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옥 시인
백향옥 시인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를 견디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열린 특별전에서 추사의 세한도를 만났다. 오래전부터 좋아해서 복사본을 가까이 두고 보곤했는데 손창근 소장자가 기증을 해주어 귀한 그림을 보는 기쁨을 맛보았다 세한도는 예술가이자 금석학자이며 불교학자이고 초의선사와의 교류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명한 그림이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연후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에 빗대어 제자 이상적의 지극한 정성과 신의에 대한 고마움을 그렸다.


머나먼 제주에서의 8년 3개월의 긴 유배 생활은 얼마나 고독한 것이었을까. 화순옹주가 증조모인 명문가 출신의 천재 귀공자로 승승장구하던 추사에게 가시 담을 둘러친 초가에서의 감금 생활의 고초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절망적인 시절에 위험을 무릅쓰고 천만리 머나먼 땅에서 어렵게 구한 120여 권의 서책과?문인들의 편지를 전해준 이상적은 고마운 제자였다. 그 당시 서책 한 권의 가격은 거의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몸이 아파도 마음이 괴로워도 붓을 들었다는 추사의 불굴의 예술혼은 아름다운 세한도를 낳았고 추사체를 확립했다.


세한도 아래에는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흠모한 청나라 문인들의 찬탄이 이어진다. 당대 문인 17명의 감상글과 글씨가 가히 예술적이다. 훗날에 덧붙여진 독립운동가 이시영, 오세창, 정인보 선생의 글까지 이어져 눈시울 붉히게 한다.
손재형 선생이 일본인 수집가의 집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온 얼마 후 그 서재는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귀한 그림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유장한 예술혼이 강물처럼 흐르는 두루마리 앞을 오래 서성이며 보이지 않는 붓을 들어 마음을 보탠다. 세한의 시간은 추사를 변하게 하였다. 유배 가는 길에 들른 해남 대흥사에서 원교 이광사가 쓴 현판을 떼고 자신의 글씨를 걸게 했던 그가 유배가 풀려 돌아가는 길에는 자신이 잘못 보았노라고 인정하면서 원교의 현판을 다시 걸게 했다. 대흥사에 가면 사연 많은 원교의 현판과 추사의 글씨를 볼 수 있다. 말년에 수년간 기거했던 봉은사에는 세상을 뜨기 3일 전에 쓴 판전이 걸려있다. 천재 예술가인 추사의 글씨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라고 한다. 예술을 향한 부단한 정진을 엿볼 수 있다.


추사의 글씨를 따라 사찰 순례를 해보려 한다. 유배 직전에 쓴 기름진 대둔사 무량수전 현판과 유배 시절에 쓴 뼛골의 힘이 살아있는 은해사 무량수전 현판을 비교해 보며 한 천재의 삶의 부침과 역사의 격동을 느껴보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보셨을 부처님의 미소를 뵙고 와야겠다. 그리고 고마움 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 같은 시를 써야겠다.

[불교신문3664호/2021년5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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