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공생회 케냐지부, 태공ㆍ만해학교 준공식 현장

 

가는 곳 마다 ‘카리부(환영)’

고통 덜고 기쁨 나누는
‘깨달음의 사회화’ 사상
아프리카 평화에 기여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았을 때 거리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예요. 온통 검은 사람들 뿐이고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런데 가까이서 겪어보니 모르는 사람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눈인사를 해오고, 금세 친근감이 싹텄죠. 작은 도움을 주었을 뿐인데 열렬히 환호하는 것을 보면서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만큼이나 크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이런 활동이 확대되면 인류 행복과 세계평화가 저절로 이뤄질 수 있을 겁니다.”

지난 4월30일 오전, 나이로비에서 동쪽으로 80여km 떨어진 카지아도주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월주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천에서 아부다비까지 10시간, 2시간대기, 다시 나이로비까지 6시간 등 장장 18시간의 비행에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기다리는 주민들 곁으로 한시라도 바삐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인 것 같았다. 목소리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자신감에 차 있었다.

월주스님이 이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방문한 것은 이날 스님의 법호를 딴 ‘올로레라 태공초등학교’의 준공식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 이 학교는 지구촌공생회가 2003년 창립한 이후 제3세계에 지어진 50번째 교육시설이기도 하다. 스님은 지난해 세수 80, 출가 60주년을 맞았다. 상좌와 손상좌를 비롯해 금산사 사부대중, 후원자 등이 1억6000만원의 학교 건립기금을 마련해 탄생한 바로 그 시설이다. 스님이 이번 케냐 방문을 더욱 뜻 깊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전7시30분 나이로비를 숨 가쁘게 빠져나온 4륜 구동차는 스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쉼 없이 바퀴를 굴렸다.

두 시간 쯤 지났을까. 눈에 익숙한 표지판 하나가 들어왔다. 월주스님의 법호를 딴 학교의 위치를 영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표시판이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12km를 더 가면 된다는 내용이 있어 찾아가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표지판이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비포장도로가 시작됐다. 전날 내린 비로 길 곳곳이 움푹 패여 있었다. 정부로부터 트렉터를 지원받아 길을 닦았다고 지구촌공생회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겪는 오지도로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자동차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이런 작은 마을에 10칸짜리 신식건물이라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30여분 이상 달렸다. 그러자 태공초가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눈 앞에 나타났다. 학교 입구에서부터 마사이 부족의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건물로 들어갔다.

공식적으로 준공식 행사였지만 마을주민들에게 이날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400여명의 참가자 가운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화려한 전통의상으로 차려입고 지구촌공생회 관계자들을 환영했다. ‘까리부 굿 헨즈(환영합니다 지구촌공생회)’ ‘아산떼(감사합니다)’ 등 현지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공식 행사는 지역 목사의 축하기도로 문을 열었다. 종교와 인종을 초월해 ‘인류는 한 가족’을 슬로건으로 하고 있는 지구촌공생회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번듯한 학교를 지어준데 대한 지역 관계자들의 감사 인사말이 있었다.

데이비드 응케디엔네 카지아도주 주지사는 “지구촌공생회와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한다”며 “우리 마을과 이 장소를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마을을 대표해 행사에 참석한 다니엘 레테마 씨는 “아이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며 “소치는 노동력으로만 아이들을 대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사장 월주스님은 기념사를 통해 “불제자로서 삶을 사는 동안 깨달음의 열매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깨달음의 사회화’를 주창하고 실천해 왔다”며 “오늘은 제 삶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증명하는 자리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지금처럼 여러분들이 학교를 사랑하고 가꿔나갈 때 지구촌공생회의 관심과 지원도 더해질 것”이라며 “많은 분들의 공덕으로 이곳 아이들은 케냐 발전의 동량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기준 주 케냐 대사관 총영사, 김은섭 코이카 케냐 사무소장, 한정은 한울안 지부장을 비롯해 하사 켈로 카지아도 행정부 대표, 모세스 사쿠다 국회의원, 존 마린타 하원의원 등이 참석해 학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오후 3시. 환호하는 주민들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태공초에서 자동차로 40여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신규 식수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지부장 탄하스님에 따르면 5곳의 예정지 가운데 지역 타당성 조사와 주민들의 자발적인 관리능력 등을 고려해 이곳을 최종 후보지역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후보에 오르지 못하고 중도 탈락한 마을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식수 사업 대상지로 부적절한 지역으로 결정 나면 가차 없이 발길을 돌려야 한다.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모를 눈물을 쏟기도 했다는 탄하스님의 말에 순간 가슴이 찡했다.

