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월서스님 ‘미얀마 천호월서희망학교 건립에 부쳐’

미얀마 천호월서희망재단 학교 준공식. 월서스님(가운데) 종상스님이 나란히 앉아있다.
부처님을 믿는 나라에

굶주리고

배움을 중단하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노라…

오랜 종단 행정 마치고

불교 국가 지원 사업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 등지 교육 ‘후원’

도움 주러 갔다가

감명 받고 깨달음 얻어

국제 구호단체인 ‘천호월서희망재단’을 이끌고 있는 이사장 월서스님(법주사 조실, 원로의원)이 지난 19일 미얀마 오지 마을에 학교를 건립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자비사업을 펼쳤다. 행사 내용과 취지, 학교 건립 당일 현장 모습을 담은 기고문과 이날 주민들 앞에서 설한 법문을 보내왔다. 이에 원로 스님들의 자비행을 독자들과 함께 나눈다는 취지에서 기고문을 싣는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지로 꼽히는 미얀마 바간에서 1시간여 떨어진 작은 시골이 이번에 찾아가는 곳이다. 열대의 울창한 숲 속 평원에 5000여개의 사원과 불탑이 고층 건물처럼 솟아 있는 성지(聖地)를 지나자 시골길이 펼쳐진다. 인도차이나반도에 속하는 미얀마는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와 여러모로 많이 닮았다. 스님들의 일상생활, 계율, 문화는 물론 인문 정치적 환경도 유사하다.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가 스리랑카를 거쳐 인도차이나반도로 전파돼 같은 불교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아열대 기후 등 자연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천호월서희망재단이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지역도 이곳이다. 중앙종회의장과 두 번의 호계원장 불국사 주지 등을 역임하는 등 50여 년 간 종단의 은덕을 입고 수행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종단 행정을 놓고 물러앉으니 사회와 국민들을 위한 역할이 미진했음을 알았다. 그러다 불교국가의 어려운 사정을 눈으로 보게 됐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들 나라는 외세 침입과 내부 문제로 인해 전 국민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극심한 부의 편중과 낮은 교육으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 수질 등 열악한 생활환경. 이를 보다 못한 한국의 여러 큰 스님들이 이미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종상스님이 마련한 미얀마 스님들 대중공양.
가난한 나라는 모든 것이 열악하고 모두 힘들지만 특히 자라야할 아이들의 상황은 더 가슴 아프다. 아이들이 제대로 못 배운다는 것은 한 가정 한 국가의 미래가 끊기는 것과 같다. 캄보디아 라오스 어디를 가든 지붕이 낡아 우기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를 피할 길이 없어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화장실은 물론 식수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곳이 없었다. 한 번은 캄보디아 씨엠립의 한 마을에 쌀 1톤을 지원하고 돌아오는 길에 뼈가 앙상한 아이들과 마주쳐 한없이 운 기억이 있다. 그때 원력을 세웠다. 비록 내가 가난을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손닿는 데까지 지원을 해서 부처님을 믿는 나라에서 굶주리는 아이, 시설이 낡아 배움을 중단해야하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노라고….

그렇게 해서 라오스 비엔티안 옹트 사원에서 오지마을 학교를 개보수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펼치게 됐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교과서를 나눠주고 빈민촌을 방문해 쌀을 후원했다. 후원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지원이 끊어지지 않도록 종교국 행정 책임자를 만나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스님들을 위해 컴퓨터도 지원했다.

그런데 미얀마를 가는 순간, 캄보디아 라오스가 선진국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곳 사정은 더 심했다. 캄보디아 라오스는 그나마 낡은 시설이라도 갖추고 있어 개보수를 했지만 미얀마는 아예 시설 자체가 없었다. 그냥 작은 책상 하나 갖다 놓고 나무 그늘 밑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난 6월 미얀마 북부 바간에서 한 시간 거리의 쉐띳 마을과 인연을 맺게 됐다. 학교 건립 기금 1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50만원을 주면서 학교를 지을 것을 당부했다. 마을 학생 수는 420여 명에 달했다. 학교는 절 안에 있었다. 행정기관이 미래 미얀마를 이끌 아이들 교육을 담당하지 못하다 보니 사찰이 이를 떠맡은 것이다. 주지 스님이 교사들을 모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교실도 없는 나무 아래 바닥에 칠판을 놓고 가르치는 등 환경이 열악한 데다 초등학교 과정까지 밖에 책임을 못져 중ㆍ고등학교는 대처로 나가야했다. 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들은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국가적으로도 빈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곳 미얀마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지난 6개월여 간의 공사를 마치고 11월19일 이날은 학교를 준공하는 날이었다. 재단이 하는 일과 미얀마 사정을 들은 불국사 박물관장 종상스님이 동행하고 싶다고 해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학교가 있는 사찰이 가까워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연도에 나와 환영했다. 2km 앞에서부터 수천명의 마을 주민들이 나와 환영했다. 아마, 마을 전 주민이 모인 듯했다. 그들은 10리 길을 걸으며 우리들 앞길에 꽃을 뿌리며 인도했다. 꽃은 불전에 올리는 공양물 중 하나로 도량을 찬탄하고 장엄하는 의미로 쓰인다. 오랜 수행이 공덕의 꽃으로 활짝 피어 온 법계에 널리 퍼져 불도량으로 장엄한다는 뜻이니 그만한 찬탄이 없다. 장시간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도 무더위도 한꺼번에 싹 가시는 듯했다. 동행한 불국사 박물관장 종상스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행사에 참석한 1500여 명의 스님, 학부모, 선생님 등 신도와 시민들에게 보시와 더불어 대중공양으로 보답했다.

