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삶에서 가장 공포를 느꼈던 순간’으로 앙코르와트 3층 성소계단을 오르내릴 때를 꼽았다. 70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에 돌계단의 폭이 좁아서 발 디디기도 쉽지 않은 길, 최대한 몸을 엎드려 계단과 한 몸이 되어 오르고 내려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나무계단을 덧씌우고 난간을 만들어놓았지만, 옛 계단을 보노라면 당시 그곳을 오르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는 데 공감하게 된다.

이토록 발길을 힘들게 만든 까닭은 그곳이 신이 머무는 천상계이기 때문이다. 신을 만나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머리를 숙여 두 손과 두 발로 기어오르며 최대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저절로 체득케 함이리라. 어쩌면 당시 크메르인들은 이곳이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님을 드러내고자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사의 정점을 이루는 앙코르와트만이 아니라, 앙코르유적지 가운데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사원들이 많다. 그래서 이곳의 사원들은 산사(山寺)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의 사찰이 산속에 있어 산사라 부른다면, 평원에 자리한 앙코르의 사원은 산을 조형화해놓은 산사인 것이다. 산속에 있든 산을 형상화했든 모두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속(俗)의 세계에서 성(聖)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산중사찰이 일주문?천왕문?불이문으로 이어지는 삼문(三門)의 진입과정을 거쳐 수미산 정상에 도달한다고 보듯이, 앙코르와트에서도 정상에 닿기 위해서는 미물계?인간계?천상계를 거쳐야 한다. 평지에 자리했기에 사원을 가파르게 만들어 산을 오르듯 수직적 상승단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층의 미물계와 2층의 인간계를 거쳐 3층의 천상계에 오르면, 사방에 네 개의 탑이 봉우리를 이루고 그 가운데 우뚝한 탑이 바로 수미산이다. 하늘을 향한 수직의 양수(陽數) 3과 땅을 이루는 수평의 음수(陰數) 4를 배치하고 그 가운데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놓은 것이다. 숫자 3이 하늘과 신성을 나타내고 숫자 4가 땅과 세속을 나타내듯이, 음양과 성속의 조화를 이룬 앙코르와트는 우주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수미산에는 여덟 겹의 바다가 둘러싸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찰에 들어서려면 개울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고, 앙코르와트를 휘감은 거대한 해자(垓字)를 건넌다. 종교적으로 보면 사원을 둘러싼 개울과 저수지는 우주의 근원인 바다이자, 성속의 경계를 구분하는 장치이다. 앙코르의 참배자들은 해자와 곳곳의 연못에서 성스러운 물로 몸을 씻어 정화의식을 거친 다음 이윽고 온몸을 굽혀 천상계에 올랐을 것이다.

그 사상적 배경이 힌두교이든 불교이든, 자신들의 성지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며 신적 존재를 섬기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성지에서 의식을 베풀며 링가에 부은 신성한 물이 해자로, 그리고 백성들의 삶속으로 흘러 평안과 풍요로움이 나라에 널리 퍼진다고 여겼다. 탑의 모양을 뾰족한 연꽃봉오리 모습으로 만들고, 하늘과 닿을 것 같은 계단을 세우고, 도시의 어떤 건물도 앙코르와트의 높이를 넘을 수 없도록 한 곳. 그곳에서 그들은 신의 가피와 함께 끊임없이 피어나는 연꽃처럼 크메르의 영광을 꿈꿨으리라.

[불교신문3093호/2015년4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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