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지관스님, 조계사 무자년 동안거 해제 법문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지난 9일 조계사에서 봉행된 무자년 동안거 해제법회에서 하루 30분씩이라도 참선할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장차 장부,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마음 자세를 갖고 보살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재가불자로서 가장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지난 9일 무자년 동안거 해제를 맞아 법전 종정예하와 전국의 총림 방장스님들은 일제히 법어를 발표했다. 전국 97개 선원에서 결제에 든 대중은 총 2295명. 결제 대중들은 이날 일제히 해제법회를 갖고 또 다른 정진을 위한 길에 들어섰다.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이날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 법상에 올라 하루 30분씩이라도 참선을 계속할 것을 당부했다. 법당 안팎이 2000여 명의 사부대중으로 꽉 들어찬 가운데 열린 법회에서 총무원장 스님은 출가 대중이나 재가 대중은 신분에 차이는 있을 뿐 깨달음을 향한 정진에는 차별이 없다며 일념으로 정진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1시간 가까이 진행된 법문 요지.

올해는 하루일과에 참선을 꼭 넣고

부처님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보살행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길…

정월보름은 동안거 해제하는 날입니다. 해제(解制)라는 것은 단속을 엄하게 했다가 한 기간 지나면 약간 풀어놓는 기간을 말 합니다. 전국 90여개 선방 2300여 스님들이 생사대사(生死大事),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코자 지난 10월15일 결제해 90일이 지나 오늘 해제라고 하는 한 매듭을 맞이한 것입니다.

선방에서 그동안 무엇을 하느냐?

참선(參禪)하는 겁니다. 일체망상을 다 던져버리고 오롯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가지고 씨름해서 일념이 될 때 산란한 망상심이 일어날 수 없고, 안정된 마음 곧 선정(禪定)의 경지가 나타납니다. 선정이 나타나면 마음이 산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고요한 상태에서 무엇을 볼 때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지혜가 자라나고 지혜가 자라나면 빛이 납니다. 빛이 나면 무명이 다 없어져 오롯한 밝은 광명 밖에 없습니다. 반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밝음이 둘인가 하나인가.

어두우면 밝음은 없고 밝으면 어둠이 없는 것뿐이지 밝음과 어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밝으면 어리석음이 없고, 어리석음이 있으면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찾고자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참선하기 전에 마음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섭심(攝心)을 해야 합니다. 흩어진 마음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병과 의술에 대해 설한 경전이 여럿 있고 경(經) 속에서도 많은 말씀이 있는데 ‘몸의 병을 다스리기보다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데 치중하라’는 말씀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음이 조화가 안 되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도를 주장하셨습니다. ‘있다고 하는 유(有)에도 없다고 하는 무(無)에도 치우치지 말라. 안정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떳떳하고 당당한 위치가 바로 중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선도 첫째 목적은 견성성불(見性成佛), 자기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누구냐? ‘나(我)’ 자신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육체가 아닙니다. 육체를 지배하는 운전사가 있습니다. 아무리 고급차라도 혼자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운전사가 조정해야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몸둥이는 껍데기입니다. 그 안에 주재하는 자가 바로 ‘나’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으려면 먼저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해서 선정이 생겨야 합니다. 마음이 안정돼 지혜의 물이 고여야 달도 비치는 것입니다. 구름이 끼면 달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달이 없는 게 아니라 구름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성(自性)을 왜 못 보느냐? 견성을 왜 못하느냐? 탐.진.치라고 하는 무명의 구름에 덮여 빛이 반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타 보셨죠? 구름 아래는 컴컴하지만 그 위에 올라가보면 환한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우리의 본래 마음자리는 청정무구하고 원만무결하고 티 한 점 없습니다. 어둠도 없고, 밝고 고요한 자리가 있어 그 자리를 찾기 위해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견성성불은 왜 하느냐?

