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때 자장율사가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통도사 금강계단.

   

     

 일주문 옆에 놓인 아치형 돌다리 주변 계곡 풍경이 아름답다.

 

 

 

중노전에 위치한 관음전은 조선 영조 때 조성됐다.

 

 

평일인데도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당우마다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부처님 진신사리서 비롯된 法燈

천년 넘게 海東을 비추다 

  

 

낮엔 아직 덥지만 산사엔 조금씩 가을향기가 깃들어 있다. 지난 9월29일 불지종찰 영축총림 통도사를 찾았다. 평일인데도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관람객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절로 향하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관광객 대신 법복을 입은 보살님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각 당우는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통도사를 왜 국지대찰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통도사는 신라 때 창건됐다. 당나라에 건너가 수도를 하던 자장율사는 부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자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를 받들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사리를 모실 절을 창건하기로 결심한 스님은 문수보살께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물었다. “동국에 부처님을 모시도록 하라”는 답을 얻었다.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나, 신라의 어느 곳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스님은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 보냈다. 얼마 후 돌아온 오리의 입에는 한 송이 칡꽃이 물려져 있었다. 자장율사는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것이 부처님의 뜻임을 깨닫고 흰 눈이 쌓여 있는 한 겨울에 칡꽃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영축산 아래 연못에 칡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통도사를 세웠고 1000년 넘게 법등을 이어 오고 있다.

통도사는 크게 상.중.하노전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나서면 영산전과 극락보전 약사전 석탑이 있는 하노전 구역에 들어선다. 이 구역에는 아침저녁 예불의식에 사용되는 사물이 있는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하노전에서 불이문을 지나면 멀리 대웅전이 탑 뒤로 보이고 중노전의 일부인 관음전의 측면 모습이 보인다. 이곳 중노전에는 관음전 이외 대광명전과 용화전 봉발탑 등이 있다.

용화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관음전은 영조 원년(1725)에 초창되었다. 관음전에 봉안된 관세음보살님이 자비로운 표정으로 중생들을 살펴보고 있다. ‘한 떨기 홍련이 해동에 있으니 푸른 파도 속에 신통을 나투네. 엊저녁 보타산의 관자재보살이 오늘아침 도량 중에 강림하셨네.’ 관음전 주련에 있는 내용으로 소동파의 누이 소소매가 섬으로 유배됐을 때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해 섬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이다.

관음전 앞에는 관음전보다 오래된 커다란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관음전을 지나서면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는 상노전 구역이다. 국보 290호인 대웅전 안은 기도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다. 대웅전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향해 유리문이 나 있다.

대웅전 참배 후 통도사의 상징인 금강계단을 찾았다. 자장율사가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이곳에 봉안되어 있다. 금강계단 주변을 돌며 석가모니부처님의 명호한다.

다시 일주문을 빠져 나와 시탑전을 올랐다.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면 탑이 나오고 12개의 큰 법당과 80여 전각이 있는 거대한 통도사 전경과 영축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관세음보살의 따사로운 품처럼 푸근한 영축산에 국지대찰 통도사가 살포시 안겨 있는 형상이다.

 통도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664호/ 10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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