‘레소이트’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반쯤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도 약속 장소에는 30여명의 마사이 주민이 전통복장을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 지구촌공생회 관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면장이 아침부터 200여명이 모여 있다가 비구름이 몰려와 식수 대상지역 인근에 사는 주민들만 남았다고 귀띔했다.

이사장 월주스님이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이곳에 나와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인사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에 마을 대표는 “식수 시설이 들어서면 700여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주민들과 단합해 시설을 잘 지켜낼 자신이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사장 스님과 지구촌공생회 관계자들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시설을 제대로 가꿔나갈 주민들의 자활의지를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월주스님은 주민들과 헤어지기 직전 작은 기도의식을 가졌다. 스님이 ‘생명의 지하수가 반드시 나오기를 기도합니다’를 마사이어로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손을 모으고 자신들의 말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 이미 생명의 물은 주민들 곁에 와 있었다.

케냐 카지아도 지역에서 이미 지구촌공생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2007년 한국 NGO로는 처음으로 마사이 부족이 모여 사는 카지아도 지역에 지부를 개설, 현재 단일 NGO 단체로는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교육지원사업은 물론이고 마사이 부족의 정착과 농업기술 보급을 위한 6000여 평 규모의 인키니 농장, 농장 저수지 기능을 하는 민세지 건립, 식수지원사업 등 차별화된 사업으로 타 NGO의 모범이 되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2일 오후에는 또 하나의 교육시설이 탄생했다. 월주스님이 2012년 수상한 만해대상 상금 5000만원 전액을 기부한 ‘올마피테트 만해중고교’의 준공식이 거행됐다. 만해중고교는 지구촌공생회의 45번째 시설. 풀과 함석판으로 지붕을 얹은 움막 같은 곳에서 수업을 했던 아이들은 이제 안전한 시설에서 새로운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진 교회시설을 빌려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날 월주스님은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처럼 식민지배와 국내분쟁 등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케냐가 만해의 생명평화 사상을 통해 번영의 길로 나아가길 염원한다”며 “학생들이 케냐 발전의 동량이 되어 인류의 공생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건립기금을 후원해준 금산사와 영화사, 위봉사, 은적사 등 17개 사찰 사부대중과 200여명의 지구촌공생회 후원자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했다. 행사는 준공식 기념행사, 학생들의 축하공연, 선물증정식, 기념식수, 식수 현판식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시찰 기간 동안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시찰 5일째인 1일, 늦은 오후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가던 중 오프로드에서 1호차를 뒤따라오던 2호차 바퀴가 웅덩이에 빠졌다. 차는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상태가 심각했다. 한 동안 오도 가도 못하고 사방이 어두컴컴한 길에 갇혀 있었다. 다행히 앞차와 밧줄을 연결해 차를 빼내는데 성공,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찰 마지막 날 나이로비로 들어가는 길에는 바퀴 한 쪽에 바람이 빠졌다. 2차선 도로가에 급하게 차를 세우고 바퀴를 갈아 끼웠다.

나이로비로 다시 돌아오는 길, 월주스님에게 물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버거운 오프로드로 오지로 다니는 게 피곤하지 않느냐고.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길을 나설 때마다 새롭고 즐겁다. 작은 걸음이지만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을 만나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게 내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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