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불교신문은 나의 도반 - 조민기 작가


부처님 8대 성지 한창 연재 중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 찾아와

매주 두 차례 불교신문 읽으며
태교했던 아이는 어느덧 네 살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데
스님 나온 신문 구기지도 않아

불교를 접한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외할머니는 손주들의 복을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분이셨고, 기도성취가 빠르다는 방생에도 열심이었다. 엄마한테 혼날 것 같을 때, 병아리를 키우고 싶을 때, 학년이 바뀌어도 친구와 같이 반이 되고 싶을 때, 반장선거가 있을 때면 할머니에게 달려가서 기도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늘 열심히 기도한다며 웃었으나 할머니의 기도는 효험이 없을 때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할머니 기도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이 조금씩 자라났고 기도를 점점 부탁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만남

할머니의 기도를 불신했다 하여 이웃 종교를 기웃거리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종종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눈을 반짝이며 전도를 하고자 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나를 길 잃은 어린 양처럼 바라보며 기필코 자신의 믿음으로 구원해주겠다는 투지가 어쩐지 거북하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자신을 ‘전도사’라고 소개하는 친구의 어머니를 의사나 변호사 같은 워킹맘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이 또한 철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일 뿐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관심 없는 이야기에는 귀를 딱 닫아버리는, 15살 특유의 반항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나는 대중문화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며 성장한 세대였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하여 여러 ‘오빠’에게 열광하느라 바빴다. 오빠들이 나의, 우리의 교주였다. 

불교를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치이고, 남과 나를 비교하며 위축되고, 아닌 척 허세를 부리느라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누적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완벽한 신랑감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도하며 부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자식들의 결혼성취 기도를 열심히 하는 엄마를 발견했다.

영험하다는 절을 힘들게 찾아가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엄마의 얼굴은 늘 확신에 차 있었다. 부처님이 정말 기도를 그렇게 잘 들어주시는 분이란 말인가? 어려서부터 절에 가서 기도할 기회는 많았으나 정작 부처님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졌다. 단, 엄마나 할머니가 가르쳐주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억지로 공부를 하려면 책을 폄과 동시에 온갖 잡생각과 졸음이 몰려오지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밤을 새워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는 것을. 부처님 공부를 하기 시작할 때 나의 마음이 그랬다. 부처님은 정말 알아갈수록 멋진 분이었고 심지어 부처님 주변에도 멋진 제자들이 가득했다.

세상에 이런 분이, 이런 분들이 계셨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부처님이 나의 ‘오빠’가 되었고 나는 부처님의 팬이 되었다. 부처님을 만나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바르고 멋진 삶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영원히 마르지 않을 불법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엄마보다 스님을 더 좋아하는 것일까? 불교신문에 ‘부처님이 머문 8개의 도시’ 연재 중 갖게 된 아이는 스님의 얼굴이 나온 신문은 구기지도 않을 만큼 챙기는 모태불자다. 사진은 5월17일 생전예수재 법문을 위해 서울 국제선센터를 방문한 해남 대흥사 조실 보선스님이 조민기 작가의 아들 김정산 군과 자리를 함께한 모습.
엄마보다 스님을 더 좋아하는 것일까? 불교신문에 ‘부처님이 머문 8개의 도시’ 연재 중 갖게 된 아이는 스님의 얼굴이 나온 신문은 구기지도 않을 만큼 챙기는 모태불자다. 사진은 5월17일 생전예수재 법문을 위해 서울 국제선센터를 방문한 해남 대흥사 조실 보선스님이 조민기 작가의 아들 김정산 군과 자리를 함께한 모습.

태교의 스승이 되어준 불교신문

불교계 소식을 확인하고 기획특집이나 관심 있는 내용이 등장할 때만 눈을 주었던 불교신문이 스승이자 도반이 된 것은 아이가 생긴 후부터였다. 불교신문과 인연을 맺은 것은 ‘부처님이 머문 8개의 도시’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였다. 한창 연재 중일 때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가 찾아왔다. 참으로 감사했다.

그때부터 뱃속 아이와 함께 부처님의 삶 속 흔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해하고 이를 글로 풀어가는 것이 나만의 태교가 되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카필라 왕국부터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까지 책으로 읽고 마음으로 여행하며 글로 옮겼다. 글쓰기를 마치면 눈앞에 떠올랐던, 부처님의 삶을 빛낸 중요한 순간들을 삽화 작가에게 이야기했고 견동한 작가가 그려낸 장면을 보며 홀로 감동하기도 했다. 

