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쥐가 구멍 뚫듯 해야 합니다”

정찬주 지음/ 열림원

참선이 왜 살길 찾는 공부인가. 이에 책은 혜암스님이 정진했던 가야산, 오대산, 지리산, 태백산, 영축산 등의 기행으로 답을 찾아낸다. 작가 정찬주가 2012년 9월부터 3개월간 12회로 교보문고 북로그에 연재했던 이 글은 혜암스님의 법문 중에서도 화두 드는 법 설법이 기본 줄기이다.

‘늙은 쥐가 쌀궤를 한 구멍만 뚫듯 해야 합니다. 미련한 쥐나 어린 쥐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쌀궤를 뚫을 적에 이짝에 뚫었다 저짝에 뚫었다 하는데 늙은 쥐는 쌀궤를 많이 뚫어봤기 때문에 쌀이 나오든 말든 죽어라고 한 구멍만 뚫는다. 화두 공부도 늙은 쥐가 쌀궤 뚫듯이 해야 도가 깨달아진다.’

혜암스님의 화두 드는 법에 대한 풀이는 이렇다. ‘이는 공부가 안 된다고 저리 따져보고 이리 따져보고 또 다른 화두로 바꾸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구멍만 뚫으면서 오늘 못다 뚫으면 또 내일 뚫고 내일도 못 뚫으면 또 모레, 조금씩 뚫더라도 자꾸 애써 뚫으면 뚫어지는 것이다.’ 스님의 이 기록을 작가는 좀 더 세밀히 기록했다. ‘당장 화두가 잘 안 들리더라도 그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니 의심하지 말고 한 근을 못 들 사람은 한 근을 들려고 애쓰고 두 근을 못 들 사람은 두 근을 들려고 애쓰는 것이 공부이다.’

혜암스님의 화두 법에서 근간은 ‘무슨 일이든 죽을 각오로 임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말이다. 작가는 “스님이 수행했던 산중암자를 다니면서 문득 ‘공부하다 죽어라’가 절 울타리 안의 단순한 법문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던진 벼락같은 화두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성철스님과 함께한 혜암스님(오른쪽).

저자는 이를 이렇게 확대해 간다. “혜암스님의 ‘공부하다 죽어라’는 직접적으로는 위법망구(爲法忘軀) 즉,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몸을 버리라는 의미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지금 자기가 집중하고 있는 일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녹아들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저자는 서문에서 “지금 하는 일에 스님의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씀을 화두 삼아 무아를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온몸을 다 바친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고 삶의 행복이 아닐까”라면서 “그 일이 자기를 위하고 남을 위한 일이라면 복덕(福德)까지 쌓는 일이니 얼마나 더없는 행복이고 정진인가”라고 반문한다.

해인총림 방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등을 거쳐 조계종 제10대 종정에 추대됐던 혜암스님은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것이 나를 알고 인생을 아는 데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작가 정찬주는 불교 소재 소설과 산문을 집필하며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등을 냈고,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고 사진은 전문작가 유동영 씨의 작품이 곁들여졌다.

[불교신문 2890호/2013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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