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원, 설정스님과 함께하는 그리스, 터키 문명기행 나서

메테오라 바위절벽에 선 스님들 뒤로 벼랑 끝에 세워진 수도원이 보인다.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종교간 평화가 사회적 과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게다가 몇해 전부터 개신교의 땅밟기와 같은 행위가 문제가 되면서 종교의 공존에 대한 고민들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 스님들이 그리스정교회를 국교로 하는 그리스와 국민의 98%가 이슬람교인 터키로 문명기행을 떠나 주목된다.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스님)의 올해 첫 해외순례 연수프로그램인 ‘설정스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 터키 문명기행’이 그것이다. 스님들은 그리스 터키 지역의 타종교 성직자의 모습과 신자들의 생활상을 엿보며 견문을 넓혔다.

지난 6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과 40 여명의 스님들은 12시간 비행 끝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다시 그리스 아테네로 향했다. 현지시각 7일 오전8시경 아테네에 도착한 스님들은 아크로폴리스로 자리를 옮겨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신전과 아크네신전 등을 돌아보며 그리스문명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그리스문화가 세계문명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정치 경제 언어 문화 종교 철학 예술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유럽인들이 생각한 최고의 미학은 그리스시대로의 회귀일 정도였다. 그리스문화는 인도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3세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간다라지방 등 인도북부에 헬레니즘 문화가 전래된 것이다. 인도 쿠샨왕조 때 탄생한 간다라미술이 그것이다. 간다라미술은 서역을 통해 중국으로 전달됐고 우리나라 석굴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7일 아테네에 도착한 스님들은 아테네 시내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무명용사의 비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그리스인들이 참전했던 곳이 기록돼 있는데 루비콘, 키프로스 외에 한국도 있다. KOPEA(그리스어로 코레아라고 읽는다)가 바로 한국을 뜻하는데, 6.25전쟁 때 그리스인들도 참전했음을 알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스님들 모습.

오후에는 아크로폴리스를 찾았다. 이곳에는 파르테논신전과 디오니소스원형극장, 아크네신전 등이 남아 있다. 이민족의 침입과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웅장한 파르테논신전의 남다른 기둥과 대리석으로 6명의 여인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아크네신전 등은 그리스인의 뛰어난 건축과 조각술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이와 함께 스님들은 가장 오래된 원형극장인 디오니소스원형극장과 음악을 듣는 ‘오디오’의 어원이 된 오데온 극장 등을 둘러보며 화려했던 그리스문화를 짐작했다. 이어 필로파포스 언덕에 올라 간단한 입재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설정스님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지가 죄악이라고 말한바 있다”며 “이성과 지성이 함양되지 않으면 지식이 향상된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발붙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세운 원인 부처님 뜻을 펼쳐나가려면 한국불교도 지성과 양심이 성장해야 한다”며 함께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입재식을 갖는 스님들. 멀리 파르테논신전이 보인다.

아테네 시내를 돌아본 후 중부 메테오라로 향한 스님들은 8일 오전7시부터 그리스정교회 수도원을 둘러봤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매달린’이란 뜻을 가진 곳으로 내해가 융기해 크고 작은 바위 우뚝 솟아나 산을 이룬 곳이다.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은둔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부터인데 바위에 난 구멍마다 들어가 생활하다가 수도사들이 늘어나면서 수도원이 차츰 건립된다. 14세기 초 성아타나시우스가 처음 건립됐고, 30~40개가 밀집돼 있을 정도로 많은 수도사들이 메테오라에서 지냈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을 차츰 줄어들어 지금은 6개만 남아 있다.

스님들이 이날 방문한 곳은 니콜라우스수도원이다. 1410년 지어진 이곳 역시 깎아지른 바위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3명의 수사만이 남아 있는데, 이날 스님들을 맞이한 수사는 올해 85세인 세라핌 수사다. 세라핌 수사는 40여 년간 아토스산 수도원에서 생활하다 이곳 니콜라우스수도원으로 온지는 1년가량 됐다고 한다.

메테오라 니콜라우스수도원을 찾은 스님들은 세라핌 수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설정스님이 “스님들이 산에서 수행하는 것은 비슷한데, 수도의 근본목적은 다를 것이다. 수도사들은 무엇을 위해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냐”고 묻자 세라핌 수사는 “그리스도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바친 것”이라며 수도원 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의 스님들과 처음으로 대면한 수사는 40여 년간 은둔하며 생활한 때문인지,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보다는 본인이 믿는 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설정스님은 “불교와 기독교의 신앙체계가 전혀 다르다. 불교는 자력신앙이 크지만, 이들의 타력”이라며 “유일신을 믿는 이들의 단점이라고 하면 아집 편견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런 신앙의 차이점을 가진 집단과 종교자유와 평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며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간 평화의 어려움을 우려했다.

또 스님은 “결국 신앙이라는 것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행복과 평화를 위해 생겨난 것인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종교로서 의미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스정교회 수도원 수사와의 만남에서 스님들은 종교간 화합과 이웃종교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수도원 방문을 끝으로 아테네를 떠난 스님들은 터키 차타칼레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트로이 목마’의 역사적 현장인 트로이를 둘러보고 세계문화도시 카파도키아 등을 순례한 뒤 15일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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