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화쟁위원회·불교신문 공동기획] 3부 <21>

누운 채 입을 떼어 보았다.

원효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미동 없이 그대로 한참을 더 앉아있던 혜공이

어느 순간 ‘파하!’ 숨을 몰아쉬더니 눈을 떴다.

혜공의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 스승을 올려다보던

원효의 심장으로 뜨거운 무엇인가 울컥 치받쳤다.

스승 앞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안해서 원효가 헛기침을

한 참이었다. 혜공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원효를 향해 삼배를 하였다.

원효는 놀라 말리고 싶었으나

두 눈만이 성할 뿐 온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구나/ 서럽구나 우리네여/ 공덕 닦으려오다

단아 단아 서럽구나/ 서럽구나 우리네여/ 울지 마라 단아/ 너를 잊지 않으리니”

새벽예불을 마치고 분황사 대웅전을 나와 처소로 돌아가는 원효의 귀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벽부터 애끓는 노래가…… 원효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돌층계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모았다. 지난 1년간 저 노래가 서라벌 곳곳을 떠돌았다. 이제 바야흐로 천기가 움직이는가. 원효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상에 발 딛고 사는 유정한 존재들의 마음이 천지를 감동시킬 때 우주는 응답해야 하는 것이리라.

간밤 꿈에 검은 학이 날아올랐다. 여왕께서 드디어 하늘우물을 지으려는 징조인 것일까. 원효의 생각에 그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때를 잘 맞추지 못하면 무고한 백성들이 공연한 희생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왕의 뜻한 바가 백성과 만나는 것을 비담의 세력이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1년 전 비담에게 끌려가 당했던 고초와 그 때 목도한 그 모든 장면들을 원효는 생생히 기억했다.

황룡사 장륙상에서 단이 떨어져 죽은 날로부터 사흘 동안, 비담의 백관당 비밀병영에서 원효는 지옥을 보았다. 그곳엔 원효 말고도 여러 사람이 끌려와 있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귀족세력에 반대하는 여왕의 옹호자들이었다. 정적들을 탄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을 조작하고 민심을 호도하는 일들이 비밀리에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거기서 죽어나간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원효에게는 육체에 직접 가해지는 폭력만은 자제되었지만 그들은 검은 옻칠이 된 송판을 촘촘히 이어 붙인 독방에 원효를 가둔 채 사흘 밤낮을 재우지 않고 반복적으로 문초를 되풀이했다. 벽의 바로 바깥은 각종 형틀이 즐비하게 놓인 고문장이었다. 송판의 틈새로 바깥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고문장의 비명소리가 여과 없이 들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문초를 겪으며 원효는 지옥의 유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잦은 전쟁의 피바람 속에서 죽고 죽이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생긴 습성일까. 목숨에 대한 연민이라곤 손톱만치도 들어설 자리 없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저 상명하복의 규율에 회의 없이 복종하는 비담의 병사들은 살인귀들 같았다. 그들은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제 부모의 등짝을 갈퀴로 찍어 갈길 수도 있을 듯싶었다.

비담은 집요하게 추궁했다. “부처를 능욕한 계집이 써놓은 편지의 서체는 요석의 서체와 닮았다. 요석이 여왕의 수족임은 만천하가 아는 일, 여왕이 시켰는가? 신라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여주는 비록 임금이라 할지라도 용서할 수 없는 모반자다! 여왕과 요석을 만나 네놈이 나눈 이야기는 무엇인가? 지령을 받았는가?

운제산 항사사에서 홀연 남악으로 입산하고서 하산하자마자 황룡사로 기어든 이유가 무엇인가.” 그간의 원효의 행적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것은 그가 푼 복면자들 때문이리라. 비담은 무언가에 씐 듯 이글거리는 눈빛과 한 치의 회의 없는 냉정하고 당당한 태도로 원효에게 자백을 다그쳤다.

어쩌다 이런 지옥 속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인지 한탄하던 그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원효를 덮쳤다. 수행자인 자신이 세속의 탐욕과 더러운 계략의 한가운데 있다는 치욕으로 온몸을 떨었고, 벼락을 맞은 듯 몸이 불타고 불탄 몸 위로 다시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끔찍한 지옥이 원효의 몸 안에 고통스럽게 똬리를 틀었다.

