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기행 ⑥ 대전 영선사 사찰음식이야기

대전 영선사는 지난 5월26일 다문화가정 가정주부 10여명을 대상으로 사찰 전통음식 체험행사를 가졌다.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서 한국에 시집온 여성들이 영선사 총무 법송스님의 음식특강을 듣고 있다.

영선사 사찰음식 3요소

1. 청정한 음식

위생.남의 맛 훔치지 않기

2. 유연한 조화

짠맛 신맛…여러가지 맛 조화

3. 여법한 마음가짐

분별 끊고 욕심 버리는 마음

 

사찰음식은 둘째치고, 한국사찰조차 아직 낯설기만 한 다문화가정 ‘며느리’들이 스님에 둘러싸였다. “사찰음식이 무엇일까요?” 구체적인 답변을 기다렸던 스님에게 “절에서 먹는거”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그럼 절음식은 뭐가 다를까?” 이번엔 여러가지 응답이 쏟아졌다. “고기 안들어가요”, “조미료 안써요”, “마늘 없어요”….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등 국적도 다양한 10여명의 어린(?) 주부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연신 굴리면서 스님의 손놀림에 집중했다. 

영선사 총무 법송스님

지난 5월26일 대전 영선사(주지 현도스님).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전통음식 체험행사 현장이다. 아이들 울음소리 고함소리로 경내가 시끌벅적했지만 이 날 ‘셰프’인 총무 법송스님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사찰음식을 이야기했다. ‘오신채’나 ‘오관게’를 설명하자 완벽하게 알아듣진 못하는 눈초리지만, 신기한 듯 메모하는 이도 있었다.

법송스님이 이 날 선보인 음식은 상추겉절이와 깻잎구이, 느타리버섯양념구이다. 스님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공개’하고 시연한 뒤, 3개국 출신 며느리들이 다시 만들어 경합을 벌였다. 너무 짜서 탈락, 맛이 있으나 모양이 미워서 탈락…결국 우승은 캄보디아팀이 차지했다.

“여러분, 사찰에서 스님들은 모든 음식을 약(藥)이라고 여깁니다. 귀한 약을 함부로 만들어 쉽게 버리지 않죠? 또 약을 만드는데 머릿속에 잡념이 많으면 좋은 약이 되겠어요? 스님들이 수행하여 진리를 얻기 위해 약과 같이 음식을 먹듯이, 여러분도 집에 돌아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좋은 약을 짓는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만들어 보세요. 아마 맛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 날 점심공양은 함께 만든 음식과 스님들이 내주신 찬으로 ‘잔칫상’이 됐다. 캄보디아에서 시집 온 세살배기 민주엄마 반스레이베우(26)씨는 “한국에 와서 사찰에서 스님으로부터 음식을 배워서 정말 재밌고 행복하다”며 즐거워했다.

영선사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지정 사찰음식특화사찰이다. 비구니 성관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상좌인 현도스님과 법송스님이 영선사 사찰음식의 문화와 전통을 잇고 있다. 주지 현도스님은 ‘이론’에 강하고 총무 법송스님은 ‘실기’에 능하다. 사형사제간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두 스님은 정확한 역할분담과 철저한 자기수행이 쌓여 영선사의 사격(寺格)을 나날이 드높이고 있다.

스승으로부터 배운 제자가 결국 스승을 능가한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있다지만, 은사 스님의 수제비와 쑥개떡은 지금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란다. ‘수제비와 개떡이 맛나면 얼마나 맛나다고….’ 이렇게 생각하며 되물었지만 법송스님의 표정은 그 놀라운 맛과 향을 떠올리는 듯 탄성을 쏟아냈다. 레시피랄 것도 없다. “잡다한 양념 넣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하룻밤 재운 밀가루반죽에 콩기름이나 들기름 절대 넣지 않고, 다음날 채수물 끓을 때 얇디얇게 편 반죽을 ‘축~축~축~’ 손으로 떠내는데, 10인분을 끓여도 수제비의 두께와 모양이 똑같을 정도로 정갈하다고 한다. 시원한 맛이야 표현해 무엇하랴. 쑥개떡도 마찬가지다. 쑥을 많이 넣고 데칠 때 소금이나 소다 같은 것들을 일체 넣지 않는 것이 비결이다. 대신 반죽을 오래한다. 시기도 중요하다. 단오(음력 5.5) 전에 채취한 쑥이 독성이 없고 맛깔스러워, 요즘이 바로 쑥개떡이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법송스님은 영선사에 머물기 전 주로 선방에서 정진했다. 선방 수좌로서 만끽한 복덕을 회향하기 위해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사찰음식까지 인연이 닿았다. 지금은 동국대 사찰음식조리교육학에서 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사찰음식은 ‘청정’과 ‘유연’, ‘여법’ 등 3요소가 중요하죠. 청정은 위생 뿐만아니라 남의 맛을 훔쳐선 안된다는 의미도 있어요. 또 여러가지 맛이 유연하게 조화를 이뤄야 하고 여법한 마음가짐이 밑받침돼야 맛이 납니다.” 법송스님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고향인 울진에서 어머니 손잡고 산천을 누비면서 산나물을 캔 ‘경력’이 있다. 산나물이 지천에 깔린 공주 태화산의 작은 토굴에서 은사 스님을 시봉했던 시절도 산약초를 제대로 배운 인연이 됐다.

