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교수-에를링키텔센 시인 ‘모든 것을 사랑하며’ 발간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

박노자 . 에를링 키텔센 엮음책과함께 펴냄

 

박노자 . 에를링 키텔센 엮음책과함께 펴냄

러시아출신 역사학자와

노르웨이 시인이

동양 선사들 임종게에 담긴

광대한 자비사상 풀어내

 

어렵고 혼란한 시대

살다가 가지만

기상천외한 수사와 문구로

떠나는 순간 세상에 전한

긍적적인 메시지

한국과 중국, 일본 고승들의 임종게 60편을 해설한 책이 나왔다. 도서출판 ‘책과함께’는 최근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러시아 출신 역사학자 박노자교수(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동아시아학 및 한국학과)가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승이 남긴 임종게들을 풀어 엮어낸 저작이다. 공동저자인 노르웨이 시인 에를링 키텔센이 한 편의 임종게를 두고 박 교수와 함께 대담을 나누고 있다. 동아시아 선사들의 임종게를 동양권이 아닌 러시아와 노르웨이 시인이 해석한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는 2006년 노르웨이어로 발간된 임종게 모음집 <Diamantfjellene(금강산)>의 번역서다.

 

박노자 교수는 동아시아학을 전공한 역사학자로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 선사들의 임종게를 분석해 이들 선사들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전하는 무한자비의 보편적 메시지를 찾아냈다. 여기에 시인인 에를링 키텔센은 스칸디나비아 신화 등 자국 문화를 이용해서 임종게를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

이 책은 고승들이 일생을 살다 가는 마지막에 함축된 삶의 총체적 문구인 임종게를 해석해 내고 대화형식으로 궁금한 부분을 풀어냄으로써 깨달음의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전달하고 있다. 선사들은 자신과 만물을 꿰뚫어 보고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의 희열을 표현하는 오도송(悟道頌)을 쏟아낸다. 또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자신과 세계의 실상에 대해 드라마틱한 표현의 문구로 임종게(臨終偈)를 남긴다.

이 게송들은 대개 자신과 만물을 객관화시키고 대상화시켜 삶과 죽음을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선사들은 오도송(悟道頌)이나 임종게(臨終偈)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완성하고 아무런 집착 없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에는 ‘나’와 ‘만물’을 상대화하는 데 성공한 순간의 희열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의 전복, ‘나’와 ‘세계’의 상대화를 통한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노래한다. 눈이 이마까지 덮을 정도로 내리는 가운데 참선을 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던 혜심스님은 죽기 직전에 쓴 시를 통해 죽음을 ‘고통이 없는 열반의 커다란 고요함’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기근과 전화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다간 중국의 세우스님은 언젠가 생사의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하늘에 뜬 둥근 달’로 표현했다. 이처럼 선사들의 임종게는 ‘최후의 설법’ 역할을 했다. 나아가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수사 가득한 표현의 임종게들도 있다.

“나무 사람 고개에서 옥피리 부니, 돌여자가 시냇가서 춤을 추노라”(향곡 혜림), “나이 마흔여덟에, 성인도 범인도 모조리 죽였네. 영웅이라서 아니고”(도솔 종열), “이제는 모든 걸 떨쳐버려 삼천대천의 우주를 깨부수네. 어허, 이제 온몸으로 구할 것 없으니 산 채 황천에 가리라”(도원)에서처럼 도발적이며 자극적인 글들을 통해 ‘깨침’을 더 빨리 이루게 하는 마지막 ‘사자후’가 곧 임종게다.

또한 생의 한계를 벗어난 선사들의 임종게는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한 개체의 자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보여준다.

“잘못과 실수가 많아, 서쪽을 가리키는데 도리어 동쪽을 향한다”(호암 체정),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거니, 임종게를 남길 이유가 없네”(원오 극근), “육십삼 년 동안 한마디 설법도 안 했었네”(경당 각원) 등의 임종게는 삶에 대한 초연함을 보여주며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 공(空)을 직시할수 있는 기회를 열어 보이고 있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는 박노자 교수가 선사들이 입멸에 드는 순간에 궁극적 진리를 전달하는 임종게를 통해 진정한 ‘자비심’을 발견하고 해설 작업에 몰두한 결과물이다. 그가 선불교의 죽음관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선사들의 임종게가 사후 안락의 세계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죽음의 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선사들은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죽음은 삶의 유기적 일부분임을 깨닫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퇴옹 성철스님에 대해서도 박노자교수는 “오로지를 고집하는 차원에서는 독선과 독재적인 성격이 동시대의 박정희와 엇비슷하기도 했다”라는 사뭇 시각을 달리한 파격적인 해설을 하고 있다.

