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페미니스트 왕비들

해인스님 지음/ 운주사

한 때 전 세계를 호령하며 광대한 영토를 자랑했던 몽골제국. 칭기즈 칸 등 몽골의 역사에서 남성들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몽골 여성들도 그에 못지않은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칭기즈 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비구니 스님인 해인스님이 몽골의 왕비들이 몽골의 역사와 여성의 지위에 끼친 영향을 소개한 <몽골의 페미니스트 왕비들>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흥미롭게 담겨 있다.

저자 해인스님은 사회에서 당당하고 가정에서 존중받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몽골 여성들의 삶의 방식이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위대한 왕비들의 역사에 근거가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몽골제국의 건설자인 칭기즈 칸은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의 균형을 중시했다. 몽골의 왕비는 ‘왕의 아내’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왕비는 칸과 함께 제국을 통치했고, 칸이 정복전쟁을 위해 자리를 비우면 직접 제국의 지배자가 됐다. 심지어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칭기즈 칸의 아내 보르테는 제국의 외교 고문 역할을 수행했다. 칭기즈 칸의 친구였던 자모카가 몽골의 통치권을 은근히 갈망하자, 보르테는 남편에게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칭기즈 칸의 셋째 딸 알라카 베키 역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문무를 겸비했던 알라카 베키는 만리장성 일대의 웅구트족과 결혼했다. 이곳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알라카 베키는 가문에서 정주(定住) 문명을 다스린 최초의 인물로 기록됐다.

고려의 여인이었던 기황후는 공녀로 원나라로 보내져 궁녀가 되었다가 황후에 등극했다. 그는 혜종(순제) 사이에서 난 아들 소종(아유시리다라)을 황제로 등극시킨 후 황태자비 역시 고려 출신의 권 씨를 간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나라에 고려의 음식, 의복, 차 등을 들여와 ‘고려양’을 유행시키는가 하면 고려 침공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강한 여성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해인스님은 “칭기즈 칸이 역사상 가장 넓은 몽골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뛰어난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역사 속 몽골 여성들의 당당함과 자유로움이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불교신문3091호/2015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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