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고고기행

황규호 지음 / 주류성

불교신문 논설위원 출신이자 30여년간 언론사 기자생활을 했던 황규호(77)씨가 ‘저널리스트가 쓴 유라시아 고고기행’을 냈다. 서문에서 그는 이번 책 작업을 ‘인생 말년에 부린 노욕’이라고 말했다.

1968년 서울신문 공채기자로 언론계에 몸담은 그는 근속기간 30여년 통틀어 20년을 문화부에서 문화재와 학술을 담당했다. 당시 1980년대는 암담한 시대였다. 언론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와 사회는 물론 경제분야도 늘 ‘예각’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나 문화재분야는 예각을 얼마만큼 비켜나간 ‘둔각’이었다고 말한다. 어떻든 서슬이 퍼랬던 위정자 집단의 눈초리를 피하는 적절한 소재가 문화재 기사였다는 게 당시 언론현장을 누볐던 저자의 귀띔이다. “시국탓에 언론사 간의 문화재 기사의 경쟁이 치열했고, 서로 ‘물 먹기’ 다반사였다. 그래도 더러는 특종을 차지하는 짜릿한 감회도 맛보았다.”

저자는 한국언론사상 처음으로 한중수교 이전인 1990년 중국 동북지방의 발해유적을 발굴하는 행운을 잡기도 했다. 문화재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신문에 연재한 ‘한국인 얼굴’ 가운데 몇 꼭지의 기사가 1997학년도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1998년 신문사를 퇴직한 이후에도 재직시절의 취재원이었던 학계와의 인연이 계속되었다. 자연인으로 돌아왔지만, 신문기자 시절의 근성은 버리지 못했다는 저자는 “외국을 여행하면서 마주친 새로운 견문을 기록한 노트와 사진자료가 제법 쌓였고 노욕인줄 알면서도 책을 하나 쓰겠다는 만용을 부려보았다”고 고백했다.

책은 프랑스와 파키스탄 등 해외 학술회의에 참가한 개최국 주변을 답사한 견문을 바탕으로 꾸며졌다. 특히 대승불교의 산실이었던 파키스탄 간다라에서는 불교미술의 머나먼 길을 돌아 동아시아 끝자락 한반도로 전파되었으니,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연의 고리가 끈끈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했다.

[불교신문3066호/2014년1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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