박노자 교수는 선사들의 임종게는 결국 선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들 선사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켰다고 보았다. 이타적인 동기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그들은 선불교에서 다소 소홀히 다뤄지는 자비심의 덕목을 제시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래서 박노자 교수의 임종게 해설은 선사들 각각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 보고 있다.

저자들은 한 편의 임종게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남긴 삶의 궤적을 하나의 작품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란의 시대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국가의 부름에 어떠한 응답을 했는지, 깨달음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을 통해 임종게를 신비화하지 않고 있다. 원래 선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중일 불교 수행자들이 남겨놓은 임종게 풀이를 통해 박노자 교수는 삶을 냉철하게 되돌아 보게 한다. 그래서 임종게 한 편 한 편들이 끊임없이 이기적인 마음을 싹트게 하는 현 시대 우리들의 삶에 불교의 무한자비심을 일깨우는 지혜의 경책을 내리고 있다.

 

 


공동저자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 이름은 티코노프 블라디미르다. 레닌그라드 국립대를 졸업했으며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동아시아학 및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민족주의 역사, 근현대 불교사, 근대 대외교섭사다. 지은 책으로 <거꾸로 보는 고대사>, <붓다를 죽인 부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 <나를 배반한 역사>,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이 있다.

 

공동저자 에를링 키텔센

(Erling Kittelsen)은…

 

노르웨이 시인. 동양의 문학, 특히 한국의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2004년에 김남주의 시를 포함한 한국의 시들을 모아 <한국명시집>을 출간했다.

이외에도 비서구권 시 작품을 다수 번역했다. 2002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 문학상인 도블로(Dobloug)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하기도 했다.

 

 

■ 추천의 글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야기”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우주 종교를 제안한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다. “나의 영원은 지금 여기 이 순간, 나의 우주는 지금 여기, 나 자신 우주의 태어남과 죽음, 영원의 태어남과 죽음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화엄경> 이야기다.

“우주 생명의 바다 위에 나라는 한 인간의 물결이 일고 가라앉네. 물결이 일고 가라앉음은 생명바다의 일상이네, 태어남은 무엇인가? 물결이 일어남이네. 죽음은 무엇인가? 물결이 가라앉음이네. 삶은 무엇인가? 물결이 일어나고 가라앉음이네. 내일과 죽음에 대한 최고의 준비는 무엇인가? 자비의 마음으로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이네.”

지금 순간에서 영원을, 지금 여기에서 우주를 살아간, 그리하여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그들의 죽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고 유쾌한 일이다. 일독을 권한다.

도법스님(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대표)

 

“불교계 벽 넘는 임종게 해설”

박노자 교수의 임종게 해설은, 종래의 불교계에서 감히 뛰어넘지 못하던 고질적인 벽들을 과감하게 뛰어넘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말투는 생각나는대로 적어 내려가는 수필식이지만, 그의 생각은 항상 도전적이다. 첫째, 그는 임종게를 신비화하지 않는다. 그동안 불교계에서 쏟아져 나온 무수한 오도송이나 임종게를 한마디로 후려쳐버리는 도전적인 태도를 뚜렷하게 나타낸다. 원래 선사들이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둘째로 그는 항상 죽음 자체를 신비화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거기서 생의 의미를 찾는다.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대목이다.

박성배(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부룩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지혜의 경책”

이 책 속엔 저자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이 절실히 묻어나 있다. 자칫 우리와 차원이 다르게만 느껴지는 수행자들의 임종게에 저자는 비판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또한 저자는 임종게를 자본주의 현실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자를 배제하는 척박한 우리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지혜의 경책(警策)으로 제시한다. 단순하게 한 번 훑어보고 말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언제든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놓일 것이다.

김환수(미국 듀크대학교 종교학과 / 동양학과 교수)

[불교신문2928호/2013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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