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엄마’ 고두심

가족은 그에게 영원한 화두이다. 가장 많은 자식을 둔 배우, ‘엄마’가 더 맞춤이라 만인의 엄마로 아낌없이 속살을 내놓았던 그의 가족관이 변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아내와 어머니로 분신한 배우 고두심(61)씨는 또 다시 길용우의 부인이 됐다.

MBC ‘반짝반짝 빛나는’에 이어 지난 10월29일 첫 방송된 SBS 주말드라마 ‘내일이 오면’에서 부부로 재등장했다. 더 이상 끌려가는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 가족의 갈등을 적극대처하는 화두풀이역이다.

영원한 배우인 그에게 다른 숙제도 던져졌다. 제주도를 세계7대 자연경관에 올리자는 국회결의 후 전국적 운동에서 선도역을 맡은 것이다. “제주도는 어디를 가나 다 좋다. 흔치않은 모습들이, 더구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해서 예쁘고 사랑스럽고 정겹다.”

“나이는 숫자 불과 배우는 멈추지 않는다”

깊어가는 가을에 해인사 참배 예정

제주 자랑에 대해서만큼은 평소의 그와 다르다. 제주출신의 그는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운동에 앞장서 있다. 홍보대사를 맡아 국제 브랜드 파워 키우기에 일대 전환점을 맞게 했다.

지난 10월25일 새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 SBS탄현 세트장에서 만난 그는 ‘청정과 담백’이란 용어로 제주를 함축하며 말을 시작했다. “제주의 음식과 문화, 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제주는 단순히 자연경관에 그치지 않고 마음과 육신, 자연의 연결고리에 청정성과 순수함을 중요가치로 설명하며 이를 불교와 연결했다.

11월10일까지 이어지는 응모에 의한 세계 7대 자연 경관은 스위스 뉴세븐원더스(N7W) 재단이 주관하는 캠페인으로, 2007년부터 440곳의 후보로 시작해, 최종 후보 28곳이 결정되었고, 이중 7곳이 인터넷이나 전화로 무제한 중복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현재 후보지는 제주도를 비롯해 미국 그랜드 캐니언, 브라질 아마존,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제도 등 28곳이다.

스위스의 영화제작자 베른하트르 베버가 지난 2000년에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재단’을 이끌며 새천년 출범기념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인터넷 투표로 시행했던 것과 같이 이번 7대경관에 영화인으로 그가 나섰다. 그가 뽑은 제주도의 4대 자랑을 보자.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주상절리대, 땅속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용암동굴,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화산체인 성산일출봉, 사계절 다른 옷으로 갈아있는 한라산. 그만큼 그에게 제주도는 순수와 담백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버금가고 있었다.

불가사의는 엄마 역에서 다시 엿보인다. 세 번의 방송대상 중에 엄마역이 두 번이다. “‘꽃보다 아름다워’가 아무래도 영향 컸던 것 같다. 그전에 엄마 하면 자식을 가르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자식들하고 조곤조곤 대화하면서 동등한 관계로 가도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치매가 오는 바람에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내가 해놓고도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매 장면 찍을 때마다 너무 울어서 두통이 올 정도로 아팠으니까.”

그가 방송계에 영원한 ‘엄마’가 된 것은 양촌리 맏며느리를 떠난 직후다. 22년간의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이장집 맏며느리로 살아가던 그는 시동생과 아랫동서, 조카 입양아 모두를 친 자식보다 더 너그럽게 보살피는 전통 가족상 이미지의 완결판이었다. 힘든 삶의 귀의처로서 그는 단아하면서도 고집스러운 ‘엄마’ 연기자로 자리를 굳혔다.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드라마 인물들에서 유일한 의지처였던 그의 연기력 절정은 역시 반전이다. 자식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다 오히려 치매에 걸리는 ‘엄마’ 는 그 모습만으로도 찬란한 빛을 발했고 ‘꽃보다 아름다워’로 KBS 연기대상과 MBC에서도 ‘한강수 타령’으로 연기대상을 휩쓸었다. 이렇게 그는 2004년에 통산 5번째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배우는 멈추지 않는다.” 그만큼 그에게서 연기는 생산력을 키웠다. 최초 수상은 드라마 ‘덕이’ 로 SBS 연기대상 수상이고 이는 탄탄한 연기력의 공증과정이었다. 최초로 방송 3사 연기대상을 모두 수상한 그는 1989년 ‘사랑의 굴레’ 로 대상, 이어 1990년 ‘춤추는 가얏고’ 로 MBC 연기대상 식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가장 화려했던 1990년대 드라마에서 지칠 줄 모르는 작품활동을 지속한 저력은 무엇인가. 그의 답은 ‘몰입과 집중’이다. ‘대원군’ ‘산너머 저쪽’ ‘남편의 여자’ ‘아들과 딸’ ‘박봉숙 변호사’ ‘코리아 게이트’ ‘목욕탕집 남자들’ ‘엄마의 깃발’ ‘내가 사는 이유’ ‘마당 깊은 집’ 등으로 이어져 온 그의 출연작들 이름은 시대상을 대변하기 충분했다.

