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문수사

불이문으로 향하는 길 주변 청단풍 한그루가 홀로 얼굴을 붉히며 도량을 외호하고 있다.
고창 문수사로 향했다. 고창 문수사(주지 선법스님)는 수령 100년에서 400년 정도의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적으로 문수사 입구에서 문수산 중턱까지 좌우측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단풍나무 이외에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혼생하는 다른 수종들과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풍나무 숲으로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하지만 먼저 들린 선운사에서 단풍은 이미 떨어졌음을 확인했기에 단풍에 대한 기대는 접고 편안한 마음으로 문수사로 향했다. 택시 기사분이 처음 오셨다면 일주문부터 걸어 올라가기를 추천해준다. 옛말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잎을 내려놓아 나무아래 쌓이고 쌓인 낙엽 단풍이 수북하다.

 일주문에서 700m에 이르는 길

 형형색색 단풍으로 장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군락 반겨

몇 일전까지 단풍인파에 붐볐을 이 호젓한 길의 절경을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카메라 파인더를 눈에서 떼지 못하고 걷는다. 이 길은 단풍이 나무에 붙어 있을 때와는 다르다. 낙엽이 된 단풍이 바람따라 일렁인다. 일주문에서 오르면 오른편으로만 주로 보이던 단풍 군락이 400m쯤 지나서 관리사무소와 만나고 나면 왼쪽으로 길이 꺾이면서 오른편 계곡주변으로 더욱 광범위한 단풍군락이 나타난다. 왼편으로 문수사가 보인다.

불이문 넘어 법당에서는 문수보살… 문수보살… 문수보살을 끊임없이 되뇌는 간절한 문수보살 정근이 계속된다. 오늘은 11월10일 수능일이다. 서있는 이곳은 문수산 문수사. 법당 뒤편에는 문수전이 자리한다. 일주문 옆에서 보았던 호남제일문수도장이라는 비석이 떠오른다. 법당 왼편의 약수도 지혜의 샘을 뜻하는 용지천(湧智泉)이다.

소각장 굴뚝에 피어나는 연기가 얼굴표정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어 준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지혜란 세속에서는 명석한 머리를 말하기만,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루는 혜안을 뜻한다. 지혜와 행원은 불교의 두 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측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우측에서 행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깨달음의 핵심적 내용인 지혜를 상징하다 보니 문수보살은 주로 수행자들의 공부를 경책하는 역할을 많이 맡는다. 문수보살에 얽힌 사연들은 관음이나 미타, 지장 등 다른 대승의 보살들과는 내용이 약간 다르다. 그 보살들이 주로 서민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문수보살은 스님의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문수신앙의 특징이 바로 여기세 있다.

오늘만큼은 누구도 깨달음을 이루는 혜안의 지혜를 빌려 이 시각 수능을 치루고 있을 자녀가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를 바라는 간절한 모정을 탓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을빛을 담은 문수산. 사진 중앙의 아담한 전각이 문수전이다.
도량은 아기자기하고 단출하다. 둥글둥글한 불이문은 들어서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아주고 도량 한켠 소각장에는 사람 얼굴형상의 굴뚝을 설치했는데 코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종무소에서 막 나서는 주지 스님께 명함을 건네며 도량에 대해 묻고자 했으나, 날이 날인지라 기도에 동참하러 법당으로 가는 길이라며 부도전으로 향하는 길이 아름답다는 말과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말만 간신히 남기고 서둘러 법당으로 들어가셨다.

단풍 길에서 불이문과 반대방향으로 부도전이 있다. 부도전으로 향하는 길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풍군락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관계로 일반인의 출입은 금하고 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간다.

폭이 좁은 단정한 길에 충분히 폭신하게 쌓여져 있는 단풍낙엽 길은 근처 개울의 습기를 머금어 한 땀 한 땀 햇살이 물들인 새 양탄자를 걷는 듯하다. 붉기만 하던 양탄자는 노란색이 조금씩 섞이더니 이내 색노란 양탄자로 변하기도 한다. 뒤를 돌아보니 간신히 나무에 매달려 있는 노란 은행잎이 바람결에 손을 흔들며 인사해준다.  

혼자 보기에 정말 아름다운 부도전 가는길.

[불교신문 2773호/ 12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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