2km 밖에서부터 일행을 반기는 주민들.
이날 행사는 마을 주민 및 학교 전교생 약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 건물 테이프 커팅을 시작으로 간단한 미얀마식 법회의식, 한국 손님 소개, 미얀마 마을 대표 감사 인사, 법문, 학교기금 및 선물 증정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나와 종상스님 외에 영취사 치원스님, 봉은사 혜연스님이 함께 했으며 산디마스님 등 미얀마 스님 다섯 분도 동참해 행사를 빛냈다. 재단 이름을 따서 ‘천호월서희망재단학교’라고 이름 붙였다. 나의 이름이 붙은 학교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학교를 도와야 한다. 나는 학교에 휘호를 선물했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처염상정(處染常淨)이 쓰인 글귀였다.

휘호에 담긴 뜻을 설명하자 식에 참가한 마을 주민 및 학생들이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미얀마와 한국이 서로 다르지 않고 모든 만물이 함께 하며 고귀한 존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법문했다. “인도차이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처님 탄생지인 인도와 인접한 미얀마는 부처님의 발자취와 유적이 많은 나라입니다. 아쇼카왕이 부처님 머리카락을 가져와서 탑을 조성한 인연으로 불국정토를 이룬 것이라 생각됩니다. 미얀마 국민의 90%가 불교도로서 세계에서 가장 독실한 불교국가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전 국민들이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도(道) 높은 수행승도 많은 나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방선인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법과 대승불교인 한국의 간화선 수행법이 접목되어 많은 명안(明眼) 종사가 나오고, 한국 미얀마 두 나라가 더욱 우의가 돈독해져 불교와 국가발전에 이바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머리카락이 와서 불국정토가 되었듯이 오늘 낙성한 천호월서 학교가 작은 도움이지만 전 세계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미얀마를 부흥시키고 발전 할 수 있는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학교 건립에는 모두 5만 달러가 들었다고 했다.

나는 1만 달러를 기증했는데, 나머지는 누가 보시했을까? 마을 주민, 학부모들이 직접 벽돌을 옮기고 쌓았다고 한다. 돈을 댈 수 없으니 직접 몸을 움직여 아이들의 배움터를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역시 옛날에는 직접 몸을 움직였다. 내가 지리산에서 은사(금오) 스님을 모시고 살 때 몸을 움직여 법당을 짓고 벽돌을 쌓았다. 직접 나무를 해다 대중들의 공양을 지었으며, 백리 천리도 발을 움직여 걸어 다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몸을 움직이기보다 말을 앞세우고 생색을 내는데 익숙한 국민들이 되어가고 있다.

감동한 나는 앞으로 증축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여서라도 함께하는 이들이라면 아직은 보잘 것 없는 이 학교를 미얀마의 미래 일꾼을 기르는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아이들 역시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부처님 가르침도 더 잘 믿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종상스님 역시 감명을 받은 듯 계속해서 학교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 미얀마 등 불교국가를 돌 때마다 늘 많은 가르침을 배우고 감동을 받는다. 우리 재단은 후원을 받지 않아 지원 규모가 크지 않고 실무자도 많지 않아 역할이 제한적이지만 조급해하지 않는다. 나의 기여는 적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꿈을 펼치는 아이들이 있기에 부처님의 나라를 갈 때마다 환희에 젖는다. 우리 불자들도 이 기쁜 행렬에 동참하기를 기원한다.

희망에 가득찬 아이들과 학교준공 기념촬영.

[불교신문3062호/2014년11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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