그에 대응한 그의 열정은 철저한 배역 공부이다. “박봉숙 변호사 드라마를 위해서 법률책 10여권을 독파했었다. 그때 ‘펠리칸 브리프’도 봤다.” 그는 이 역으로 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을 맡았다.

가장 느낌이 좋았던 배역은 무엇인가란 물음의 답은 첫째가 ‘전원일기’ 둘째가 ‘꽃보다 아름다워’, 그리고 ‘춤추는 가얏고’와 ‘마당 깊은 집’ 등이다. 그만큼 겹치기 출연에 따른 수많은 소재와 배역에서도 그의 중심엔 ‘어머니’가 있다. 철저하게 제주도에 뿌리를 둔 ‘어머니 사랑’이 그의 연기 정체성이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한 사람들도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사랑한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그렇게 나의 어머니가 일깨웠다.”

대동아전쟁 발발 당시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무역업을 개척했던 아버지와 수십만 민초들이 목숨을 잃었던 제주 4.3사태를 인내와 너그러움으로 견뎌 낸 어머니를 둔 그녀, 7남매 중 어머니를 쏙 빼닮은 그가 다섯째로서 22세 배우가 되기 위해 ‘가야호’ 3등실에 몸을 싣고 바다를 건너 서울로 와 24살 늦깎이로 MBC공채배우에 뽑혔지만 허드렛일과 단역에 불과해 무역회사에 다녔던 그의 무명시절 언제나 중심엔 엄마의 중력이 뒷받침이 됐었다. 실제 그는 데뷔작부터 처녀역을 못해봤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해보여도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격량을 품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는 그런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어려운 일 분노할 일이 있어도 어머니는 늘 잔잔한 미소로 평생을 일관하며 우리를 보듬어 주셨다. 뜨거운 열정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놓고 따뜻하고 넉넉한 얼굴과 가슴으로 정직하게 사람을 표현하는 그런 어머니의 미소를 배우고 싶었고, 연기로 그 미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연기는 어머니의 미소에 한걸음씩 더 다가가는 수행이었다. 60세 환갑에 이른 즈음 그간의 연기인생에 대해 “배우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많은 드라마 영화의 연기로 내가 사랑하는 일을 지금껏 할 수 있다는데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답했다.

그는 바쁠수록 촬영 일정에 쫓길수록 사찰은 찾는다. 새 드라마에 바빠진 최근, 늦가을에 불현듯 찾을 사찰로 합천 해인사와 하동 쌍계사를 꼽았다. 다시 시작된 SBS주말연속극 ‘내일이 오면’ 드라마 촬영장에서 그는 “불교신행을 마음으로부터 먼저 잘하고 있다.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 정진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이번 배역 손정인은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고 가족간 갈등을 적극 해결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부도덕하며 우유부단한 남편의 갈지자 행보를 바라보지 않고 다잡으면서 평생의 화두 ‘엄마’를 단호하게 들었다.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고두심 씨는…

제주여고를 졸업하고 MBC 공채5기 탤런트로 시작해 ‘갈대’로 데뷔했다. 1989년 <사랑의 굴레>로 KBS 연기대상 수상. 1990년 <춤추는 가얏고>로 MBC 연기대상 수상. 2000년 <덕이>로 SBS 연기대상 수상. 2004년 <한강수 타령>으로 MBC 연기대상 수상.

그리고 같은 해 <꽃보다 아름다워>로 또 다시 KBS 연기대상 수상.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방송 3사 연기대상을 모두 수상, 2004년 한해에 두 개 방송사의 연기대상을 손에 꿰찬 파란의 주인공이다. 그 외에도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신인상, 1982년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최우수 여자 조연상, 1997년 제주도 문화상, 2007년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서울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 축산을 사랑하는 시민의모임 공동대표, 함평세계나비곤충엑스포 홍보대사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보여왔다. 수많은 드라마 이외에도 영화 ‘자유부인’ ‘깃발없는 기수’ ‘두 여인’ ‘푸른계절의 일기’ ‘굳세어라 금순아’ ‘엄마’ ‘도마 안중근’ ‘그랑프리’, 그리고 연극 ‘미란돌리나의 연인들’ ‘꽃피는 체리’ ‘나, 여자에요’ 등에 출연했다.

오랫동안 ‘미원’ 광고에서 한국 여인의 전형미를 보여줬고,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맏며느리의 스웨터 차림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이번 ‘내일이 오면’에서는 정장을 즐겨입는 카리스마 넘치는 가장형 어머니역으로 분신했다.

[불교신문 2766호/ 11월9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