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목판 일제조사 中 임진왜란 이전 경판도 상당수

전국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목판 800여종 가운데 600여종은 국가지정문화재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국가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희귀본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지난 20일 “600여종 가운데 국보나 보물처럼 국가가 지정 관리해야 하는 문화재가 반 이상이고 나머지는 지방유형문화재급”이라며 “귀중한 경판을 영구보존하기 위해서는 문화재로 지정 확대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판의 중요성에 대해 일반 인식이 낮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이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실시한 전국 사찰소장목판 일제조사에서 전문위원으로 조사를 담당했다. 현재 조계종 성보보존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일 만난 박상국 원장은 순천 송광사의 선가귀감 언해본은 현존 유일의 경판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1987년 문화재관리국이 펴낸 <전국사찰소장목판집>에 실린 선가귀감 언해본 목판을 인경한 것. 사진자료=전국사찰소장목판집.
박 원장은 일례로 1610년에 제작된 순천 송광사의 선가귀감 언해본은 현존 유일의 경판이라고 밝혔다. 해남 대흥사가 소장하고 있는 ‘법집별행록절요과목병입사기’ 경판도 마찬가지다. 보조지눌 스님이 쓴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 대해 연담유일 스님이 저술한 유일한 해설서를 목판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밖에도 간행사적으로 유일한 목판이 상당수지만 도난사고를 우려해 밝히지 않았다. 사찰 주변 인적이 드물고 잠금장치가 허술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미 선가귀감 언해본 경판이 국가지정문화재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것은 문화재청이나 불교문화재연구소 등 전문가와 기관들 사이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정확한 수량파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7년 나온 <전국사찰소장목판집>에는 송광사 경판이 65종 3901판으로 집계됐지만, 2006년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불교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62종 3836판으로 조사됐다. 정확한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문화재 지정절차를 밟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올해부터 3년에 걸쳐 사찰 목판 일제조사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정확한 현황 파악을 통해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조사 결과 가치 있는 주요 문화재는 문화재 지정을 진행한다. 

박 원장은 이어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경판도 청도 운문사, 공주 갑사 등 전국 곳곳에 남아있다고 밝혔다. 전쟁으로 많은 양의 경판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이 시기에 살아남은 판은 그만큼 희소가치가 높다. 박 원장은 “임진왜란 이전 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귀중본으로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대출은 물론이고 구해 보기도 쉽지 않다”며 목판 원판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이어 불교의 핵심인 법보로서의 위치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판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사실 개별사찰에서 비지정문화재로 뚜렷한 지원 없이 수백 수천의 목판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대부분 사찰은 불단 아래에 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공기의 유통 없이 먼지와 뒤엉켜 있거나, 쥐나 해충 등의 배설물로 인해 오염돼 있다. 판전이나 판가를 갖추고 있는 사찰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체계적인 정리 없이 그대로 쌓여져 있다. 전남의 한 사찰은 화재로 2/3 이상의 목판을 소실했다.

서지학자인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조계종 성보보존위원)는 “불교문화재연구소 일제조사를 통해 더 많은 사찰 경판이 나올 것이다. 하루빨리 종합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책 출판의 근본자료이자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켜내야 한다”고 밝혔다.

송광사 성보박물관 선가귀감 권 상 경판. 사진제공=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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