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부처님이 한시라도 빨리
사바세계에 오시기를 바라는
중생의 간절한 마음 곳곳에…

속리산 법주사 전경. 모악산 금산사, 금강산 발연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미륵도량으로 이름난 성지다. ‘법주사의 얼굴’로 꼽히는 5층 목조 팔상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속리산 법주사 전경. 모악산 금산사, 금강산 발연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미륵도량으로 이름난 성지다. ‘법주사의 얼굴’로 꼽히는 5층 목조 팔상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속리산 법주사는 모악산 금산사, 금강산 발연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미륵도량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신라 의신조사가 천축국에 가서 법을 구하여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 머물렀으므로 법주사(法住寺)라 한다”고 했다.

이후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떠나 속리산으로 가던 중 소들이 진표율사 앞에 무릎을 꿇고 우는 것을 보자 소 주인이 “이 소들이 어째서 스님을 보고 우는 것입니까?” 물으니, 율사는 “이 소들은 겉으로는 어리석으나 속으로는 현명하여 내가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불법(佛法)을 소중히 여겨 무릎을 꿇고 우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소주인은 “축생도 이처럼 신심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으로서 어찌 믿는 마음이 없겠습니까?”라며 낫을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니 율사는 다시 삭발해 주고 계를 주었다. 

또 진표율사는 제자 영심으로 하여금 속리산 골짜기 길상초(吉祥草)가 자란 곳에 절을 짓게 했는데 현재의 법주사이다. 지금도 법주사 미륵불과 지장보살 틈새 바위 면에는 의신조사가 불경을 실어 오는 모습과 진표율사 앞에 꿇어앉은 소와 소 주인이 머리를 깎고 법을 구하는 모습이 암각화로 새겨져 있어 사실감을 더해준다.
 

6m 크기의 거대한 지국천왕 발밑에 있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청나라 홍타이지가 무슨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6m 크기의 거대한 지국천왕 발밑에 있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청나라 홍타이지가 무슨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 가장 큰 사천왕 발밑을 보면…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은 여덟 개의 다리를 건너 아홉 번 돌아야 법주사에 이르게 된다하여 ‘팔교구요(八橋九遙)’라는 이름이 생겼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은 “법은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는데 사람은 법을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라고 했다. 

천왕문과 사천왕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보은 출신 벽암각성대사가 1624년에 조성했다. 키가 6m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천왕으로, 지국천왕의 발밑에서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청나라 2대 황제 홍타이지가 벌을 받고 있다.

좌측엔 원숭이처럼 머리를 솟구쳐 올린, 주름진 얼굴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우측엔 허리가 눌린 채 검은 모자를 쓴 홍타이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역사는 그 어디에선가 꼭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400년이 지났어도 아직 죄 갚을 치르고 있는 두 전범을 보면 전쟁은 가장 추악한 인간의 욕망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원통보전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1361호로 지정됐다. 남순동자상ㆍ해상용왕상과 함께 모셨다.
원통보전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1361호로 지정됐다. 남순동자상ㆍ해상용왕상과 함께 모셨다.

➲ ‘법주사의 얼굴’ 팔상전

법주사의 얼굴은 국보 제55호 5층 불탑인 목조 팔상전이다. 한 변의 길이가 11m, 높이 65m로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사명대사의 지휘로 1602년에 짓기 시작하여 24년 걸려 복원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급격히 줄어들어 안정감을 주고, 각층에는 창을 달아 내부를 밝게 했고, 꼭대기에는 상륜을 세웠다. 2층 지붕 모서리 공포에는 수호신 야차가 지붕을 받들어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을 나타냈다. 

목탑 뒤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장명등)은 높이 3.3m로 아름답다. 8각의 댓돌에 각 면마다 연꽃을 장식했고, 그 위에 두 마리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선 채 앞발로 연화대를 받들고 있다. 사자는 입을 다물어 선(禪)을, 입을 벌려 교(敎)를 나타냈다. 그 위에 연화대와 8각의 화사석과 지붕, 보주를 얹었다. 또 대웅보전 쪽으로 향하면 보물 제15호인 통일신라 때 조성된 높이 3.9m에 4면에 사천왕이 새겨진 사천왕석등(장명등)이 있다. 

