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마조도일 선사 ① 마음이 부처이다

 

馬祖 因僧問 如何是佛 答曰 卽心是佛 又問 如何是道 答曰 無心是道 又問 佛與道 相去多少 答曰 道如展手 佛似握拳

 

마조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부처이다.”

또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무심이 도다.”

또 물었다.

“부처와 도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도는 손을 펴는 것과 같고 부처는 주먹을 쥐는 것과 같다.”

 

 남악회양 선사 선법 계승

중국 선종 ‘실질적 형성’

해설 :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는 한주(漢洲) 시방현(什方縣) 사람이다. 속성은 마(馬)씨이며 고향의 나한사(羅漢寺)에서 출가하였다. 생김생김이 특이하였으며 걸음걸이는 마치 소걸음거리 같고 무엇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호랑이처럼 예리하였다 하여 우행호시(牛行虎視)라 한다. 또 혀가 코를 덮을 만큼 길었으며, 발바닥에는 법륜의 문신 두 개가 있었다. 어려서 덕순사(德純寺)의 자주처적(資州處寂) 스님에게 머리를 깎았다. 다시 유주의 원률사(圓律師)에게 구족계를 받았으며, 선수행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신라 출신의 선승이었던 무상(無相) 대사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높은 절개와 지극한 구도심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두타행과 좌선을 하였다. 당나라 개원(713~742) 연중에 형악(衡嶽)의 전법원(傳法院)에서 선정을 닦던 중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 선사를 만나 지도를 받고 눈을 떴다.

불교의 선종은 달마스님으로부터 시작하여 6조 혜능스님에 이르러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여 남악회양 선사와 마조도일 선사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상적으로나 교단적으로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형성은 남악회양 선사의 선법을 계승한 강서(江西) 마조도일 선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본다.

스님은 문하에 800명, 때로는 1000여 명이 넘는 큰 회상(會上)을 이끌면서도 제자들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깨달음으로 이끈 큰 스승이었다. 스님의 제자 가운데에서 세상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선사는 88명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41), 서당지장(西堂智藏, 738~817),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등과 같은 선사들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선불교의 황금시대로 불리는 당대 선종의 화려한 막을 올린 선의 거장들로 지금까지도 회자(膾炙)되고 있다.

또한 중국 강서성에 위치한 홍주 개원사에서 선법을 편 스님으로부터 유래된 홍주종(洪州宗)은 이후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와 황벽희운(黃蘗希雲, ?~850) 선사와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선사로 이어지면서 중국선의 사상적 표준으로 확립되었다.

마조스님의 선법은 ‘지금 각자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心卽是佛)’라는 언구와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표현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법어도 부처와 도에 대한 대화이다. 부처는 마음이라고 하였으며 도는 무심이라고 하였다. 즉 유심과 무심으로 이야기하는 법어를 듣고 수행자가 유심과 무심의 거리를 따졌다. 즉 부처인 유심과 도인 무심의 거리를 물었다. 마조선사의 대답은 하나의 손을 가지고 손바닥을 펴면 도이고 주먹을 쥐면 부처라고 하였다. 하나의 손이기 때문에 주먹을 쥐나 손을 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지 이름일 뿐이다. 부처든 도든 결국은 같은 손일 뿐인 것과 같다. 즉 유심도 무심도 역시 같은 도며 부처다. 모든 존재의 실상은 있음과 없음의 양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때로는 살(殺)이라 하고 때로는 활(活)이라 한다. 선도 악도 그와 같다. 다만 그 작용이 다를 뿐 모두가 부처다. 이와 같이 마조선사의 선법은 간단명료하다.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

 

[불교신문 2610호/ 3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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