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절에서 보면 더 좋은 책’ BEST 7

 

‘고즈넉한 산사에서 시 한수 읊조리는 여유를 이번 여름에 나도 한번 누려보자.’ 절에서는 경전만 보라는 법 없다. 청아한 풍경소리 들으며 법당 처마 밑이나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소설 한 편에 푹 빠져도 좋겠다. 옛 스님들이 남긴 선시(禪詩)도 나직히 읊조리며 뜻을 음미하다보면, 산 아래 직장에서 가정에서 들들 볶고 볶이며 살았던 온갖 번민도 날려버릴 수 있다.

 ◇문태준 시인 울린 ‘사랑시’

불자시인으로 유명한 문태준 시인이 한줄기 바람같은 시를 묶어 해설한 책 <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이른바 ‘문태준 시인을 울린 사랑시들’이다. 읽어버린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고 찾게 해주는 시들이다.

세상이 너무 개인주의로 치닫고, 화로 가득 차 있을 때 문 시인은 시읽기를 청한다. 위로가 필요할 때, 평안을 주고 싶을 때,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말보다 시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시들이 꽃밭의 꽃들처럼 가득한 책이다. <불교신문>에 시해설을 쓰며 연재했던 것들을 보완했다.

문 시인이 뽑은 시들은 느리고 낮지만, 깊고 오래가는 사랑을 알려주는 시다. 문 시인은 “시는 자신의 마음자리를 살피는 도구”라고 정의한다. 그가 가려뽑아서 친절한 해설까지 선사하는 책을 통해 진짜 나만의 마음자리를 살피면 어떨까.

 

◇‘만다라’ 김성동, ‘외로워야 한다’

1978년 소설 <만다라>로 불교문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소설가 김성동이 오랜만에 산문집 <외로워야 한다>를 냈다. 책은 개인의 사상과 철학이 녹아있는 자전적 에세이인 동시에 겨레의 의식과 영혼이 오롯이 녹아있는 짧은 회고록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남북한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아버지를 잃은 성장배경을 지니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준 그의 조부는 작가가 다섯 살이 되자 한문과 붓 잡는 법을 가르치며 당신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모든 것을 작가에게 쏟아냈다.

이것으로 150년 안팎의 시간동안 갈고 닦인 지식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작가에게 전달됐다. 작가는 기억속에 간직하고 있던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이번 책 ‘외로워야 한다’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모국어 파수꾼’이라는 소임을 다하기 위한 작가의 투철한 노력이 이번 책에도 담겨 있다. ‘애와텨하다’, ‘왼고개 치다’, ‘잔디찰방’ ‘이드거니’, ‘숨탄것’, ‘땅불쑥하다’, ‘하다’, ‘된비알지다’ 등 조금 생소하기는 하지만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만큼 개성있고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곳곳에 꽃처럼 피어있어 읽고 생각하는 재미를 더한다.

 

◇40년 수행체험 녹인 선시해설

해인강원까지 졸업하고 10여년간 출가수행자로 살았던 이계묵씨가 제불조사의 선시를 엮었다. 책 <돌계집이 애를 낳았구나>는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은 격 밖의 소리를 담은 선시집이다. 선시는 오도송, 열반송, 전법게, 수행송 등을 말한다. 깨달음이 전제된 오자(悟者)의 소리를 담고 있는 오도송, 생사를 달관한 선사의 안목으로 생사일여의 경지를 읊는 열반송, 스승과 제자가 심법(心法)을 주고받는 전법게다. 칠순의 노 거사인 저자는 40여년의 오랜 수행체험을 바탕으로 제불조사의 경지를 엿보기 위해 평소에 보아왔던 선시들을 쉽게 풀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평생의 마음공부를 결산하여 풀어놓는 자상한 선시해설은 깨달음을 향한 징검다리가 되기 충분하다. 오도송과 전법게, 열반송은 깨침의 순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선시들이어서 관련 선화와 선문답을 곁들인 흥미진진한 해설은 참선공부의 지침서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선어록과 유식에 달통한 저자는, 평소 출재가 참선수행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진솔한 체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 간화선 수행자들에게 유익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부처님의 50년 구도여정 노래

혜초스님을 노래한 시집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을 냈던 이승하 시인이 부처님의 생애를 시로 읊었다. 부처님의 50년 구도의 여정을 노래한 이 시인은 인도의 불교유적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혜초스님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 여행한 뒤 지은 시를 책으로 엮어냈다. 부처님이 바라나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한 이래 라자그라하, 슈라바스티, 카필라바수투 등의 50년에 걸친 이동경로를 따라가는 동안 시인은 먼 시간의 간격을 넘어 부처의 존재를 그 길에서 더 가깝게 느꼈을 것이 자명하다.  

동국대를 나와서 동국대 교수를 역임한 홍신선 시인은 시집 <삶의 옹이>에서 “무릇 얼마나 나를 덜어 남을 이루었는가. 내려놓는다고 했는데 아직도 들고 있는 것은 없는가. 끝내는 목숨도 내려놓을 일 아니던가”라고 말한다. 시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현실을 탐색해나간다.

책 머리에서 홍 시인은 “일체 수사도 문법도 모두 벗겨버린 누드의 말 하나 그렇게 춥고 찬 세상에 외따로 세워두고 싶다”며 “이즘은 때때로 삶을 역주행해 시를 몰고 30대 어디쯤 한 번 더 가고 싶은 날들이 있다”고 고백한다. 

1996년 가정과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초상을 그린 장편소설 <아버지>를 출간,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킨 김정현 작가가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 <황금보검>이다. 보물 635호,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실물 완형으로 남아있는 신라의 황금보검을 주제로 한 소설은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황금보검을 차고서 초원길을 달려 동쪽의 황금나라 신라를 찾아온 서역 왕자의 활약상을 그린다. 서역 왕자 씬스라로프, 가야의 딸 상화 공주, 신라 장군 유강, 대장군 이사부…. 개방과 관용의 나라 신라를 배경으로 이들의 활약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외수 작가가 “강추한다”라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된 책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 저자 빈센트 스태니포스는 문득 “아버지, 내가 당신의 바람대로 자랐나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아버지에 관한 수많은 기억과 생각이 떠오른다. 이 책은 아버지에 대한 질문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저자는 신혼여행 중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한다. 병상을 지키던 아들은 그제서야 자신이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토록 많은 시간이 있었고, 그저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됐는데 아버지가 대답을 할 수 없는 그때가 돼서야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실감한다.

이 책을 본 당신이라면 용기를 내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늘 흥얼대거나 즐겨 들으셨던 노래는 무엇인가요?” 혹은 “아버지의 첫사랑은 어떤 분이셨나요?”라고 물어볼 일이다. 질문 하나를 시작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질문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행복이나 철학, 인생에 관한 것으로 확장된다. “아버지는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총체적인 절망감에 빠진 적이 있었나요?” “아버지는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실 수 있었나요?” 등의 질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불교신문3031호/2014년8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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