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력스님, 중앙승가대 박사학위 논문서 강조

“도작의 <안락집>은 담란의 <왕생논주(往生論註)>에서 설하고 있는 염불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관무량수경>을 재해석하여 종체(宗體)로 삼은 것이다.”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올 여름 학위를 받는 혜력스님〈사진〉이 박사논문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혜력스님은 ‘도작(道綽)의 <안락집(安樂集)>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관무량수경>의 의정이보(依正二報)를 염불삼매로 규정하고 그 삼매의 체계에 천친(天親)의 <왕생론>인 오념문(五念門)의 중요한 부분을 취해 말법 시대에 상응하는 왕생행(往生行)을 전개했다”고 지적했다.
도작은 중국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춘추전국시대를 능가하는 남북조 말부터 당나라 초기까지 살았던 스님이다. <속고승전(續高僧傳)> 기록에 따르면 도작스님은 14세에 출가해 <열반경>을 널리 전하면서 강의했다.

만년에 혜찬(慧瓚)스님의 교단에서 공(空)의 보편적인 진리를 닦으며 정진했다. 도력이 북방까지 알려져 실천불교를 행하여 민중부터 당태종 이세민까지 감화 시키는 사상을 실천했다. 담란스님의 정토신앙을 계승하고, 중생을 교화하는데 진력을 다했다. 온화한 미소로 사람을 맞이하고, 육시(六時)에 독실히 예참하고 부처님을 공경했다. 도작스님은 645년 세수 84세로 원적에 들었다.

도작스님은 14세에 출가했다가 15세에 폐불(廢佛)로 타의에 의해 환속하기도 했다. 당시 심경을 도작스님은 <안락집>에서 “이 사바세계에서 비록 고락이보(苦樂二報)가 있으나 항상 즐거움은 적고 고통은 많다”면서 “아미타불의 정토는 물과 새와 나무들이 항상 법음을 드러내니, 수도와 교리를 밝히고, 청백(淸白)을 구족하여 능히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혜력스님은 박사논문에서 “(도작스님은) 칭명염불하여 극락왕생할 수 있는 것을 확정했다”면서 “이러한 영향을 받아 후대의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운서주굉(雲棲헼朱宏, 1535~1615), 인광법사(印光法師, 1535~1615), 용성진종(龍城震鍾, 1864~1940) 등은 칭명염불을 선행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문스님(원로의원)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혜력스님은 중앙승가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후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번에 박사학위까지 받는다.
혜력스님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살펴주신 은사 스님과 지도해주신 태원스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어른스님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불교신문2937호/2013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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