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금강경 이야기 1, 2’ 출간한 설우스님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 1.2

설우스님 지음사유수 펴냄

선<禪>포교 강의 내용 엮어

“금강경 공부하면 반야지혜 얻어

행복한 삶 살 수 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사구게가

반야사상 가장 잘 보여 줘”

■ 설우스님은 …

1971년 원명스님을 은사로 원적사에서 입산 출가,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수도암 도성암 등에서 35안거를 성만했다. 조계종 간화선 수행지침서 편집위원을 역임하며 간화선 체계화에 큰 공을 세웠으며 선원청규 편집위원을 역임하며 선원의 수행가풍 정립에 기여했다. 현재 조계종 기본선원 교선사, 승가고시위원, 승가청규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청주 법인정사와 창원 진불선원 선원장을 맡아 선(禪)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를 출간한 설우스님은 “부처님 경전을 배우고 법문을 듣는 것은 오랜 무명업식을 버리고 마음의 고향인 자성청정심을 찾기 위해서”라고 설파한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출가 후 40여년을 제방선원에서 참선수행에 매진해 온 수좌인 청주 법인정사와 창원 진불선원장인 설우스님이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를 두권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았다. 스님은 “출가 후 30여 년 동안 선원에서 정진해 바른 견해(正見)을 얻은 뒤 선(禪)포교를 위해 세상에 나와 선원을 열어 법을 설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고 밝혔다.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만나 새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책을 내게 된 계기는.

= 걸망을 둘러 맨 수좌가 책을 내는 게 부끄럽다. 위 선배 도반스님들이 선원에서 선원장 선덕 등으로 있는데도 (부끄러워) 책 선물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공부할 때 철(성철)스님께서는 ‘수좌 5계’를 두어 ‘책 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 가르침에 따라 나도 출가 후 강원을 가지 않고 곧바로 선원으로 들어가 30여년을 정진했다. 처음에는 철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이해가 된다. 책이라는 건 수행의 안목이 섰을 때 봐야 지혜를 응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주관과 주체성 없이 책에 젖어들고 만다. 1990년 말에 크게 몸이 아픈 뒤 회복된 뒤 세상에 나와 선(禪) 포교를 하면서 진불선원과 법인정사에서 강의한 내용을 엮었다.

- 사교입선(捨敎入禪)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화두가 잘 들려 의심이 돈발(頓發 : 문득 떠오름)할 때 책을 보면 의심이 약해지기 때문에 책을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초학자는 화두의 속성과 사유세계의 안목을 갖추기 위한 사상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책을 봐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늘 양쪽을 잘 병행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 왜 불자들은 <금강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 모든 불자들이나 수행자들은 <금강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반야지혜를 드러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늘 <금강경>을 공부해 지혜를 밝히고 신앙심을 증장시키기 위해서는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을 공부해 보현행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금강경>은 문수보살이요, ‘보현행원품’은 보현보살이라고 보면 된다.

- 다른 <금강경> 해설서들이 많이 나왔는데 스님이 출간한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의 특징이 있다면.

= 이전 책들은 교리를 토대로 엮어진 듯하다. 학자들 입장에서 교리를 스토리로 엮어놓은 것 같다. 이에 비해 이번에 나온 책은 일반 신도들 입장에서 교리적인 입장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공부하고 마음을 쓰는(用心) 입장에서 썼다. 불교는 마음공부를 하는 종교다. 그래서 마음을 보는 관심(觀心)을 어떻게 실용화시키는지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신도들 입장에서 볼 때는 부담이 없고 쉬울 것으로 본다.

- <금강경> 공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 <금강경> 16분인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이 있다. 이 장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금강경>을 읽으면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고 하기도 한다. 이는 <벽암록>에도 나온다. 관심성(觀心性)으로 볼때 <금강경>을 공부하면 문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공(空)은 곧 연기(緣起)의 법칙을 말한다. 연기법은 관계성이고 보현행원의 원력으로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상생시킨다. ‘능정업장분’은 <금강경>을 읽으면 반야지혜가 생기고 지금까지 짊어지고 왔던 아상, 인상, 중생상에 매몰된 내 자신의 과오를 반야지혜가 천시여기고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당연히 <금강경>을 공부하면 그것(중생상에 매몰된 자신의 과오)가 해체되고 반야지혜로 대체된다. 반야지혜는 내가 자각하는 동시에(순간에) 진여불성이 드러난다. 파사현정처럼 ‘삿된 것을 파하는 순간 정법이 드러난다’는 원리와 같다.

- <금강경>에서 중요시 할 부분이 있다면.

