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장날 맞아 두차례 ‘거사’ … 대부분 투옥, 학교 폐교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1919년 3ㆍ1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질 때 부산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도 동래 장날을 맞아 두 차례나 만세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상당수 인원이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학교는 강제 폐교되는 아픔을 겪었다. 3ㆍ1절 96주년을 맞아 범어사 만세운동을 돌아보았다.

범어사 만세운동은 1919년 2월 만해스님이 당시 주지 성월스님을 비롯해 담해ㆍ이산스님을 만나면서 비롯됐다. 이때 만해스님은 김법린, 김봉환, 차상명, 김상기 등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대표들과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물금역의 지금 모습
3월1일 서울(경성)에서 진행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당시 범어사 학인들이 양산 물금역에서 내려 금정산을 넘어 범어사에 잠입했다. 독립선언서 5000장을 등사해 갖고 왔으며, 3월6일 범어사에서 은밀하게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의기투합한 허영호, 차상명, 오병준 등 결사대 30명은 이튿날 동래장날을 기해 군중과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동래시장은 당시 부산은 물론 경남지역의 중심지였다. 지금의 동래시장은 그때와 달리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일부 구조가 바뀌었지만, 길과 골목은 예전 그대로이다. 만세운동이 벌어진 남문과 서문은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전할 뿐이다.

3월7일 동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결사대 대부분이 일경에 체포됐지만, 독립운동의 결의는 꺾이지 않았다. 3월17일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졸업생 송별연에서 김영규, 김상기, 김한기 등 학생들은 만세운동을 재차 결의했다. 일경의 감시망을 피해 동래포교당(법륜사)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숨겨 놓았다고 전한다.

3월19일 동래장날에 맞춰 2차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사전에 발각되어 무산 위기에 처했지만, 3월18일 밤 전격적으로 만세운동을 진행했다. 스님과 학생들은 대부분 연행되어 옥고를 치렀고, 학교는 폐교 조치를 받았다. 명정학교는 종립학교인 부산 금정중학교 전신이다.

동래시장의 지금 모습
두 차례의 범어사 만세운동은 동래(부산)와 경남 지역은 물론 조선인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자긍심을 주었다. 이후 경남 지역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근세 불교자료를 수집하는 등 역사에 관심이 깊은 김화선 부산 금정중 교사는 “1919년 범어사 만세운동은 불교계의 항일을 주도했던 만해스님과 용성스님의 영향을 받았다”면서 “군중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날을 기해 스님과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거사를 일으킨 것은 독립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김화선 금정중 교사가 국가기록원에서 새롭게 찾아낸 범어사 지방학림 명정학교 만세운동 참가자 명부.
한편 김화선 금정중 교사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김대용, 김영식 등 당시 만세운동 참여자 3명의 명단을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는 ‘삼일운동피살자명부(三一運動被殺者名簿)’를 통해 확인했다”면서 “당시 명정학교 재학생들이었던 이분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 서류가 명부에 끼워져 있었다”고 밝혔다. 김화선 교사는 “범어사 만세운동에 대한 보다 면밀한 조명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범어사 순환도로에 있는 삼일운동 유공비
한편 범어사의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부산 금정구청에서는 1995년 ‘삼일운동 유공비’를 건립했다. 현재 범어사 순환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이에 앞서 1970년 부산 금정중학교는 ‘범어사 학생 3ㆍ1운동 유공비’를 교내에 설치했으며, 2009년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받았고, 2010년 유공비를 새롭게 단장해 애국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범어사는 3ㆍ1절을 맞아 ‘삼일운동 유공비’에 추도의 꽃을 헌화했다.

부산 금정중 교내에 있는 삼일운동 유공비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일제강점기에 범어사 스님과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큰 교훈이 되는 일”이라면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뜻을 바르게 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범어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僧兵) 총사령부가 설치돼 호국의 선봉 역할을 수행한 역사가 있다”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원력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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