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편의 몸

자비행으로 중생을 구하기 위해 갖가지 방편으로 몸을 변화해서 나타내는 ‘방편현신(方便現身)’ 다양한 형상으로 중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등장하는 ‘보문시현(普門示現)’ 어떤 형상이든지 나타낼 수 있는 삼매에 드는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관음경〉에서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갖가지의 몸을 나툰다. 슈퍼맨, 왕, 출가자, 속인, 남녀, 어린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을 나타낸다. 〈지장경〉에도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온갖 몸을 나툰다. 〈법화경〉의 현일체색신삼매도 같은 내용이다.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온갖 몸을 나투는 삼매에 든다고 할 수도 있고 또는 삼매에 들어서 무수한 몸을 나툰다고 할 수도 있다. 지난번에 US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남자 단식 16강까지 이른 이형택이 유명해졌다. 외국 선수와 경기할 때 국민들은 물론 우리 선수를 응원한다. 그러나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외국 선수들끼리 경기를 할 때는, 선수가 입은 옷, 용모, 경기 스타일에 따라서 어느 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된다. 여자 결승전에서 백인 데이븐포트와 흑인 비너스 윌리엄스가 경기할 때, 많은 유색인들이 흑인 비너스가 이기기를 바랐다. 그녀의 연승행진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미국의 흑백 여자 선수들과 우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한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미국의 흑인 어린이들은 비너스를 보면서 너도나도 그녀처럼 성공해 보겠다고 테니스를 시작할 것이다. 비너스가 스타로 등장함으로써 흑인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었고, 또 유색인종들에게도 희망을 주었다.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도 테니스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박세리, 김미현, 이형택, 박찬호 등도 국민들에게 자긍심과 꿈을 주었다는 점에서 자비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피나는 노력으로 발군의 스타가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도 있지만, 남이 싫어하는 꼴찌, 패배자, 심부름꾼이 됨으로써 자비행을 실천할 수도 있다. 누구나 이기려고 한다. 져 준다면 기뻐할 것이다. 누구나 윗자리에 올라 아랫사람들을 거느리며 부리고 싶어한다. 항상 2인자나 말단이 되어서 입안의 혀처럼 윗사람을 받들어 준다면 좋아할 것이다. 출세자와 마찬가지로 낙오자도 자비행을 할 수 있다. 남들에게 자비를 베풀 때, 너무 물렁하기만 하면 무시하고, 너무 힘을 보이면 무서워한다. 그래서 방편의 몸을 보일 때, 수행자는 혹은 무서운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아주 부드러운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권력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권력자로, 색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미남미녀로, 돈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황금으로 나타난다. 물론 불경의 보살처럼 우리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몸을 자유 자재로 나툴 수는 없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중생들이 좋아하는 모습,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는 표정을 나투는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다. 어떤 이는 화장한 얼굴을 좋아하고, 다른 이는 화장을 가식이나 위선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항상 웃고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긴장하게도 만드는 탄력을 원하기도 한다. 방편의 몸을 보이는 것이, 우리 중생에게 있어서는 방편의 마음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자유자재로 몸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범위 내에서 남을 위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방편현신의 자비라고 할 수 있다. 법주사 주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