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도 인정 않는 ‘창조과학’ 정부기관명으로 추진한다?

 특정 종교신념에 불과한

창조론 떠올리게 해…

인수위에 근본주의 기독교

성향 단체 활동자 참여

‘정부 새 틀’ 적임자인가

새 정부의 조직 개편 논의에서 신설될 부처로 ‘미래창조과학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뚜렷한 밑그림이 나오기도 전에 명칭과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설을 주장하는 ‘창조과학론’을 떠올리게 해 명칭부터 맞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미래창조’로 바꿔 불러도 기독교의 창조설을 떠올리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는 합리적이고 전문성을 갖춰야 할 행정기관명이 종교적 개념으로 덧씌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가 보도한 ‘한국, 창조론의 요구에 항복’이라는 기사를 예로 들며, “과학계가 인정하지 않는 ‘창조과학’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해를 받기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네이처는 지난해 5월 창조론자들의 청원으로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소식을 기사화 했고, 해외에도 토픽감으로 알려질 정도로 논란이 됐다. 창조설에 입각해 진화학과 진화생물학을 공격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본 뜻은 그렇지 않겠지만, 명칭은 반드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위원으로 임명된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가 근본주의 기독교 성향 연구모임인 창조과학회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수위원 24명 가운데 유일한 과학자 출신인 장 교수에게 미래창조과학부 기능을 설정하는데 역할이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종교적 신념을 주장하는 단체에 소속된 인물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낼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임공동대표는 “창조과학회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한 사람이 과학 분야의 전반적인 틀을 짜는 적임자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부부처명은 언어가 경제적이어야 하는데 ‘미래’라는 쓸데없는 수식어가 빠지고 나면, ‘창조과학부’가 된다”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영어로 바꾸면 더 이상하다”며 “학술단체가 아닌 종교단체가 자신들의 신념을 과학교과서에 싣자고 한 황당한 일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공식 기관명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역설했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정체성이 확실한 부처를 신설하려면 ‘미래과학부’라는 명칭으로 신설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장순흥 교수는 정부정책과 개인 종교는 별개라는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트위터에서도 ‘장관은 당연히 목사가 해야겠죠’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왠지 창조과학을 가르칠 것 같은 느낌’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편 박근혜 당선인이 후보시절 미래창조과학부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자, 마치 약속이나 한듯 개신교 단체에서 환영 논평을 낸 바 있다. 서울대 기독교동문회는 지난 12월 발표 직후 논평을 통해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창조주가 부여한 지혜로 작업할 수 있는 존재”라며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을 환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창조과학이란…

30여 년간 교과서에서 진화론 삭제 노력

창조과학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신앙에 기초해 과학을 받아들이는 종교적 견해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가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하며, 창조설이 나오지 않는 기존 생물학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들어 몇몇 기독교인 과학자를 중심으로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되면서 창조과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창립 이후 소망교회 등 대형교회 외에도 카이스트를 비롯한 개신교 영향권의 대학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카이스트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창조과학회 창조과학전시회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다.

창조과학자들은 구약성서의 창조 설화를 과학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로 믿는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려는 창조론자들의 노력은 설립 후 30여년간 계속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09년 5월에는 교과서에서 창조설을 가르쳐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과학계에 창조과학과 관련된 논문이 실리는 경우는 전혀 없는데다 학문 가치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의 활동 범위 또한 기독교 인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나 저술활동에 국한되어 있다.

 

[불교신문 2880호/ 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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