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전에서 사부대중 300여 명 동참

제49주기 구하스님 추모다례가 엄수됐다.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원산스님)는 11월24일 오전 10시 설법전에서 구하스님 추모다례를 거행했다. 추모다례에는 방장 원명스님, 원로의원 성파스님, 주지 원산스님, 율주 혜남스님, 군종교구장 정우스님, 전 주지 현문스님, 전 조계사 주지 도문스님, 중앙종회 부의장 오심스님, 김진조 전 부산 김내과원장 등 300여명이 동참했다.

구하스님 진영.
문도를 대표해 취운암 상우스님은 “오늘은 노스님이 열반하신지 49주기가 되는 날이다”면서 “다례에 참석해 준 대중에게 감사 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어 상운스님은 “노스님 문하 문도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의 경책을 삼아 앞으로 수행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구하스님은 1872년 울주에서 태어나 13세에 천성산 내원사로 출가해 경월도일(慶月道一)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예천 용문사에서 용호해주(龍湖海株)스님 회상에서 정진하고 구족계를 수지했다. 1896년 통도사에서 성해남거(聖海南巨)스님의 전법제자가 됐다. 이때 받은 법호가 구하(九河)이다. 법명은 천보(天輔).

헌다하는 영축총림 방장 원명스님.
1905년 통도사 옥련암에서 오도(悟道)의 경지를 맛 보았고, 명신학교, 입정상업학교(현 부산 해동고), 통도중(현 보광중)을 설립해 인재양성에 힘썼다. 상해 임시정부의 재정 상황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을 물밑에서 지원했다.

마산 포교당 정법사(1912), 진주 포교당 연화사(1923), 창녕 포교당 인왕사(1923), 물금 포교당(1924), 언양 화장사(1927), 창원 구룡사(1929), 의령 수월사(1930), 부산 연등사(1932), 울산 포교당 해남사(1936), 양산 포교당 반야사(1940) 등 경남 지역 곳곳에 포교당을 설치해 전법에 혼신을 다했다. 한문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등 세 사찰이 힘을 모아 해동역경원(海東譯經院)을 설립 운영했다.

문도 대표로 인사하는 상우스님.
통도사 주지, 33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 불교중앙학림(현 동국대) 학장을 맡아 교단 발전에 기여했다. 1965년 10월3일(음력) 세수 94세. 법납 81세로 원적에 들었다.

문도들이 스님의 글을 묶어 <축산문집(鷲山文集)>과 <금강산관상기(金剛山觀相記)>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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