고집스럽게 집착하고, 분별하고 욕심부리는 마음으로 제아무리 고급 식재료를 써서 음식을 요리해도 그 맛은 뻔하다. 이토록 깨끗하고 맛깔스러운 영선사표 된장이며 간장 고추장은 짐작컨대 도심에선 얻기 힘든 깊은 산사의 청정수가 한몫 했으리라 생각했다. 헉! 반전이다. “우리요? 수돗물 받아서 장 담그는데요.” 재료탓 도구탓 무슨탓 하면서 음식 못하는 여성들이여, 당신들이 요리할 때 갖는 그 마음가짐을 탓하시오!

 

상상해 보세요…영선사 토마토국수! 

깻잎구이.

 

불행히도 영선사 토마토국수를 맛보진 못했다. 토마토를 으깨서 국수에 비벼먹으면 맛이 일품이라는 법송스님의 설명에도 쉬 짐작이 안간다. 토마토스파게티랑 많이 다를까? 해마다 이맘때쯤 죽순이 한창일 때 죽순국수도 별미라고. 어쨌든 스님들의 유별난 ‘국수사랑’은 익히 알지만, 이런 별미는 스님들끼리만 ‘몰래’ 해드시는지 맛볼 행운을 얻기란 쉽지 않다.

영선사에서 처음 만난 깻잎구이는 ‘강추’다. 보통 깻잎을 양념에 재거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데, 깻잎을 불에 굽다니, 신기하다. 밤과 풋고추 당근과 대추를 채썰어 만든 양념장을 깻잎에 켜켜이 발라서 들기름 두른 팬에 구우면 끝이다. 뜨끈뜨끈한 밥 한술에 얹어 먹으면 맛이 신선하고 구수한게 끝내준다. 겉절이 또한 만만치 않은 반찬이지만, 스님들이 가르쳐준대로 한다면 상추겉절이는 해볼만하다. 들기름과 깨소금, 집간장과 물, 조청 고춧가루 고추장 등으로 양념을 만들어 상추에 발라 놓으면 근사한 겉절이가 완성된다.

바삭바삭한 초피(제피)부각도 영선사에 가야 맛볼 수 있는 명품요리다. 일반적으로 부각은 김이나 깻잎에 찹쌀풀을 발라 말려 두었다가 기름에 튀겨 만든다. 하지만 영선사에는 초피부각을 대표하여 감자부각, 쑥부각, 방아부각, 동백부각, 두릅부각, 방풍잎부각 등 셀수없는 부각들이 스님 손에서 태어난다.

현도스님과 법송스님은 요리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았고 특별한 비법을 전수받은 바도 없다. 전국의 어른 스님들이 일부러 찾아와 음식맛을 볼 정도로 정갈한 솜씨는 어디서 왔을까. 대전 영선사를 한번쯤 찾아야 할 이유다. 대전=하정은 기자

 

 

“곳간에서 인심난다”…영선사의 특별한 음식포교

다문화가정 대상 사찰음식 체험행사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집집마다 엄마손맛이 있다면, 영선사가 있는 대전 도마동에는 ‘스님 손맛’이 유명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주지 현도스님의 지론이 발단이다. 매월 사찰음식잔치를 열어서 600인분 음식을 만들어 지역민들에게 푸짐한 공양을 올린다. 일반 메뉴도 아니다. 연잎밥과 호박볶음, 도토리묵구이, 우엉잡채, 고추부각, 파래전 등 고급레스토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영양만점의 사찰음식들이다. 영선사 스님들의 손맛이 입소문을 타자 누구하나 빼놓을 수도 없는 노릇. 작년에는 대전 서구청 직원 600명, 대전경찰청 식구들 500명이 영선사를 다녀갔다.

멀리 전북 완주 복지시설 정심원 가족 400명도 영선사까지 찾아와 음식을 맛봤다. 올해로 4년째 홀로사는 어르신들의 밑반찬 배달까지 도맡고 있다.

음식을 나누면서 포교하고 정진하는 영선사는 신도들의 요청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법인 ‘좋은벗들의모임’도 만들어 100여명의 회원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난 5월20일에는 우리나라 첨단과학의 메카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사찰음식을 선보였다. ‘태울석림제’라는 카이스트 축제에 맞춰 열린 이 날 행사에서 스님들은 김장아찌, 우엉조림, 유부버섯조림 등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다양한 사찰음식들을 준비했다. 50여가지가 넘는 음식을 700여명이 맛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이렇게 담백한 음식을 먹으니 건강해지는 느낌”이라며 좋아했고, “이런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도 영선사의 자그마한 텃밭에서 스님들은 상추에 고추, 민들레 잔대 도라지 더덕 취나물 곤드레를 심고 정성스레 나물밭을 일군다.

[불교신문2920호/2013년6월15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