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실장 불교문화재연구소 세미나서 제기,
체계적 보존위해 사지소재 문화재 등급화 주장도

사지(寺址) 내 소재문화재 4976건 가운데 원위치에 있는 경우는 1218건으로 전체 24.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원위치를 떠나 다른 장소로 옮겨진 문화재는 3142건으로 63.1%에 달했으며, 망실된 문화재 또한 616건으로 12.9%로 집계돼 사지 내 문화재들이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비지정문화재는 일상적인 관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망실된 문화재 616건 가운데 611건이 비지정문화재여서 도난 및 훼손의 위험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유형별로는 지정과 비지정에 관계없이 불상과 불탑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불상이 261건(35.1%), 불탑 209건(33.9%)으로 69%를 차지했다. 이는 신앙의 대상 혹은 재화적 가치가 큰 소재문화재 일수록 망실 가능성이 높았다.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2010년부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지 및 사지소재문화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사지는 5400여개소가 확인됐으며, 여기에는 5000~6400여점이 넘는 많은 양의 사지 소재문화재가 남겨져 있다. 그러나 현재 문화재로 등록된 사지는 전체 사지의 2%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지는 문화유산 관리체계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셈이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유적연구실장은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가 10월3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연 학술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의 사지, 그 유구한 역사와 오늘’을 주제로 마련된 이날 세미나는 현재 사지가 처해있는 문제점을 살펴보고 종합적인 평가와 향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임 실장에 따르면 전국 사지 내 소재문화재 4976건 중 제도적 보호를 받고 있는 지정 문화재는 총 1035건(20.8%)에 불과하며, 비지정 소재문화재는 3941건(79.2%)에 달했다.

임 실장은 “소재문화재의 관리 환경은 지정과 비지정에 따른 차이가 매우 클 뿐 아니라 지정유형별이나 각 지자체의 예산과 관심 정도에 따라서도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며 “사지 정비나 소재문화재 주변 정비 후에도 예산 혹은 관리 부족으로 다시 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 실장은 “비지정 사지의 경우 소유주가 개인인 경우가 많아 임의 용도변경, 형태의 변형 등 훼손은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며 “소재문화재가 처해 있는 주변의 환경평가, 손상 상태, 소유자에 대한 상황도 복합적으로 고려해 각각의 상황에 대응하는 현실성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재문화재의 체계적 보존관리와 정책마련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손상도 및 위험도, 보존환경과 관리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사지 소재문화재의 등급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보존환경과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정기적인 관리를 받고 있는 A등급에서 훼손상태 등이 매우 심각해 긴급한 처리를 필요로 하는 D등급까지 나누는 분류 방법을 통해 “등급화로 얻어진 데이터를 통해 보존과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지정문화재로 승격될 수 있는 소재문화재를 우선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실장은 “조사된 문화재에 대해서는 훼손 및 보존 상태에 따른 등급 분류를 실시해 관리를 위한 우선순위가 매겨져야 할 것”이라며 “이후 체계적인 보존을 위한 관리지침서를 작성해 상시적인 관리 시스템을 가동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금까지 문화재 보존정책이 보존행위 자체에 중심을 뒀다면, 앞으로는 보존과 활용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 유적을 장기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인식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별 주요사지, 정기점검 실시 예정”

이날 발표자로 나선 조계종 문화부장 혜일스님은 ‘사지 보존관리에 대한 불교계 입장’을 통해 “전국의 모든 사지가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모든 사지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조계종은 전국 사찰들과 연관돼 있으며, 교구 본말사, 직영사찰 등의 체계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러한 네트워크를 전국 사지에 대한 일상 관리에 적용시키고자 한다”고 피력했다.
스님은 “사지가 있는 지역별로 해당 지역 사찰에서 담당해 일상관리 체계를 구축한다면 사지에 대한 훼손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정 단계를 거쳐 주요사지가 문화재로 지정되면 관리체계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발생할 수 있는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매해 종단은 지역별 주요사지에 대한 정기점검을 실시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에 앞서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정안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산천 곳곳에 남아있는 사지들은 우리 문화의 정수인 불교문화의 가치를 빛내주는 칠보와도 같은 유산”이라며 “사지의 유구한 역사와 오늘을 논하는 것은 미래 우리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보존과 복원의 길을 열어가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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