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 시인 3월31일 별세-봉인사에 납골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에 두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박희진 원로시인이 지난 3월31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월탄문학상, 한국시협상, 상화시인상, 펜문학상과 대한민국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는 박 시인은 지난해 10월 서귀포시에서 시낭송회를 여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 왔다.

“1980년대 초 인도 네팔과 카투만두 등 불교성지를 방문하면서 더욱 불교에 심취했다”는 박희진 시인은 국내 최초의 시낭송가로도 유명하다. 1970년 성찬경 시인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시낭송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공간시낭독회’를 만들었다. 현재도 동국대 인근 동서문학관에서 낭독회를 이어왔다.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누구보다 불교가 좋아서 불교시를 많이 썼다”고 밝혔던 박희진 시인은 1931년 12월 경기도 연천서 출생했으며 1955년 문학예술에 시 ‘무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실내악> <청동시대> <침묵하는 미소> <영통의 기쁨> 등 40여 권이 있으며, 불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삼라만상의 다양한 실상을 포착하는데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생 독신을 고집해온 고인은 유언에 따라 발인후 경기 남양주시 봉인사 납골당에 안치된다.
 

한편 진관스님은 지난 1일 박희진 시인을 애도하는 시를 전해왔다. 전문을 소개한다.

 

    박희진 시인 열반에 즈음하여

 

                                                  진관스님 시인

박희진 시인은 백두의 몸 도솔천의 시인이었다.

그 많은 꿈을 먹고 살면서 한 번도 슬퍼하지 않고

미소 지을 뿐이다.

어머니 배 속에서도 대추나무처럼 뒷동산 푸른 소나무

아래 앉아서 선승이 되어 정진만 하였던

유마거사의 영혼이 되었다.

지상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85년 동안 시만 썼던

그 몸으로 살아있었던 박희진 시인

그러한 몸으로 지상을 떠나던 날 꽃비가 내렸다.

땅 위에 밤이 깊어오는 산을 애달파하면서도

세상은 변해도 세속에 욕망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세월을 보내는 것이 하나의 수레처럼 굴리고

백두의 소나무처럼 살자고 언약했던 인연의 시인

이제는 버리고 그것마저 버리고 갔다.

우리가 언제나 가야할 그곳 시인의 고향

자연의 미학 삶의 미학을 한편의 시로써 맺고

아득히 먼 그리움으로 우리들 가슴에 남기고

우리가 언제나 그리워한 아름다운 자연의 고향

그곳에 있을 어머니를 만나려 가는 구나

이제는 모든 것을 미래의 시인들에게 남기고

지상의 영혼을 모아 도솔천에서도 시를 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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