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에서 바티칸까지

정동채 지음 / 동연

“안개비에 젖은 적멸보궁 사리탑에 마주 섰다. 부처님 뼛조각을 모신 성스러운 곳. 머리를 덜어내고, 마음을 씻어내고, 가슴을 털어내는 기도,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했다.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나를 보니 이거 순전히 욕심덩어리인게 아닌가. 장관을 하고 있으니 계속 승승장구, 대운이 활짝 피도록 기도하려고 여기에 선 것이다. 아서라. 여기서만큼은 제대로 정신을 차려보고 싶었다. 늘 중얼거렸던 삼법인 화두를 올렸다.”

참여정부 때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정동채 씨가 장관시절이었던 2005년 여름 설악산 봉정암에 올랐을 때 이야기다. 적멸보궁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그는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는지도 모를 무렵, 한여름인데 1200m 고지에 한기가 들었다고 한다. 으스스함이 느껴져 몸을 일으켰을 때 한생각 깨우침이 생겼다.

“부처님 뼛조각에 절할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에 머리 숙이는 것이 바로 된 절이란 걸 깨달았다.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상이 부처님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고이 모셔진 가르침이 부처님인 것이다.” 정동채 전 장관은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그는 여러 종교를 두루 받아들인다.

“믿음으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따르고, 수행하는 법으로는 불교의 내려놓음, 비움을 배운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과 불교에서 가르치는 ‘진여불성’, ‘진공묘유’가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책 <봉정암에서 바티칸까지>는 국회의원 3선,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이 시대의 정치일선에 서 있었던 정동채 전 장관의 종교순례기다.

현역 정치인으로서의 자리를 떠나 ‘자연인’으로 ‘종교인’으로 마음의 길을 따라, 내려놓음의 길을 따라, 믿음의 길을 따라 떠난 순례길에서의 단상을 모아 엮었다. 달라이라마, 틱낫한스님, 서옹스님과 송담스님, 청화스님 등 살아있는 부처로 일컫는 수많은 선지식들을 만난 기록들이다.

종교순례기를 마치면서 저자는 화두를 던진다. 정치에서 과연 무아와 무집착의 실현은 가능한 것인가. 자기를 최대한 가시화하고 자기홍보에 물불 가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한국정치 아닌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없는 사실도 과장되게 말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한때 ‘모셨던’ 두 전직 대통령을 떠올리면서 독서하고 사색하는 정적인 삶, 사랑과 자비심으로 내면을 채우며 살았던 삶을 실천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불교신문3023호/2014년7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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