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는 일군들의 참으로 지슬을 쩌서 내놓곤 했다. 고슬고슬하게 쪄진 지슬은 땅이 갈라지듯 껍질이 갈라져 있었다. 갓 찐 지슬을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농번기가 끝난 후, 아랫목엔 동네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수다를 떠는데 그 한가운데도 지슬을 담은 양푼이 있었다. 뜨거운 지슬과 우스개로 시름을 덜던 어른들이었다. 지슬은 그렇게 먹을 게 귀한 시절, 간식이었고 주전부리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도 사람들이 ‘지슬’ ‘지슬’ 한다. 이번엔 영화 ‘지슬’이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독립영화로 최근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제주도민의 9분의 1정도가 희생된 4.3 사건은 제주사람들에게 아픔이다. 어떤 집은 몰살을 당했고 어떤 마을은 송두리째 불태워졌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가슴에 응어리를 갖고 사셨고 우린 어릴 적부터 늘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오멸 감독은 후손들이 알아야 할 역사이기에 책으로 읽고 귀로 들었어도 낯설기만 했던 이야기를 흑백영상 속에 담았다. 평생 영화관에 가보지 않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아들, 손자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모여 들었다. 얼마 전 나도 아이와 함께 봤다. 영화초반 제주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투리는 웃음을 유발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믿기지 못할 일들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무장대를 소탕한다는 명분하에 해안가 5km 밖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진다. 동조자로 몰린 주민들이 학살을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하지만 결국 그들은 희생당하고 만다.

그들은 평범한 동네 이웃들이었다. 동굴 속에 숨어 있으면서도 굶고 있을 돼지를 걱정하고 장가 못간 동네 총각을 놀리며 웃는다. 그리고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을 걱정한다. 마을과 함께 불타며 죽어 간 노모는 지슬을 남기고 사람들은 앞일을 모른 채 허기를 달랜다. 쫓고 쫓기는 그들 사이에 진실과 이유는 없었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했고 사람들은 그저 살고 싶었다. 분명 피해자는 선량한 우리 부모요 삼촌이요 숙모였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먹먹한 마음은 지속되었다. 영화 ‘지슬’은 그렇게 가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기억하라고 한다. 이제 4.3 사건이 다가온다. 부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도 방언이다. 오늘 밤 나는 지슬을 찐다.

[불교신문 2900호/2013년 3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