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라 한다. 시민들을 교화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곧 사회가 아픔에 처해 있을 때, 그 아픔을 치유함은 물론 새롭게 대처할 수 있는 설계안을 제시해야 한다.

필자가 불교신문을 처음 접할 때는 군복무시절(1983년)이다. 30여 년을 구독하며, ‘불교신문이 다른 신문과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무엇이 불교신문의 생명력일까?’라는 화두를 간직하고 필자 나름대로 답변을 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불교적 관점에서 사회의 목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파악과 분석이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한 불교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불교신문만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지원청에 근무하고 있어 세월호 참사로 충격이 남달리 크다. 더구나 스스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교감이 대학 동기라서 다른 사람이 일이 아닌 나의 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문제는 나 혼자만의 일인가? 우리 국민이라면 모두가 겪는 아픔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불교신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관점에서 그 구체적인 대안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독자들은 불교의 가르침이 단순히 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의 현실과 삶 속에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현재에 깨어 있는 신문! 그 신문이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야 독자의 사랑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

[불교신문3006호/2014년4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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