= 대승보살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사종심(四種心)이다. 첫 번째가 광대심(廣大心)이다. <금강경>에서는 구류중생을 (섭수해) 제도하겠다고 했다. 광대심은 이 모든 중생들을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보호하겠다는 마음이고 도든 중생을 차별 없이 이롭게 하겠다는 무연대비심이다.

두 번째가 제일심(第一心)인데 가장 심오한 마음이다. 경문에 “모든 중생들을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하고 제도하리라”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는 부처가 못 되더라도 모든 중생들이 먼저 열반락에 들어 부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을 옹호하고 보호하면서 그들을 깨우쳐서 그들이 먼저 무여열반의 세계에 들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제일 큰 원력이다.

세 번째가 상심(常心)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항상한 마음’이다. 일체중생이 한 몸이라는 연기적 입장에서 평등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먼저 이고득락(離苦得樂)시켜 열반에 들게 하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부전도심(不顚倒心)이다. 즉 전도되지 않은 마음을 말한다. 전도된 마음은 보살이 스스로 중생이라는 분별심을 내는 것이다. 중생이 항상 ‘나는 부처가 아니고 공부를 해도 부처되기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비하를 하는 게 전도된 몽상이다. 그 전도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게 부전도심이다.

- 개인적으로 스님이 제일 좋아하는 경전 구절은.

= 어느 구절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분별심이니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렇지만 <금강경>의 핵심구절은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요, 약견제상(若見諸非相)이 비상(卽見)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이다. 이 사구게(四句偈)는 <금강경> 사구게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하게 반야사상을 드러낸 것이라 해서 표준사구게라고도 한다. 이 본분사의 입장에 들어가면 중도(中道)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 한 구절이 600부의 반야경전을 뛰어 넘기도 한다. 5000여자의 <금강경> 가운데 이 사구게가 생명이자 골수라고 보면 된다.

-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 출간 이후 향후 어떤 책을 낼 계획인가.

= ‘선어록 시리즈’를 내 보고 싶다. (선어록은) 해제철마다 강의 요청이 와서 스님들에게 강의하기도 한다. 정견(正見)에 입각해 생활 속의 비유를 많이 들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낼 계획이다. 여태동 기자

 

 

■ 저자 머리말

“‘금강경’은 중생이 본래

행복한 존재 깨닫게 해주는 禪經”

오랜 무명업식 버리고

자성청정심 찾으시길…

평소 저는 만나는 불자들에게 “즐기며 사십시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인생을 즐겁게 산다고 하니까 자기 멋대로 사는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즐겁게 산다’는 말의 의미는 서로에게 상생적인 도움을 베풀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상호관계를 연기(緣起)라고 하셨어요. 연기를 아는 자만이 즐겁게 산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을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괴로움을 여의고 즐겁고 기쁘게 사는 이고득락(離苦得樂)에 있습니다. 그럼 이고득락을 하는 구체적인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입니다. 윤회는 업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 무명업식을 끊고 자기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고 신행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해탈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이고득락 하는 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부처님 경전을 배우고 법문을 듣는 것은 오랜 무명업식을 버리고 마음의 고향인 자성청정심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깊이 사유하고 반성하는 그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본래 청정한 본성이 작용하는 무위법(無爲法)을 체득하게 되고 그 무위법을 체득하는 자리가 바로 부처가 출현하는 자리가 되는 겁니다. 부처는 무엇입니까? 부처는 지금까지 내가 붙들고 있던 중생업식을 훨훨 벗어 버리고 마음이 텅 비워진 반야의 생명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금강경>에서 부처님과 수보리가 묻고 답하는 내용을 깊이 이해하게 되면 지금 중생의 괴로운 모습이 본래 부족함이 없는 여래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됩니다. 끊어야 할 번뇌가 실로 있지 않음을 바로 보고, 따라서 번뇌에 물들지 않으며, 보살의 닦음에도 머물지 않고, 깨쳐도 깨침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실다운 수행입니다.

경전을 올바르게 공부하면 세간법에 대한 집착을 여읨은 물론 출세간법의 지견에도 머무르지 않아 이른바 눈을 감아도 뜨고 있고 눈을 떠도 뜨고 있는 일쌍안(一雙眼)이 되어 생활속에서도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지난 날 불교 TV에서 강의하고 훗날 창원 진불선원 불자님들과 함께 탁마하는 마음으로 다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서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를 펴내게 되었으니 여러분들도 이 <금강경> 공부를 통해 날마다 행복한 삶 되시길 바랍니다.

[불교신문2920호/2013년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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