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황홀

고은 지음 / RHK코리아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되뇌이며, ‘나 같은 것’이 국밥을 사 먹는다는 고은 시인의 제목없는 시는 지난 세월호 참사 때 SNS를 뜨겁게 달궜다. 세월호를 겨냥해서 이 시를 쓴것은 아니지만 고은 시인의 이 짧은 싯구는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전 국민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냈다.

팔순을 넘은 노(老)시인에 따르면 ‘나는 항상 뜨겁다.’ “나의 내면의 마그마는 저 우주에 산재하고 있는 암흑물질 가운데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별들의 가능성과 연결되기를 꿈꾼다. 나는 내 무수한 시들의 어제 그제 없는 가난과 내 시들이 내일 모레 글피의 무일푼으로 시 이전을 산다. 마침내 한 편의 시가 오리라. 그렇게 오는 나의 시가 나이다. 나는 없다.”

10여년간 스님으로 산 고은 시인의 작품세계에는 선향(禪香)이 무르익어 있다. 그는 “이 세상의 그 무엇 하나도 다른 무엇들과 서로 원인이 되어주고 결과가 되어주는 끝없는 관계의 진행으로 존속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바다를 통 모르는 뭍의 오지에 솟아있는 산기슭의 암자 처마 끝에는 으레 먼 바닷속 고기 형상의 풍경이 풍경소리를 내고 있다. 바다 밑에도 또 하나의 산줄기 일부분이 내달리다가 그 바다 위의 섬으로 솟아나고 있는 것은 끝내 바다와 산의 일여(一如)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형수가 엮은 이번 시집은 ‘국민시인’ 고은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정수만 담았다. 고은의 반세기 문학인생에서 길어올린 수작들이 모두 들어있다. 총 100편이다.

1958년 고은 시인이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할 때 추천작 중 하나였던 ‘천은사운’부터, 가수 양희은이 노래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세노야’, 미국 시인으로 퓰리처상 수상자인 게리 스나이더가 고은만이 쓸 수 있는 시라고 극찬한 단시(短詩)들,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써내려간 ‘구름에 대하여’와 같이 역사의식이 살아있는 작품도 있다.

[불교신문3046호/2014년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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