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지진의 잔해 걷어내는 네팔인들

“집안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요. 무너진 건물 사이로 아직 꺼내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마스크가 없어 냄새에 계속 시달려요. 냄새도 견디기 힘들지만 마을에 전염병이 돌까봐 걱정이 커요.” 지난 29일(네팔 현지시각) 네팔 지진 피해 조사를 위해 카트만두 계곡에 위치한 박타푸르 지역을 돌아보던 조계종 긴급재난구호봉사단(단장 각평스님)을 붙잡고 한 주민이 말을 걸어왔다. “부디스트? 발룬티어?” 봉사단이 입은 노란조끼 뒷면에 새겨진 ‘Korea Buddhist Volunteer’를 본 네팔인이 “도와 달라” 눈물로 호소했다.

조계종 긴급재난구호봉사단이 히말라야의 눈물 앞에 섰다. 지난 25일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에 의해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네팔 지진은 전 세계를 비탄에 빠트렸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가 있는 곳이자 신들의 성지인 네팔을 돕기 위해 조계종은 사고 다음날인 26일부터 구호활동을 위한 자료조사 및 봉사단 결성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28일 오후3시(네팔 현지시각) 현지에 급파된 긴급재난구호봉사단은 방콕을 경유해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 한국 정부와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봉사단들 속에 섞여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긴급구호봉사단은 이날 여독을 채 풀기도 전에, 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카트만두 계곡에 위치한 3개 도시 중 하나인 빅타푸르 지역을 먼저 찾았다. 가장 큰 피해지역 중 하나인 빅타푸르 지역을 찾은 봉사단을 제일 먼저 반긴 것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측하게 떨어져 나간 건물 외벽과 갈라진 땅바닥, 한켠에 쌓인 벽돌 더미 등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들이었다

‘신자들의 도시’라 불리는 빅타푸르는 넓은 광장과 함께 예술적 가치를 지닌 종교 건축물, 사원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그러나 불과 3일 전만해도 ‘신들의 도시’라 불렸던 박타푸르의 아름다운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돌무덤 사이 사이로 보이는 코끼리, 숫양, 사자 등의 조각만이 남아 사원이 있었던 자리를 짐작케 할 뿐이었다.

여진을 피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빗물을 겨우 막을 수 있는 비닐 천막 아래 흙바닥에 얇은 모포를 덧대고 앉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의 기도처이자 만남의 장소였던 광장은 이재민 대피소가 됐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가족과 함께 웃고 떠들던 주민들의 일상은 천재지변 앞에 외마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네팔인들은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쫓겨나 길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제대로 된 구호품도 구조장비도 아직 없지만 주민들 스스로 나서 곳곳에 공동부엌과 임시거주지를 만들었다. 양배추를 비롯해 집안에 남은 향신료로 비상식량을 만들어 나누고 잔해 속에서 꺼낸 물품들로 하룻밤의 추위를 넘기고 있었다. 고지대인데다가 악천후까지 겹쳐 추워진 날씨 탓에 장작더미와 옷가지들을 모아다 불에 태워 몸을 덥히는 모습에서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고 싶은 네팔인들의 간절한 바람을 볼 수 있었다.

무너지고 갈라져버린 것은 건축물들만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맨손으로 거리에 내팽개쳐진 주민들의 모습에 봉사단의 마음도 무너지고 갈라졌다. 긴급구호봉사단은 이날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고 싶다’며 임시거주지로 마련된 천막에 들어가 “먹을 것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잠자기에 불편하지는 않은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등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관심을 보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정부가 나서 전기와 수도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 또한 언제 차단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제구호봉사단 또한 세계 각국에서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지진피해 발생 지역이 광범위해 곳곳까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지진의 잔해 속에서 맨 손으로 나무기둥과 합판을 치우고 있던 비스누(39) 씨는 “내 형수가 아직 저 돌더미 아래 묻혀있다”며 “지난 3~4일간 시체를 찾기 위해 나무와 돌을 건져내려 애를 썼지만 장비가 부족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비스누 씨는 이어 “시장에 장을 보려고 길을 나서다 참변을 당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형수의 죽음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과 달리 돌을 헤집던 손은 찢어지고 할퀴어진 상처로 가득했다. 네팔인들은 ‘절망’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 맨손으로 지진의 상처를 걷어 내고 있었다.

한편 조계종 긴급재난구호봉사단은 다음날 시신화장터인 버스파티 지역을 찾아 현지 조사를 이어간다. 이후 카판지역에 위치한 세종학당을 방문해 베이스캠프 지정 적합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이후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과 미팅 후 피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일정을 점검하게 된다. 긴급재난구호봉사단장 각평스님은 “피해 주민들에게 생필품 이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것”이라며 “먼저 구호활동의 거점이 될 베이스캠프의 적합 지역을 물색하기 위해 가능한 빨리 피해 지역들을 직접 가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교신문3101호/2015년4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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