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스님의 마음을 맑히는 산사순례 - 남해 용문사

천리 길 굽이굽이 돌아 가 만난 산사의 부도, 지장보살님, 정갈한 수곽은 나그네의 마음을 금방 편안하게 해준다. 선조들의 지혜를 가늠할 만한 고즈넉한 대웅전, 돌담사이로 보이는 장독대 하나에도 마음은 또 비워진다. 행복해지는 것이 왜 일까?

용문사 홈페이지를 열면 주지스님 인사말이 나온다.

“자비롭게 나누고

지혜롭게 비우며

행복하게 채우고

아름답게 동행하자”

짧은 몇 마디에 불교의 가르침이 다 들어있는 듯하다. 세심교를 건너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사람은 편안하다. 큰 뜻을 위해 작은 욕심 비우는 사람은 평화롭다. 나누고 비우고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짧아서 외우기도 쉽다. 세심교에서는 이런저런 욕심 다 씻고 건너가는 것인데, 이 경구는 좀 외우고 들어가야겠다.

천왕각을 지나 봉서루(鳳棲樓) 밑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누구나 저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온 마당에 빛이 가득하다. 누각 밑을 마당보다 약간 낮고, 어둡게 해서 상대적으로 마당을 높고 밝게 하는 설계는 절묘하다. 어둠속에서 갈 곳 몰라 헤매는 중생의 마음을 밝혀주기 위한 설치미술이다. 따지고 보면 본래 하늘이 거기 그대로 있었건만, 내 마음이 어두워서 본래 그 자리, 그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세심교에서 다 버리지 못한 미세먼지 같은 번뇌가 있다면, 마당에 놓인 작은 수곽에서 손을 한 번 더 씻는다. 노래로 법문했던 범능스님의 지장보살 염불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온 도량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곳이 지장성지(地藏聖地)라는 것을 눈치 빠른 불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원효대사가 이곳 용문사에서 지장보살을 직접 조성해서 모시고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용문사가 천년 지장성지가 된 연유이다. 그 때의 지장보살은 명부전의 지장보살님이다.

오래된 법당 앞에는 대체적으로 파초(芭蕉)가 서 있다. 처음 싹이 나올 때는 작다. 하지만 다 자란 파초가 마음껏 잎을 펼칠 때 보면 굉장히 넓고 멋있다. 삼복더위 매미 소리가 한창일 때, 마당에 바람 한 점 없다가도, 파초 잎이 산들거리면 이내 작은 실바람이라도 불어온다.

태풍이 불어서 잎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금새 다음 잎이 찢어진 잎을 대신한다. 어디서 그런 넓은 잎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아무리 잎을 까 봐도 알맹이는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땅을 비롯해서 비와 바람과 햇볕, 그리고 사람들의 정성, 이런 인연들이 만나서 파초가 있을 것이다.

파초를 파초 속에서만 찾으려면 곤란하다. 관계 속에 파초가 있다. 어떤 시인이 꽃을 바라볼 때 꽃이 되었다고도 했다. 우리들 마음도 그럴 것이다. 내 마음에서 내 마음을 찾으려면 아무리 찾아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쉬울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난 여행, 템플스테이’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더 다가가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떠나는 ‘나를 찾는’ 여행이다.

강원 학인시절에 늦가을이 되면, 파초가 겨울을 나기위한 파초집짓기 운력을 한다. 맨 먼저 파초 밑둥을 한 뼘 정도 남겨놓고 잘라낸다. 파초 주위로 말뚝을 박고 가마니나 멍석 같은 것을 둘러서 적당한 크기의 공간을 만든다. 그 속에 낙엽이나 왕겨를 채우고 비나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볏짚으로 지붕을 이어주면 끝이다.

아무리 춥고 눈이 많이 내려도 파초집은 끄떡없다. 봄이 되면 적당한 시기에 집을 벗겨 줘야 한다. 너무 일러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된다. 간단하지만 해마다 신경 써서 해야 하는 꽤 성가신 운력이다.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중 있게 운력을 시키는지 어른 스님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파초가 불교의 공(空)도리를 말없이 설법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법당을 참배하고 주지 스님과 차밭을 산책했다. 법당 뒤로 차나무가 잘 가꿔져 있어서 보기 좋다고 하였더니, 차밭 관리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른 봄부터 차나무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들을 일일이 손으로 제거해야 하고, 적당한 시기를 봐서 가지치기도 해줘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천연퇴비도 줘야 봄에 찻잎을 딸 수가 있단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했으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듯이, 절집 살림도 그렇다고 한다.

차밭에서 법당 용마루 너머로 남해 바다가 보인다. 안에 들어앉으면 깊은 산중이지만, 언덕에 올라서면 치열한 삶의 현장인 바다가 바로 코앞이다. 산중에 살되 세상을 져버리지 말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으로 들린다.

용문사 신도회는 회장, 총무는 한사람씩인데, 부회장은 열여섯이나 된다. 각 마을마다 한 분씩 소임을 맡긴 탓이라 한다. 신도님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지방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소속감이나 책임감이 높아져서 사찰과 신도님들 간에 소통과 협조가 더 잘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주지 스님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전법활동은 불교집안의 오래된 전통이다. 특별히 올 가을에 있을 괘불 점안법회의 원만회향을 위해서 주지 스님은 밤낮으로 백일기도 중이다. 주지 스님의 정성스런 기도와 높은 원력이 우리사회로 원만히 회향되기를 기원한다.

범종각의 목어가 재밌게 생겼다. 눈꺼풀을 반쯤 벗겨 뜨고 있는 왕방울 눈도 재밌지만, 윗니와 아랫니를 폼 나게 교차하였다. 더군다나 잘생긴 이빨사이에 목어채를 물고 있다. 목어채를 꽂는 집이 기둥에 따로 달려있는데도, 목어 이빨사이에다가 목어채를 넣어둔 스님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왜 이렇게 했대요?”

“재밌으라고…”

[불교신문3035호/2014년8월23일자]

일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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