잠이 들려 할 때마다 찬물을 뿌리고 거듭 똑같은 내용을 문초하며 비담의 병사들이 원효에게 잿빛 물을 건넬 때 원효는 역한 냄새가 나는 그 물을 말없이 받아 마시며 또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나로서 살고 있는가. 대체 나의 집착의 근원은 어디인가. 혼돈에 가득 찬 물음들 저 너머에 육신을 벗어놓고 저 세상으로 간 소녀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했다. 단아, 육신은 내게도 너무 무겁구나.

사흘 만에 비담의 병영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원효를 처음 맞아준 사람은 뜻밖에도 요석이었다. 원효를 분황사 일주문에서 맞던 요석의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한달음에 내달려와 손을 꼭 잡고 부축하듯 원효의 팔짱을 껴올 때 그녀의 얼굴은 이지러지고 땀을 흘렸다.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피폐하게 무너져 내린 원효의 내면을 짐작했던 것이리라.

죽은 듯이 깊은 잠을 자고서 원효가 눈을 떴을 때는 혜공이 바로 옆에서 원효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눈을 감은 채 좌선에 들어 있었다. 그때 원효는 자신의 몸 전체가 아주 따뜻한 기운을 수혈 받고 있다고 느꼈다. 몸 가죽에 박힌 낱낱의 모든 모공들을 통해 외계의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굽이쳐 흘러들고 있는 듯한, 마치 가느다란 실개천 수천 줄기가 생겨나 외계와 연결된 채 은하처럼 출렁거리는 듯한 신이한 경험이었다.

시야가 조금 더 명확해지자 자신과 연결된 외계가 혜공임을 알아챘으며, 그와 동시에 혜공의 얼굴과 몸피가 한없이 쪼그라들고 있는 듯한 환시가 보였다. 바싹 야윈 혜공의 이마에 촘촘히 진땀이 배어나와 있었다. 그런 스승을 올려다보며 원효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스님, 원효가 돌아왔습니다.” 누운 채 입을 떼어 보았다. 원효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미동 없이 그대로 한참을 더 앉아있던 혜공이 어느 순간 ‘파하!’ 숨을 몰아쉬더니 눈을 떴다. 혜공의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 스승을 올려다보던 원효의 심장으로 뜨거운 무엇인가 울컥 치받쳤다. 스승 앞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안해서 원효가 헛기침을 한 참이었다.

혜공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원효를 향해 삼배를 하였다. 원효는 놀라 말리고 싶었으나 두 눈만이 성할 뿐 온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천천히 삼배를 마친 혜공은 예전처럼 천진한 얼굴로 원효 옆에 벌렁 누웠다.

“어어, 고단하다. 껍데기 멀쩡한데 속은 죄다 상해 너덜너덜 지옥이 되어 오면 천하의 부개화상도 손 못쓴다. 마음이 무너지면 육신은 재처럼 바수어져 내리는 거다 이놈아. 너 때문에 내 목숨줄 왕창 줄었으니 어찌 갚을 것이냐. 에잇, 곤하다. 난 이제 좀 잘란다.”

가을이 가고 서라벌의 찬 겨울이 깊어가는 동안 외곽을 돌아 도심까지 흘러온 소녀 단의 죽음에 관한 소문들은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동사하거나 아사하고 심지어 억울하게 매 맞아 죽는 천민이야 늘 있어온 일이었으나 백성들은 무감하게 듣고 보던 그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둠이 실눈을 뜨고 빛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듯이. 가름막 안쪽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소문마다 형용하는 단의 최후 모습은 달랐으나 어딘지 그 모든 묘사는 모두 실재하는 단처럼 생생하였다. 귀신이 되어 떠도는 단을 보았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골목골목으로 퍼져가고, 자고 일어났더니 대문 앞에 단의 염주가 놓여있더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오스스한 서라벌의 겨울이 그렇게 지나고 새봄이 와 나정의 얼었던 물이 녹고 황룡사 담장 밖에 홍매가 첫 봉오리를 터뜨렸을 때,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구나”로 시작되는 노래가 불려 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누가 지어 부르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노래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라벌 도심으로 시나브로 퍼져갔다.

