌선을 했다. 옛날 스님들이 화두 들고 공부했던 책을 보면서 스스로 화두를 정해 공부했다.

“큰방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위에 올라가 참선을 했는데 졸다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쿵’ 하고 큰 소리로 떨어지는 날이면 스님들이 ‘도둑이 들었다’며 놀래 일어났다. 그것 때문에 대중공사까지 당했다.” 주경야독 하던 시절, 힘들었을 법도 하지만 신심으로 모든걸 이겨낸 시간이기도 하다.

1971년 은사 묘엄스님과 함께 일운스님도 운문사를 떠나 봉녕사로 자리를 옮겼다. 은사 스님을 시봉하다 “내면을 닦아야겠다”고 결심한 스님은 1984년 대만 유학길에 올랐다. 묘엄스님은 “상좌 떼버린다”며 만류했지만, 상좌의 결심을 꺾지 못했다.

처음 몇 개월간은 중국어만 배우던 일운스님은 타이베이 중화불학연구소 석사과정에 합격해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가 강원(승가대학)에서 경전을 새기는 것과 달리 대만에서는 한역대장경은 물론 티베트, 서장어 경전과 일본 불교학 연구서적까지 참고했다. 덕분에 학문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3년 과정을 마친 스님은 대만 스님들의 수행현장을 돌아봤다. 계행을 철저히 지키고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스님들의 삶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포교현장을 누비는 대만 스님들은 충격에 가까웠다. 산중불교가 아닌 대중 속에 살아 숨 쉬는 불교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스님들이 빵집에 들어가면 주인이 알아서 식물성 기름으로 튀긴 빵을 주는 모습조차 놀라웠다고 한다. “선 수행을 중시하는 한국불교가 지계정신이 희박한 반면, 대만은 계행은 철저하지만 선 수행 풍토가 없었다. 두 나라의 불교를 비교하면서 계행을 튼튼히 하며 선정을 닦고, 지혜를 이뤄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대만에 있으면서 묘엄스님과 봉녕사승가대학 스님들을 초청해 한국과 대만불교 교류세미나도 열었다. 대만불교에 매료된 묘엄스님은 더 이상 ‘상좌 떼버린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대신 봉녕사에 들어와서 학인들을 가르치라는 당부로 레퍼토리가 바뀌었다. 은사의 바람과 달리 일운스님이 택한 곳은 불영사였다.

“문중 어른 스님이 대만까지 찾아와 불영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산중에서 대중 스님과 함께 사는 삶을 늘 발원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은사 스님의 뜻을 따르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에 대만 스님과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봉녕사에서 500승제를 연 뒤 불영사로 향했다.”

그 때만해도 첩첩산중의 작은 사찰이었다. 스님은 불영사에 와서 25개 당우를 짓고,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지역민들을 위한 사찰음식대축제도 열었다. 지난해에는 7000~8000명이 찾는 대규모 행사로 탈바꿈했다. 2011년엔 만일결사회를 꾸려 제3세계 어린이를 돕고, 스님이 후원자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쓴 ‘마음편지’의 독자는 3000명에 달한다. 날마다 보낸 편지글을 모은 책이 최근 발간된 <산사에 홀로 앉아>다.

스님은 “모든 게 시은을 갚기 위해 한 일”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스님이 내놓은 결과는 대중을 감동시킨다. 초심불가망(初心不可忘), 처음 출가를 결심했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심이 있어야 발심이 되고, 발심이 돼야 신심도 깊어진다. 발보리심이 돼야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이뤄진다”는 스님. 스님의 말처럼 평범한 이들도 초심을 평상심으로 삼는다면, 우리의 삶 또한 주변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다시 편 초발심자경문…처음의 마음 일깨워줘

<초발심자경문>은 지눌스님의 ‘계초심학인문’,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 야운스님의 ‘자경문’을 하나로 엮은 책이다. 대중생활을 할 때 지켜야 할 규범이나 수행자로서의 위의, 출가자가 마음에 새겨둬야 할 지침들이 수록돼 있는데, 어른 스님이 후학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당부이기도 하다. 입산한 행자들이 가장 먼저 읽는 책으로, 요즘엔 행자교육교재에 한문과 한글이 수록돼 있어 쉽게 공부할 수 있고 사미 사미니계 수계교육 때 강의도 진행된다.

발심 출가해 신심이 충만했던 시절 처음으로 익힌 책이다 보니, <초발심자경문>은 스님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문 원문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는 스님도 적지 않다.

‘계초심학인문’에서 지눌스님은 초심자와 일반 대중, 수좌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행동을 일러주는데 그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라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내용들이다. “대중방에 머물 적에는 양보해 다투지 말고 서로 도와주고 논쟁을 벌여 승부하는 것을 삼가”라고 가르치고 “남의 신발을 잘못 신지 않도록 조심하며 앉고 눕는 차례 넘음을 삼가며, 손님을 대하여 말할 때는 절 집안의 좋지 않을 일을 드러내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또 “법을 대함에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대하고 “배우는 이를 따라서 다만 입으로써 지껄이지 말라”고도 했다.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은 수행자의 발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간절하기 이를 데 없다. 수행자가 지낼 곳은 안락한 곳이 아닌 “푸른 솔 깊은 골짜기”이고 “배고프면 나무 과실을 먹어서 주린 창자를 위로”할 뿐이다. “절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차더라도 불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며 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더라도 먹을 것을 구하는 생각을 내지 마라”는 스님은 치열하게 정진할 것을 독려한다.

‘자경문’은 수행자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10가지 경책문이다.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선우를 사귀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며 다른 이의 험담을 말하지 않으며, 대중과 살면서 마음을 평등하게 내는 것 등이다.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스님은 “입산한 행자가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는 이유는 여기서 말한 것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면 제대로 ‘중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발심한 이도, 오래된 스님도, 혹은 사회생활을 하는 재가자들도 생각날 때마다 찾아 읽으면 공부하는 데 살아가는데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신문3108호/2015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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