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집중하여 고요히 살펴볼 줄 아는

‘지관(止觀)’ 수행의 요체를 이르기도

지관 통해 살필 줄 아는 보살 ‘관세음’

‘관자재’라고 일컫는 이유가 있다

만물이 새롭게 모습을 피워내니

눈빛 찬연한 봄의 계절이 온 것이라.

남녘에서는 벌써 화신(花信)이 전해 오고 있지만, 북한산 형제봉 심곡암에는 아직 잔설 바람이 조석으로 차가운 입김을 내뿜고 있다.

그래도 한지 창에 비껴드는 햇살만은 봄 낯빛처럼 환하게 장지의 방바닥에 비쳐 들고 있다. 몇 번의 설매(雪梅) 바람이 불고, 몇 번의 난설(蘭雪) 바람이 불어야, 빛빛이 찬란하고 햇순의 잎잎이 곱고도 찬연한 봄이 가득 찰까나.

겨우내 잿빛 침묵으로 잠들어 있던 만물들이 새롭게 모습을 신비처럼 피워내니, 바야흐로 눈빛 찬연한 봄의 계절이 온 것이라.

봄 님이 온다네요.

내 눈이 그를 맞이하지 않아도 무심히 온 천지 가득 다사로움을 싣고서 사방에 고은 햇 살림을 펼쳐 놓는다네요.

님께선 가없는 포근함을 너른 들녘같은 가슴으로 사랑을 펼쳐내시어 가끔 돌아보는 인색한 나의 눈길에도 그마저 다행이시고, 행복하다고 마냥 생명의 신비를 기쁘다며 내품으시죠. 님이 오시려나 봐요. 촉촉한 내음이 차가운 대기에서 젖어오네요. 양지 볕에서 환하게 웃는 자애한 미소 이내 오고야 말으실 기꺼운 믿음이시죠. 다사로운 바람 허공 가득 채우고 선 넘쳐나는 님의 손결로.

사랑이란 고백 보다 더 먼저 와 감싸 안으시고 생명의 찬미로 노래 읊으시면 이내 천지가 아이 눈빛으로 빛나고 환희 미소로 온몸에 젖어 웃지요.

님이 베푸시는 가랑가랑 애기 꽃비의 속삭임 속에!

이렇게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처럼 오는 봄을 노래해 본다.

또한 지혜의 화신인 관자재보살님의 봄이 오길 염원해 본다.

봄은 본디 ‘본다’의 줄임말이라. 한문으로 ‘본다’의 뜻을 살피니, 단순히 시각적으로 사물을 본다는 뜻으로 ‘견(見)’을 쓰지만, 이는 ‘관(觀)’과는 사뭇 다름이 있다. 설문해자(說問解字)적 해석에 따르면, 학이 물속을 꿰뚫어 보는 형태를 표현한 것으로 다분히 내면을 통찰하는 의미를 지닌 ‘내관(內觀)’에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봄’은 집중하여 고요히 살펴볼 줄 아는 ‘지관(止觀)’이라는 수행의 요체를 이르기도 한다. 지관을 통해 잘 살필 줄 아는 보살을 ‘관세음’이나 ‘관자재’라고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면의 봄’으로써 ‘관(觀)’이야말로 불자들의 봄이 되어야 하리라.

이렇듯 봄날의 ‘봄’의 관점은 ‘외면과 내면의 봄(살핌)’을 함께 의미하거늘, 불자로서 외면만 보고 내면을 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과 다름없을 것이다.

봄 봄 참봄이여! 온누리에 가득차시라. 얼었던 돌개울이 겨우내 침묵으로 지내더니 이제는 자분자분 봄 이야기를 펼쳐 놓고 있다. 이렇게 봄의 속삭임이 이 작은 암자에서도 시작되고 있나 보다. 이 따사로운 초봄날에 내 안과 밖이 온통 봄향기로 충만하시옵길!

[불교신문2988호/2014년2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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