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500매로 압축한 ‘이것이 불교의 핵심’…저자 곽철환 씨

“불교는 지는 꽃에서 시작해서 피는 꽃으로 마친다. 즉 고(苦)에서 시작해서 열반(涅槃)으로 마친다.” 20년 전 불교입문서 한 권 만나기 어렵던 시절 <불교길라잡이>라는 개론서를 세상에 내놨던 곽철환(62) 씨는 불교의 ‘핵심’을 꼭 집어 이같이 정의했다.

불교는 자연과학처럼 바깥대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내관(內觀)으로, 고통에서 해탈로 나아가는 과정. 저자는 마음에서 떠오르는 자각과 생각, 영상, 감정 등이 어떻게 고(苦)를 일으키는지를 통찰하여 평온한 열반을 얻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불교라고 말한다.

곽철환 씨는 “애지중지하는 ‘에고’가 실은 괴로움과 불안과 갈등의 뿌리여서 삶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면 억겁을 불교공부해도 말짱 헛일”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바깥대상을 지각할 때,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고 온갖 생각과 감정의 선입관으로 채색하여 지각한다. 우리 마음은 ‘지금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는 미래의 일로 갖가지 상상을 떠올려 얽매이고 집착한다.

에고(ego, 自我)의 분별로 마음은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갈라지고 생존에 ‘유리하다’ 혹은 ‘불리하다’, 기분이 ‘좋다’와 ‘나쁘다’로 갈라지면서 둘로 나뉜 온갖 생각과 감정이 잇달아 일어나 그 양쪽을 끊임없이 오락가락한다.

한쪽에 집착하고 다른 한쪽을 회피하며 마치 시계의 추처럼 끊임없이 왕복한다. 집착과 회피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그 왕복운동의 진폭이 커져 더 큰 불안정에 휘둘린다. 집착한다고 해서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회피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교란

자기 마음 살펴보는 ‘內觀’

마음에서 떠오르는

자각, 생각, 영상, 감정…

‘어떻게 苦 일으키는가’

통찰하여 열반 얻는 길

삶이 힘든 이유는 이러한 생각과 동거하면서 서로 싸우기 때문이다. 어디에 집착한다거나 회피한다는 건 거기에 속박되었다는 뜻. 그래서 늘 불안정하고 얽매이고 불안하다. 이러한 마음상태가 곧 고(苦)다.

일체행고(一切行苦). 고타마 붓다가 간파한 근원적 통찰이다.

“인연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왔다가 가기를 거듭하면서 흘러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올 인연은 오고 갈 인연은 간다. 인연은 그냥 흘러가는 관계의 연속일 뿐,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으로 분별하는 건 에고의 잣대로 그은 허구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자신에게 일어났거나 일어나거나 일어날 일은 모두 인연따라 일어나는 것이지, 자신의 뜻이나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게 아니다.

에고란

괴로움ㆍ불안ㆍ갈등의 뿌리

삶에 불리하게 작용함을

절실히 자각하지 못하면

억겁을 불교공부해도 헛일

인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인연에 저항하니까 괴로운 거다. 자신을 인연에 내맡기는 게 안심(安心)에 이르는 길이다. 불필요한 인연은 오지 않는 법. 그래서 수행자는 나쁜 것, 불리한 것, 아프게 하는 인연들을 두고 마음에 급하게 치유해야 할 중요한 신호로 자각하고 스스로 내관한다.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탐닉하거나 지나치게 싫증내지 않는 중도(中道)에 서서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헌신하는 것, 이게 요점이다.”

저자는 우리가 궁극에 도달해야 하는 열반은 탐욕(貪)과 분노(瞋)와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상태라고 줄곧 말한다.

“중생의 탐욕이 끝없는 건, 에고의 속성이 ‘부족감’이어서 결코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분노는 ‘저항’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저항이고, 오고가는 인연을 거스르는 저항이고, 허망한 에고에 상처를 받아서 치솟는 저항이다. 어리석음은 자신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매사에 얼마나 잘 분노하는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반으로 가는 길에 복잡한 교리 따위는 필요 없다. 에고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은 자연히 사라진다.”

열반이란

탐진치 완전 소멸된 상태

인연에 저항하지 않고

인연에 자신을 내맡겨

安心·中道에 이르는 길

<금강경>에서도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살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냐’는 수보리의 첫 물음에 세존은 “자아라는 생각, 인간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목숨이라는 생각을 갖지 마라”고 답한다.

그러한 생각이 집착으로 이어지고 견해로 굳어져, 그것으로 말미암아 아만과 탐욕과 증오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에고가 강한 사람일수록 생각이 많은 것도 과거의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에고가 손상되지 않았는지를 점검하느라 노심초사하고, 미래에 자신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생각이 과거와 미래로 떠돌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에고를 버리지 못할까. 저자는 “에고의 약화가 생존에 불리하다고 착각해서 에고를 애지중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에고가 실은 괴로움과 불안과 갈등의 뿌리여서 삶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절실히 자각하지 못하면 억겁을 불교공부해도 말짱 헛일이다. 게다가 에고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 한 지혜와 자비의 싹은 결코 돋아나지 않는다. 지혜와 자비가 없는 불교는 관념과 의식(儀式)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자아없는 지혜, 자아없는 자비’가 불교의 심장이다.”

곽철환 지음 / 불광출판사

책은 저자가 동국대서 인도철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10여년간 동국역경원에서 사전편찬(가산대사림)불사에 매진한 오랜 내공으로 최근 6년간 고심하면서 수십차례 퇴고를 거쳐 추리고 추려 탄생한 명저다. 불교의 핵심을 짧지만 강렬하게, 꾸밈없이 품위있게 집약했다.

저자는 초기와 대승의 불교경전을 넘나들면서 불교핵심사상에 논리를 부여했고 다양한 불교논서를 인용함으로써 불교 근본사상을 의심없이 풀어냈다. 불교입문서 <불교길라잡이>와 불자들이 믿고 보는 <시공불교사전(2003)>을 집필한 저자의 저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 한권 볼때마다 핵심을 밑줄 긋고 컴퓨터 한글파일로 저장한다는 저자는 “(독자가)처음부터 끝까지 밑줄치게 한다는 각오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책의 맨 마지막, 이 짧은 ‘핵심저서’마저도 뗏목에 불과함을 이같이 피력했다.

“꼬맹이들이 하도 담벼락에 낙서하기에 주인이 담벼락에 ‘여기에 낙서하지 마라’고 낙서했다.”

[불교신문3017호/2014년6월1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