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의 선사상

정운스님 / 불교시대사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은 대표적인 선종의 종지((宗旨)다. 더불어 빠지지 않는 게 불립문자(不立文字)다. 문자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곧 경전이나 논서와 같은 교학에 치우치기보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선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말은 <능가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편으로 표현한 언설에 집착하는 수행자들을 위해 <능가경>에선 ‘불설일자(不設一字)’라고 말했는데 불립문자의 연원이 됐다. “진실은 문자를 여읜 것”이지만 방편인 언설 즉 교학을 소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언어를 통한 방편을 인정해야 한다.

조계종 교육아사리 정운스님이 대승경전에 전하는 선관을 정리해, 선정과 지혜를 동시에 구족해 진정한 선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금강경 법화경 유마경 등

대승경전 6종 선관 고찰

“禪, 선정과 지혜의 통칭

수행서 선과 교 균형 중요”

경전 단순 교리전달 넘어

깨달음의 세계 표현한 것

역대 선사들 경전 토대로

자신만의 선사상 구축해

스님은 “대승경전에서 전하는 선관(禪觀)은 단순히 교리차원을 넘어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스님은 “중국에서 달마 이전에 수행하던 선 수행자나 달마의 제자들, 5가7종의 선사들, 후대의 간화선 선자들도 경전을 통해 법경(法鏡)을 삼았다”고 밝혔다.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은 고려 지눌스님도 피력한 바 있다. 정혜쌍수를 주창했던 지눌스님은 <절요>에서 “선이란 선정과 지혜의 통칭”이라고 말했다. 선정과 지혜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선과 교의 균형은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선을 바탕으로 교를 완성시켜야 하고, 교를 근간으로 선정을 닦아야만 수행이 완성될 수 있다.

선 수행에 방점을 두고 교를 소홀히 하는 수행풍토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 어록이 생기기전, 선사들은 대승경전의 선관을 수용해 선관을 정립했다. 역대 선사들은 “유식과 선의 결합, 화엄과 선의 일치, 천태와 선의 여일함, 염불과 선의 쌍수 등 끊임없이 교학적 측면과 선을 하나로 보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왔다. 책에서는 선사들의 노력이 대승경전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다루고 있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총 6종의 대승경전에 담긴 선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금강경>을 비롯해 <법화경> <유마경> <화엄경> <열반경> <능가경> 속에 담긴 선사상을 찾아보고, 각 학파에서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했는지를 살펴봤다.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이자 동아시아 선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종에서 처음부터 <금강경>을 중시한 것은 아니다. 7세기 이전까지 선종에서는 <능가경>이 중심이었다.

<속고승전> 16권 ‘혜가장’에 의하면 달마선사가 혜가스님에게 4권의 <능가경>을 주며 “내가 이 중국 땅을 관찰해보니 오직 이 <능가경>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혜가선사 <능가경>을 나(那)선사와 혜만선사에게 전하면서 달마계 선종 초기의 선사들은 <능가경>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설일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指月)’ 등 선종의 연원이 되는 사상은 <능가경>이다. 이 경전에는 유식과 공사상이 함께 설해져 있으며, 여래장 사상과 아뢰야식이 결합돼 있다. 초기 선사들의 심요로 삼은 것은 물론 ‘평상심시도’와 ‘즉심시불’을 강조했던 마조스님도 사상의 뿌리를 <능가경>에 둔다.

소의경전이 <능가경>에서 <금강경>으로 바뀐 것은 6조 혜능스님 때부터로 볼 수 있다. 혜능스님의 선사상 근간이 되는 경전으로 <금강경>을 꼽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무꾼이던 혜능스님은 <금강경> 독송소리를 듣고 출가를 결심해 홍인선사를 찾아갔다. 돈황본 <육조단경>에는 홍인선사가 혜능스님에게 <금강경>을 설해주어 혜능스님이 구절 끝에 깨달았다“고 한다.

홍인선사의 문하에서 방아 찧는 일을 한지 8개월 무렵 스승으로부터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은 것이다. 혜능스님은 이후 제자들에게 이 경을 수지하도록 했다. 5조 홍인과 4조 도신스님의 저작들을 보면 반야부 경전이 상당수인데 <대품반야경> <문수반야경> <금강경> 등으로, 이미 이전부터 <금강경>의 반야사상이 중시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눌스님이 <금강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지눌선사가 선사상을 확립하는 데 근거로 삼았던 경전”이고 선사의 비에는 “사람들에게 송지를 권함에는 <금강경>으로 하고 입법연의에는 <육조단경>을 본의로 하여 이통현의 <화엄론>과 <대혜어록>을 양 날개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다. 또 여말선초 함허스님도 <금강경>을 선양했다.

책에서는 무상과 무주, 무아와 즉비(卽非)논리 사상을 중심으로 <금강경>의 선관을 해설하고 있다. 저자는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금강경>이 무상의 최상승 법문을 밝히고 있으며, 무상을 근거로 실천방향을 정하고 수행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상은 중생을 제도했으되 제도했다는 관념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관념(相)이나 집착을 여읜 것은 곧 제불의 경지이며, 해탈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한다. 독특한 표현구조인 즉비논리는 “편견과 고정관념, 분별심, 차별심을 깨며 집착을 버릴 것을 강조하는 지혜의 논리”로 볼 수 있다.

이밖에도 <법화경>의 선관과 일승사상, 유마경의 불이법문 사상, <화엄경>의 선사상, <열반경>의 법신상주설과 불성사상 등을 고찰하며, 대승경전의 선관과 불교사적 위치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해 놨다.

[불교신문3068호/2014년12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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