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래의 아시아 불교민속〈23〉 일본⑦

일본 속담에 ‘부고는 두 사람이 전한다’는 말이 있다. 죽음에는 부정(不淨)이 따르기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혼인과 같이 좋은 일을 알릴 때는 혼자 가지만 죽음처럼 나쁜 소식은 반드시 두 명씩 조를 이루어 다녀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까닭에 예고 없이 손님 둘이 들이닥치면 달갑지 않다는 담론도 있다.

일본인들의 부정에 대한 생각은 특별나다. 오랜 육식금지가 가능했던 것도 도살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관념이 깊었던 데 있다. 도살은 피와 죽음을 불러, 피의 적부정(赤不淨)과 죽음의 흑부정(黑不淨)이 동시에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피에 대한 그들의 부정관념은 독특한 풍습을 만들기에 이른다. 여성의 월경에 대해 생명의 잉태를 가능케 하는 성스러운 것인 동시에 피부정이 따르는 것이라 여겼고, 이에 월경중인 여성을 월소옥(月小屋)·가옥(屋)이라는 공동오두막에 격리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출산이 가까운 여성을 격리시키는 산막(産幕)·피막(避幕)의 풍습이 일부 도서지방에 전승된 바 있다. 그러나 동제를 지내는 기간에 피부정을 피하기 위해 임산부가 머무는 장소로만 이용되었을 뿐, 월경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일이기에 애초에 격리의 대상으로 공론화시킬 수조차 없었다.

김미영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는 개인의 초경을 공동체에서 공유하면서 축하를 받았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최초의 더러움(初汚れ)’이라 하여 마을의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데, 메이지시대 중엽까지 이러한 풍습이 지속됐다.

월경을 하는 이들이 오두막의 격리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아궁이를 따로 쓰는 것이다. 활활 타는 불의 성질이 무언가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시키는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 다른 이들과 불을 공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장례를 치른 집에서는 성냥불도 빌리지 않는다’는 그들의 담론은 이러한 생각을 잘 담고 있다.

죽음에 대한 부정관념 또한 여느 나라보다 깊다. 초상이 났을 때의 종교의식도 편안한 내세를 빌기 위함과 더불어, 죽음에서 비롯된 부정을 막는 뜻이 크다. 그들의 장례를 보면 임종 당일 유족과 친척이 모여 밤새 주검을 지키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통야(通夜)라 한다.

통야의 풍습은 악령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이때 스님을 모시고 독경을 하는 것도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의 부정을 제거하고 시신을 정화하기 위한 종교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은 심한 부정을 지닌 사건이고, 부정이 따르는 사령(死靈)은 탈을 낼 수 있는 힘이 강하다는 생각은 우리의 민간신앙과 유사하다. 넋굿을 하는 이유도 망자가 지닌 원한과 미련을 씻어주어 죽음의 부정을 제거하는 뜻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장례를 마친 뒤 망자가 사령에서 조상신인 조령(祖靈)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오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사후 49일의 중음기간에 7일마다 일곱 번의 공양을 올리고, 백일과 1주기를 거쳐 3년·7년·13년·17년·23년·27년·33년 째 되는 해마다 재를 치른 뒤에야 비로소 조령으로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종파에 따라서는 50년, 100년까지 잡기도 한다. 이때부터 부정이 따르는 사령이 아니라 후손을 돌보는 조상신이 되어 주기적으로 집을 방문하게 되니, 그들에게 조상공양의 날은 축제일이 될 만하다.

[불교신문3021호/2014년6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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