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백원기 지음 / 동인

선시(禪詩)는 직관의 언어로 깨달음의 미학을 보여주는 불교문학의 절정이다. 본래 모습을 찾는 과정을 묘사한 선시는 수행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말과 글이 끊어진 선의 세계를 시로 표현한 선시는 어리석음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우리들에게 더없는 위로를 안겨준다.

이 책은 최고의 명작 선시들만 정선한 선시 해설집이다. 진각국사 혜심, 나옹선사, 청허휴정, 초의의순, 경허성우, 만공월면, 한암중원 등의 스님들이 남긴 선시 가운데 수작들만 모아 삶과 수행을 선시와 함께 고찰했다. 그 속에 숨어있는 뜻을 새김으로써 얻게 되는 치유력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시의 출발은 게송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가타’(gatha)가 중국으로 들어와 게(偈)로 음사됐다고 한다. 이 게가 송(誦)과 합쳐져 게송이 된 것이다. 저자는 본격적인 선과 시의 만남은 중국 선종의 5조 홍인스님이 문도들에게 게송을 짓게 해 깨달음의 경지를 파악하고 의발을 전하고자 한데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깨달음의 순간 노래해

본래모습 찾는 과정묘사

‘수행자 삶 비추는 거울’

시를 통해 깨달음을 표현한 것은 신수스님과 혜능스님의 법시(法詩) 이후 수많은 선사와 선객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선과 관련된 책들이 들어오면서 선시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선시의 언어가 시적 영감을 통해 사물과 인생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창작의 원리와 일치한다고 강조한다.

시와 선은 직관을 중시하고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초월적 언어가 상징으로 나타날 경우 선사들의 게송은 시문학의 형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깨달음의 순간을 노래한 선시는 형식적 언어나 논리적 사유를 거부하며 파격적이고 역설적인 경우도 많다.

‘연못가에 홀로 앉았다가/ 물속의 스님을 우연히 만났네/ 말없이 웃으며 서로 바라보고는/ 그대를 안다 해도 대답이 없네.’ 보조국사의 법맥을 이은 고려시대 고승 진각국사 혜심스님의 선시다. 이 시는 스님이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쓴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일체의 분별 사량을 없애고 나면 그 안에 텅 빈 물건이 하나 남는데 도대체 그 텅 빈 물건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며 “자연에 대한 감상을 뛰어넘어 선적인 관조의 묘사로 격조 있는 시적 경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시편”이라고 풀이했다.

‘온갖 괴로움이 이르지 않는 곳에/ 따로 한 세계가 있으니/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주 고요한 열반의 문이다.’ (임종게) 혜심스님은 마지막까지 오고 감에 집착하지 않는 무심한 삶의 관조를 임종게를 통해 드러냈다. 삶을 마무리하는 찰나에 늘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유자재한 열반의 모습으로 생사가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줬다.

선시는 잠자는 오감을 일깨우고 내면의 자아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잡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가 지은 ‘청산은 나를 보고’는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전형적인 선시라고 소개했다.

철저한 무소유의 수행자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물을 직관하고 주체적으로 자기를 깨치려는 선가의 삶을 보여주는 선시다. 저자는 “걸림이 없고 조화롭게 존재하는 자연과의 만남을 노래한 선사의 시편들은 우리 시대를 맑게 하는 화엄의 시심을 표현했다”고 극찬했다.

저자는 “선시를 염송하는 것은 잠자고 있는 오감을 일깨우고 내면의 자아를 움직여 가슴속에 맺혀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마음속에 한줄기 시원스런 감로수와 같은 청량함을 주는 것이 선시가 주는 묘미”라고 강조했다.

책은 1부 선의 기원과 특징, 2부 선시의 발흥 시기인 고려시대 선시와 깨달음의 미학, 3부 조선시대 선시와 마음치유, 4부 근현대 서시와 생명사랑으로 구성돼 있다.

[불교신문2997호/2014년3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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