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붓다맘봉사회

목요일마다 영등포 쪽방촌에 먹거리를 한 트럭씩 실어 나르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목요일 하루만 봉사한다 생각하면 착각이다. 매주 ‘목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월화수금토일 목요일만 빼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후원을 청하느라 목이 쉬고 마음이 지친다.

수천포기 김치를 담궈서 수년째 무주상보시하는 이름없는 스님이 있는가하면, 라면 한 박스 쌀 한 가마 인색한 사람들도 숱하다. 생각지도 못한 제과점에서 목요일 시간맞춰 뜨끈한 빵이라도 보내주면 고맙다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빵집 사장님 바짓자락을 물고 늘어져야 할 판국이다. “이 빵…계속 대 주실거죠?”

명절음식 장만하듯 매주 목요일이면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는 조계사 붓다맘봉사단. 직접 만든 음식을 쪽방촌 주민들에게 배달까지 해준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은 목요일마다 기다리는 트럭이 있다. 뜨듯한 쑥된장국에 갓 구워낸 가자미와 고등어조림, 계란말이와 멸치조림에 오징어무침까지 수랏상이 따로없는 도시락이 배달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요일 저녁부터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 이 날만을 기다린다.

치매를 앓고 있는 조점이(88, 가명) 할머니는 “우리 새끼들이 어미 밥배달 온다”고 좋아라했고, 도박에 빠져사는 김명식(66, 가명)씨는 “아우들이 행님 식사를 챙긴다”며 자랑삼아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그러나 이토록 맛난 도시락을 공짜로 배달해주는 봉사자들에게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반찬투정을 하기도 하고 늦게 온다며 투덜댄다. 16년째 영등포 쪽방촌에 도시락 배달을 해온 김윤석(53)씨가 말한다. “이분들 이래봬도 입은 청와대예요. 하하하.”

지난 3월26일 오전10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허름한 건물 2층. 맛있는 된장내음이 진동을 하고 한쪽에서는 생선을 굽고 계란말이를 부치느라 분주하다. 커다란 냉장고 두 대가 서 있고 공간마다 크고작은 도시락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붓다맘봉사회라고 쓰여있는 조끼를 입고 음식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은 조계사 신행모임 구(舊) 쪽방도우미봉사단이다.

대형식당 조리실처럼 손빠르게 착착 자기소임을 다하고 있다. 어찌보면 종가집 명절날 부엌풍경과 같다. 음식이 맛깔스럽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쪽방도우미봉사단은 16년째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에게 보낼 음식을 이렇게 직접 장만했다.

“교회나 여타 모임에서 쪽방촌에 음식을 보시할 때, 대부분 복지시설에서 남은 음식을 받아서 포장하거나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판매음식들을 수거해서 전해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손으로 가장 좋은 식재료를 제철에 맞게 구입해서 이렇게 목요일마다 매일 아침 직접 조리합니다. 이렇게 하면 확실히 맛있지요.”

박부득(60) 회장은 쪽방도우미봉사단 맏언니, 아니 맏형(?)이다.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쪽방촌 도시락 배달에 손을 놓지 않고 회원들을 이끌어온 듬직한 형님같은 존재다. 박 회장은 요즘들어 쪽방촌 후원손길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어 힘겹게 운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 우리가 직접 이렇게 요리하는 것이 몸은 힘들지만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갑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조금씩 시간을 내어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몸으로 뛰면 그만큼 돈 들어갈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정말 힘드네요.”

쪽방촌도우미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김윤석씨는 현재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경찰공무원이다. 1990년대 마포서 시절 보육원 아이들을 돌봤고 2000년대는 영등포경찰서 강력반에서 일하면서 인근 쪽방촌 주민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 날 직접 트럭운전을 하면서 도시락 배달을 가는 김 경위에겐 여러차례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따 형님 지금 간다마….” 나보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거라며 웃지만 행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쪽방마다 도시락을 들고 돌아다니는 그는 이 집 저 집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고장난 수도를 고쳤는지, 협약치과에서 무료로 충치를 잘 뽑았는지, 삐걱한 다리는 괜찮은지, 어젯밤 도박에선 잃었던 돈을 다시 땄는지, 끊은 술은 다시 마셨는지 잘 참고 있는지….

김 경위는 쪽방촌도우미 중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또다른 구상을 하고 있다. “밥만 준다도 되겠는교? 멀쩡한 사람도 쪽방에 살면 평생 주는 밥만 먹고…. 이젠 재활입니다. 세상밖으로 이들을 끌어내야 합니다.”

[불교신문3096호/2015년4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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