보물 제915호 대웅보전은 중층 건물로 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했다. 전각의 높이는 19m, 길이 31m 폭 22m로 긴 건물이지만 아래층이 높아 수직적인 느낌을 준다. 내부에는 1626년에 조성한 보물 제1360호인 비로자나, 노사나, 석가모니 ‘소조삼불좌상(삼신불)’을 모셨다. 전체적인 모습은 커다란 부처님이 통견의 법의에 네모진 얼굴, 살짝 다문 입술, 내려뜬 눈은 중생을 굽어 살피신다. 

1624년에 중건된 법주사 원통보전은 보물 제916호로 정사각형 건물에 주심포, 사모지붕형태를 취하고 있다. 내부에는 1655년에 조성된 보물 1361호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남순동자ㆍ해상용왕상을 모셨다.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은 네모지고 눈, 코, 입은 가늘게 표현되어 근엄한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가슴에 신령스런 기운이 옷고름처럼 날리고, 종아리는 갑대(甲帶)로 무장을 하여 중생구제 서원을 표현했다. 이뿐만 아니라 청룡의 등을 탄 해상용왕은 연화좌에 꿇어 앉아 바다 속 <화엄경>을 바치고, 거북이 등에서 피어오른 연꽃대좌위에 꿇어 앉아 합장한 채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는 남순동자의 모습은 “믿음이란 이렇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봉의발 가섭형상’. 통일신라 ‘희견보살상’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봉의발 가섭형상’. 통일신라 ‘희견보살상’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 ‘봉의발 가섭형상’ 아닐까?

원통보전 좌측에는 국내유일의 보물 제1417호인 통일신라 때 조성한 희견보살상이 있다. 필자는 ‘봉의발(奉衣鉢) 가섭형상’으로 보고 있다. <미륵하생경>에 부처님은 대가섭, 군도발탄, 빈두로, 라훌라 등 4명의 아라한에게 법이 소멸된 뒤에야 열반에 들것을 부촉했다. 특히 가섭존자에게 “미륵이 세상에 출현하기를 기다리라”고 하셨다. 이런 까닭에 가섭존자가 석가모니부처님의 가사와 연꽃 발우를 머리에 이고 미륵불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을 교리적인 면을 무시한 채 소신공양(燒身供養)하는 희견보살(喜見菩薩)로 부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만약 소신공양의 모습이라면 머리위에 바로 향로를 얹어야 하는데 머리위에는 사각으로 포갠 부처님의 가사를 먼저 얹었다. 법주사는 미륵의 출현을 기다리는 법상종 사찰이기 때문에 <법화경>의 희견보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리에 맞는 이름일 때 신앙적인 감동이 더 크게 전해지는것이 아닐까. 
 

‘마애여래의상’. 6m 크기의 마애미륵불로 쪼그려 앉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마애여래의상’. 6m 크기의 마애미륵불로 쪼그려 앉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 ‘쪼그려 앉은 마애미륵불’

또 법주사에는 큰 바위에 쪼그려 앉은 마애미륵불(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 높이 6m)이 있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 큼직한 코, 두터운 입술, 등 고려 초기의 마애불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미륵부처님이 쪼그려 앉은 모습은 한시라도 빨리 일어나 사바에 오시기를 바라는 중생의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옆 바위에 지장보살을 표현하여 진표율사가 철저한 참회와 실천으로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마정수기(摩頂授記)와 교법(敎法)을 받았음을 나타냈다. 법주사는 미륵도량으로 조형을 통해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부처님이 빨리 오시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용화세계를 표현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루빨리 미륵부처님이 오시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불교신문3684호/2021년9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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