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홀어머니 부양 부담…효도는 의무인가

 

어려운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양에 대한 커다란 의무감을 느끼고 계시네요. 동시에 그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계시고요. 하지만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없거든요. 의무가 무거운 짐으로 경험되는 한, 그 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지는 건 누구에게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의무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은 부처님에게서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난 일이었어요. 왕족의 의무, 가장의 의무, 자식의 의무 등과 같은 그 모든 의무를 떠나 부처님은 출가하셨죠. 왜냐하면, 부처님은 그 어떤 고귀한 의무의 실천이라도,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정말로 드러내고 싶었던 온전한 현실은 의무 속에서는 발견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온전한 현실은 의무 밖에 있습니다. 그 현실을 함께 발견하기 위해, 질문자님 본인에게 알려졌던 하나의 물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해보세요. ‘어머니가 날 낳아줬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내가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머니의 입장에서 이 물음을 똑같이 적용해보세요. ‘내가 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내가 이 아이를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새벽에 피곤한 눈을 비비고 일어나 질문자님에게 젖을 물리며, 지하철 안에서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질문자님을 안고 얼굴이 빨개진 채, 초등학교 입학식을 위해 새로 산 바지에 응가를 뭉개고 바보처럼 웃고 있는 질문자님의 앞에서, 질문자님의 어머니는 얼마나 수없이 이 물음을 떠올리셨을까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어머니가 이 물음을 거듭한 결과, 양육을 의무라는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이셨다면 과연 질문자님이 지금 이처럼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었던 현실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는 그 무거운 짐에 치여 이미 쓰러지셨거나, 이미 도망가지 않으셨을까요? 결국,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은 단 한 가지일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상기한 물음의 대답을 정확하게 발견하셨다는 것입니다. ‘아! 내가 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양육해야 할 의무는 없구나! 의무가 아니구나! 나는 그 의무 앞에 언제라도 자유롭구나!’ 그리고 의무의 희생자가 아닌 가장 자유로운 자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질문자님을 양육해왔던 어머니의 모습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서 바로 여기에 놓여 있습니다.

의무가 아니라면 이 현실을 만든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이를 감히 사랑이라고 표현해보겠습니다. 어머니는 의무를 고민하는 그 모든 물음 앞에서, 질문자님을 무거운 짐처럼 느끼는 의무의 삶을 선택하기보다는, 질문자님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삶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질문자님입니다. 그러니 이제 질문자님께서 대답하실 차례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이 한 번뿐인 고귀한 삶을 얻으신 질문자님 스스로는 당위적인 의무의 희생자가 되어 삶을 흘려보내고 싶으신가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 삶을 꽃피우고 싶으신가요?

[불교신문3106호/2015년5월16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