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은 사랑·화해 정신을

이 땅에 전해주었다고 한다

1905년 강제된 을사늑약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부정했고

1910년 합병으로 민족에게

치욕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티베트는 1959년 중국에 의해

그 독립성이 상실되었다

정치 종교 수장 달라이라마는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한일합병 역사의 한국 정부는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티베트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 8월14일부터 18일까지 전세계 가톨릭교도의 수장이자 바티칸시국의 수반인 교황 프란치스코가 대한민국 정부의 열렬한 환영 속에 이 땅에 왔다. 윤지충을 비롯한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이 광화문 광장에서 이루어 졌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의 가슴에 다소나마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고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예수의 대제자인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가톨릭신자의 자랑이자 세계적 분쟁의 중개자이자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속에서 교황의 권위가 있기까지는 다대한 투쟁과 분쟁 속에 그 영향력이 확대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교황들이 그리스도교의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1차 십자군전쟁이 일어난 1096년부터 제8차 십자군전쟁의 마지막인 1270년대까지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이중 가장 비참한 것은 제5차 십자군전쟁(소년십자군전쟁)이었다. 십자군전쟁은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세속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가톨릭 교단의 계산과 보다 많은 영토를 확보하려는 세속군주들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 침략전쟁임을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이후 성베드로성당의 과중한 건축비를 충당하고자 교황청이 앞장서서 판 면죄부(免罪符)는 가톨릭 교리에도 없는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즉 교회에서 면죄부를 구입하면 자신이 지은 죄를 모두 사함을 받고 천국행을 보장받는다는 논리였다. 1517년, 당시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이자 사제인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적시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했는데, 이 여파로 신을 대리한다는 가톨릭 교의에 반발하는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 신교, 즉 개신교가 일어났다. 이때부터 가톨릭으로 대변되어지는 구교와의 분쟁은 30여년 동안의 종교전쟁으로 발전했는데 이 전쟁으로 전 독일인구의 절반이 죽어갔다.

조선의 정조이후 몰락한 남인계통의 지식인들이 주도한 ‘자생적 가톨릭’은 조선고유의 제례의식을 무시한 철두철미한 원론적 선교방식으로 피를 부르는 유혈사태를 야기했다. 이것이 소위 ‘순교자’를 양산하게 되었으며 여기에 자극받은 황사영 등 과격한 가톨릭 신자들은 “전쟁을 모르는 조선에 배 수백척과 강한 병사 5~6만명을 서양에서 파병하면 가톨릭의 포교를 쉽게 할 것”이라는 방법을 <황사영 백서>에서 제시했다. 이것은 미수에 그쳤지만 1927년 당시 조선의 주교였던 뮈텔도 “음모의 대부분은 공상적이며 위험천만한 것이어서 조선정부가 황사영에게 엄벌을 가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고 평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이후 25년만에 성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잇겠다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은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이 땅에 전해주었다고 한다. 1905년 강제적으로 체결된 을사늑약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부정하였고, 1910년 한일합병으로 우리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중국과 인종적, 역사적, 종교적 배경이 다른 티베트는 1959년 중국에 의해 그 독립성이 상실되었다. 티베트의 정치, 종교적 수장인 달라이라마는 아직도 국외로 떠돌면서 티베트의 평화적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한일 강제합병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티베트를 외면하고 있다. ‘지혜의 바다’를 뜻하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불허하고 있는 정부가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도 달라이라마는 이 땅에 오지 못한다.

[불교신문3036호/2014년8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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