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황송노인복지관 실버 북카페 ‘삼가연정’
이만숙·이선자씨 “보살행 실천 날마다 행복”

“아이고 말도 마세요. 예전에는 딸이랑 커피집에 가도 딸이 시켜주는대로 받아 먹었지 카라멜마끼야또가 뭔지 알기나 했나요?”

일흔에 바리스타가 된 이만숙씨. 앳된 유니폼을 말쑥하게 차려입고서 숙련된 솜씨로 순식간에 카라멜마끼야또를 만들었다.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카라멜 소스와 섞은 뒤 우유거품을 내서 소스그림으로 마지막 점을 찍은 그녀의 카라멜마끼야또에는 남다른 정성과 엄마손맛까지 가미돼 있어 인기다.

아들 보려고 딸 여섯을 줄지어 낳은 이만숙씨는 7남매 키우면서 살림하느라 평생을 보냈다. 장가를 가지 않은 서른다섯살 아들이 아직도 걱정거리지만, 10여년 째 밑반찬 배달과 급식 등 안해본 봉사활동이 없을 정도로 보살행을 실천해온 그다. 8년 전 척추수술로 척추에 쇠를 박고 산다는 말도 웃으면서 하는 그녀다.

황송노인종합복지관의 실버북카페 ‘삼가연정’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는 이만숙(사진 왼쪽)씨와 이선자씨. 이들은 “하루하루 행복하다”고 했다.

“내 힘으로 누군가에 힘이 돼준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재밌고 보람있는 봉사의 맛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모릅니다. 이 나이에 어디서 저를 받아주겠어요? 이렇게 좋은 복지시설이 있어 고맙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지난해 복지관에 ‘실버 바리스타 모집공고’가 뜨자, 만숙씨는 망설임없이 도전했다. 이른바 ‘다방커피’라 불리는 믹스용 커피만 즐겨 마셨던 터라 바리스타 공부가 다소 부담됐지만 용기를 냈다. 커피이름 외우기만도 만만치 않았다.

한달여간 암투 끝에 마침내 실버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지난 1월말 성남 중원도서관 식당 한쪽에 ‘황송노인종합복지관 북카페 삼가연정’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남편을 비롯해서 딸과 사위, 손녀들이 몰려와서 ‘할머니의 취업’에 축하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유니폼 차림의 외할머니가 너무나 예쁘고 자랑스럽다면서 사진을 찍어 스마트폰에 올리느라 정신없는 대학생 손녀를 보면서 만숙씨는 우쭐했다.

지난 2월 초 만숙씨는 생애 최초 ‘월급’이란 것을 받아봤다. 근무일수가 적어 30여만원에 불과했지만, 아직 통장에 있는 그 돈에 10원 한푼도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그녀에겐 가장 귀하고 소중한 돈이다.

“평생 주부로 살다가 일흔에 첫 월급을 받았더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면서 아이처럼 웃는 만숙씨다. 그녀 곁에 또한명의 도반 바리스타는 이선자(63)씨다. 7살 어린 동생이지만 배울 점 많고 든든한 파트너다.

직장생활을 오래했던 선자씨는 환갑을 넘기고 복지관에 들어와 하모니카와 기타를 배우고 탁구를 즐기는 등 황혼을 즐기다 만숙씨와 나란히 ‘실버 바리스타’가 됐다. 6명 뽑는데 30명의 어르신들이 지원했으니 경쟁률만 3:1이다. 자격증 수여받고 면접까지 치렀다. 그녀는 대뜸 ‘실버 바리스타’라는 말에, “저 실버라는 말 싫어요”라고 손을 내저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쉬지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회향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없죠. 한 잔 한 잔 정성을 다해서 차를 만들다보면 시간도 훌쩍 지나가고, 가끔 실수를 해도 젊은 분들이 웃음으로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삼가연정은 정말 훈훈한 정이 오가는 사랑방이랍니다.”

얼마 전 아들딸과 손자들이 찾아왔는데, 어린 손주가 갑자기 “할머니 짱”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고, 개관식날 찾아온 남편은 유니폼 입고 커피를 내리는 아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며…. 그녀의 자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성남 황송노인종합복지관(관장 일운스님)은 60세 이상 어르신 6명이 운영하는 실버 북카페 삼가연정(三嘉連亭)을 열어 일하는 노인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창출했다.

책과 차, 사람 셋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장소를 뜻하는 삼가연정은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삼가연정’에 이은 2호점이다. 황송복지관의 삼가연정이 문열기까지 노인복지센터는 여러가지 운영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임성우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의 자립도와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메뉴를 조금씩 늘려가고 명절수당 등 다양한 통로로 처우를 개선해나갈 계획”이라며 “삼가연정이 브랜드창출 차원에서 불교복지시설간 네트워크로 3호 4호점으로 확장되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불교신문3086호/2015년3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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