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껍데기를 얻은 것에 불과한 고행

삽화=손정은 작가
삽화=손정은 작가

왕이 물었다. “존자 나가세나여! 수행자는 ‘새’의 습성에서 두 가지 배울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두 가지란 무엇입니까?”, 존자가 답했다. “대왕이시여! 새가 생각을 매어두고 신중하고 조심하며 경계하면서 행동하는 것처럼, 수행자는 사념(思念)을 확립하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지키고 보호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에게서 배워야 할 첫 번째입니다. 또 나아가 새는 무언가 먹을 것을 발견하면 무리들과 서로 나누어서 먹는 것처럼, 수행자는 올바른 방법으로 얻은 올바른 소득, 그것이 설령 발우 한 그릇뿐일지라도 그 같은 소득을, 계행을 지니고 청정한 행위를 하는 자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새에게서 배워야 할 두 번째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디가니까야> ‘우둠바리까 사자후의 경’에는 세존과 고행자 ‘니그로다’의 대화가 나온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고행을 통한 금욕을 이론으로 삼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본질로 삼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실천으로 삼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행을 통한 금욕은 어떻게 해야 성취하고, 또 어떻게 하면 성취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우선 ‘고행의 오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 나는 고행을 통한 금욕이 성취되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갖가지 오염들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고행자가 고행을 실천하며, 고행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만족하고 흡족한 마음을 낸다면 이는 고행자의 오염입니다… 고행자가 고행을 실천하며 음식에 대해, ‘이것은 나에게 맞고, 이것은 나에게 맞지 않다’는 식으로 맛의 분별에 빠지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은 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것에 매혹되고 탐착하여 위험을 보지 못하고 여읨을 알지 못하고 즐긴다면 이 또한 고행자의 오염입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니그로다에게 ‘고행의 청정’에 대해 말씀하신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고행을 실천하며, 고행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만족하지 않고 흡족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그만큼 청정해진 것입니다… 고행자가 고행을 실천하며 음식에 대해, ‘이것은 나에게 맞고, 이것은 나에게 맞지 않다’는 식으로 맛의 분별에 빠지지 않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에 매혹되고 탐착하지 않으며 위험을 바로 보고 여읨을 알고 즐긴다면 그는 그만큼 청정해진 것입니다….”

기존의 수행자들은 고행으로 금욕의 생활을 하고, 그를 통해 해탈을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고행을 통한 금욕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고행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신다. “청정한 고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최상이나 본질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그저 겉껍데기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고….”

수행자가 몸과 마음을 제어하는 것은 오염을 일으키는 것들을 제거하고, 청정한 것들을 늘어나게 하는 것이다. 원만한 지혜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

혜인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불교신문 3814호/2024년4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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