자기를 자기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끌려 다니는 게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지배를 당하느냐 지배하느냐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비구 비구니 출가대중과 우바새 우바이 재가대중이 신분상 구분은 있지만 가지고 있는 마음자리는 차별이 없습니다. 구름의 두께에 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부대중 누구나 다 참선해서 견성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가 문제지 재가신도라고 해서 안 되고 출가한 스님이라고 해서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념으로 얼마나 용맹정진을 잘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단지 재가신도는 가정 일, 사회 일 등 챙길 것이 많아 마음이 흩어지는 일이 많을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견성성불을 하려 하는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이타심(利他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제도하자면 중생과 함께 동사섭(同事攝)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님도 32응신(應身)이라고 해서 각각의 상대가 되어 33가지로 몸을 나투지 않습니까.

불교사를 봐도 스님들만 공부해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의 대표적인 재가신도가 유마(維摩) 거사입니다. 중국에는 방(龐) 거사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부설(浮雪) 거사가 있습니다. 유마거사는 이름이 거사지 금속여래(金粟如來)의 후신입니다. 화광동진(和光同塵)하면서 중생제도위해 나타나신 분입니다. 당시에도 부처님 이외는 당할 이가 없었습니다.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

次試選佛場(차시선불장)

心空及第歸(심공급제귀)


시방에서 함께 모여들어

낱낱이 무위법을 공부하네

여기는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니

마음이 ‘공’해져서 급제해서 돌아가리라

방거사가 마조스님을 만나서 깨닫고 지은 노래입니다. 시방에 있는 모든 대중이 함께 모인 곳이 어디냐? 차시선불장(次試選佛場)이라. 부처를 골라내는 선방이란 말입니다. 거기서 무위법(無爲法)을 배우는 것입니다. 무위법은 끝도 없고 영원한 것입니다. 무위법을 닦아 그 경지를 터득하면 생사를 초월하기 때문에 영원히 자기 것이 됩니다.

무위법을 배우면 무엇이 오느냐? 심공급제귀(心空及第歸)라, 마음이 비워집니다. 마음에 꽉 차 있던 탐.진.치가 다 녹는단 말입니다. 마음에 뭐가 꽉 차면 답답하지만 그것이 녹으면 편안해집니다.

비가 내려올 때는 보살정신입니다. 비는 차별이 없는데 큰 나무는 많이 흡수하고 작은 나무는 적게 흡수하고. 제 양대로 흡수합니다. ‘삼초이목(三草二木)’이라고, 부처님의 법문은 일미법문(一味法門)인데 중생들한테 수용되는 것은 근기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비어야 뭐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내 것을 남에게 주고 나를 비워야 들어오지 제 것을 다 껴안고 있으면 어디로 무엇이 들어올 수가 있나요. 마음을 비워야 업(業)도 적게 짓는 것입니다. 그 이치를 좀 알아야 합니다.

견성성불이 첫째 목적이지만 참선은 집중력을 배양하고, 몸의 병도 다스립니다. 정신을 한데 모아야 힘이 생깁니다. 집중이 돼 의지가 강해지면 어려움을 극복할 힘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이라는 것은 생사해탈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에도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선도 철저히 해야 하고 기도도 철저히 해야 하고. 생활도 아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결제기간이 아니더라도 하루 30분씩이라도 참선을 해보세요. 짧게 하더라도 산란심을 없애고 마음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망상을 가라앉히고 거기서 건강도 역시 좋아진다고 하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금년 일년내내 하루 일과에 참선 한 과목을 넣어보세요. 산철에도 그렇게 공부하고 또 (음력) 4월 보름 결제에 들어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그게 익어지면 성불하는 것이지 다른 게 뭐 있겠습니까.

부처님도 과거에는 다 같은 범부였습니다. 세세생생 수행해서 성불한 것이지 본래 도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내가 비록 좀 시원찮은 범부지만 장차 장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보살행을 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내 살림 살아가면서 그렇게 정진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신문 2501호/ 2009년 2월18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