백성들은 한 소녀의 죽음을 구체적인 노랫말로 추모하고 있었다. 여름 지나 농사일이 한갓져지는 계절이 시작되자 바야흐로 불붙은 단풍처럼 노래는 더욱 번졌고 그 무엇인가 곧 터져 나오려 웅웅거리는 것을 원효는 느끼고 있었다.

“울지 마라 단아, 너를 잊지 않으리니.” 논배미에서 나락을 베면서도 백성들은 단을 추모하는 노래를 불렀다. 바유에 의하면 사포 항구에서도, 서라벌에서 한참 먼 아미타림 인근의 마을들에서도 같은 노래가 불리고 있다고 했다.

향촌 골골까지 노래가 퍼지자 급기야 법당군당 최고 책임자 비담은 나라 망치는 망요를 유포시킨 자들을 색출하겠다는 공고를 내붙였고 노래 금지령을 내렸다. 그 무렵 남산 동편 초입의 팽나무 거목이 마른벼락을 맞아 쪼개졌다. 그리고 그날 밤 살별이 지나갔다. 이어서 남산의 불상들 여러 기에서 불두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드디어는 장륙상이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이 거대한 불상의 발꿈치를 적셨다고 했다. 황룡사에서 일하는 불목하니가 흥건하게 젖은 불상의 눈물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웃전에 여쭈었다가 모진 매를 당하고 혀를 뽑힌 후 쫓겨났다는 풍문까지 있었다.

서라벌은 이제 어딜 가나 단의 노래로 끓어 넘쳤다. 1절이 먼저 지어졌는지 2절이 먼저였는지 처음부터 1절과 2절이 함께 불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성들의 슬픔에 젖줄을 대고 노래는 점점 더 퍼져갔다.

비담의 비밀병영에서 문초를 받고 돌아온 후 원효는 분황사 경내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처소로 걸음을 옮기는 원효는 아직까지 한쪽 발을 조금 절었다. 이윽고 처소 앞마당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 원효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아침노을이 동편 하늘에 가득했다. 마당가 금강송 옆에 선 채 합장을 하고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삼천 번 염송할 때쯤 “이크, 에크!” 흰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활달한 목청의 흰새가 원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오늘도 역시 지고 있는 짐이 한 꾸러미였다. 흰새는 쯧쯧 혀를 차며 누군가를 향해 “나쁜 놈들!” 하고 이를 갈았다.

옷을 바로잡으며 원효가 흰새와 시선을 맞추자 “형님.” 하고 흰새가 다짜고짜 말했다.

“황룡사가 그렇게 지저분한 곳이었어요?”

흰새의 갑작스런 질문에 황룡사 장륙존상에서 떨어져 내리던 빗금 한줄기가 원효의 각막에 맺히며 재연되듯 선명했다. 원효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나지막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더러운 곳은 없다. 사람이 그리 만드는 것이다. 그래, 바깥은 어떠하냐?”

“네. 오늘내일 아무튼 뭔가 일어나긴 할 거 같아요. 단의 1주기가 내일이잖아요.”

얼굴이 상기된 흰새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바로 옆에서 들리듯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구나, 서럽구나 우리네여, 공덕 닦으려오다” 아이들이 석탑을 돌며 탑돌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꽃을 든 소녀들이 보였다.

“가테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바하” 원효가 마치 대구로 노래를 하듯 중얼거렸다.

“뭔 말이에요, 형님?”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온전히 가는 이여,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서역 천축국의 말이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다시 들렸다. 슬프고도 평화로운 기운이 번져 나오는 원효의 말간 얼굴을 흰새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요한 것을 잊었다는 얼굴로 갑자기 무릎을 탁 치더니 대나무 원통 속에서 둥글게 말린 장지를 꺼냈다.

“바유형님이 이거 전해드리라고 하였어요. 글피 안에 바유형님과 부개화상님이 오실 거예요. 상세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자 하셨습니다.”

흰새가 펼쳐 보인 장지에는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원형, 사각형, 삼각형, 복잡한 선과 점들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원효가 한동안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하늘우물 도면이었다. 때가 온 것인가. 아이들은 이제 분황사를 나가 거리로 나가려는지 노랫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불교신문 2851호/ 9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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