아이는 모태 불자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났다. 아이가 태어나면 함께 절에 다니고 싶다는 발원을 하며 일주일에 두 번씩 오는 불교신문을 꼼꼼하게 읽었다. 1년 가까이 불교신문을 챙겨보면서 월별, 계절별 불교의 중요한 날들과 행사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때야 비로소 아주 기본적인 상식을 갖춘 불자가 된 것 같았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부처님이나 불교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아주 곤란한 질문만 아니면 대답해 줄 자신감도 생겼다. 무엇보다 큰 스님들의 법문과 불교의 역사 그리고 내가 모르는 여러 경전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불교신문은 그 어떤 태교책보다 도움이 되었다. 멀리서 찾아온 반가운 친구를 만나듯 집에서 불교신문을 받아보며 나는 우리 불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찬찬히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나 엄마가 되었다. 

육아 동반자…불자의 자부심

아이를 가졌을 때도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으나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 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엄마라는 존재가 빈틈없이 들어섰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함과 고단함이 늘 함께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치였다. 아이 곁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자 충전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다 보니 뉴스도 아득한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곤 했다.

그런 나를 현실로 데려오는 유일한 매체가 바로 불교신문이었다. 신문을 펼쳐 읽는 순간만큼은 세상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구독의 힘, 한 장의 불교신문이 한 명의 포교사라는 문구를 그때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불교신문은 나의 육아 동반자이다. 

엄마가 되고 난 후 가장 감동적인 일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영유아 수기 법회 ‘부처님과의 첫 번째 만남, 마정수기’에 동참했을 때였다. 생후 100일부터 만 3세의 아가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법당에 모여 부처가 될 것을 약속받았을 때의 기쁨과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아이가 생긴 후부터 영아 수계를 통해 아이에게 불연을 맺어주고 싶다는 발원을 했었다.

육아 관련 SNS를 볼 때마다 이웃 종교의 엄마들이 출산 후 아이와 함께하는 첫 외출이 영유아 예배나 세례라는 글을 볼 때마다 부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불자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다들 비슷한 마음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법당에 갓난아기를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정수기 법회에 동참한 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법회가 끝나자 도량을 가득 메우고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법당 아래로 달려와 손자, 손녀의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있는, 흥겹고 떠들썩한 풍경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때 새로운 서원을 세웠다. 아직 어린아이의 엄마로, 불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확신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작년 말부터 마정수기를 받은 아이의 엄마 다섯 명과 함께 매월 소정의 금액을 모으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이 장차 부처가 될 것을 약속해주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엄마들과 뜻을 모은 것이다. 일정 금액이 모이면 아이들을 위한 곳에 회향하기로 약속했다. 작은 걸음이지만 이미 실천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나와 엄마들의 신심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매달 확인한다. 

불교신문에 바라는 점

불교신문을 읽으며 태교를 했던 아이는 어느덧 네 살이 되었다. 아이는 엄마가 신문을 읽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데 신문지를 가지고 놀이를 할 때면 스님의 얼굴이 크게 나온 페이지는 구기거나 찢지 않는다. 한 번은 할머니가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을 펼쳐놓고 김칫거리를 다듬다가 스님 얼굴이 있는 곳에 흙이 묻었다며 아이에게 한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그저 웃고 지나칠 수도 있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아이가 부처님과 스님을 알아가는 것이 기특하고 신통하여 감사한 마음이다. 

태교를 함께했고 지금은 육아를 함께하고 있는 불교신문에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 아이를 갖고자 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와 아빠를 위한 좋은 이야기와 소식들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를 위한 명상과 태교, 육아에 지친 엄마와 아빠를 위한 위로와 격려 등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랑비에 젖어 드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한 걸음씩 불법의 바다로 풍덩 빠지게 될 예비 엄마 아빠들이 분명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닮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많은 엄마와 아빠들에게도 부처님의 그윽한 향기가 담긴 불교신문이 좋은 도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조민기 작가 이미지.
조민기 작가

조민기 작가는…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부처님의 능력과 외모를 동경하여 불자가 되었고 경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멋진 남성들에게 반하여 불교 작가가 되었다. <경전 속 꽃미남 – 부처님의 십대제자> <그녀는 다시 태어나지 않기로 했다 – 붓다를 만난 여인들>을 출간하였고 불교신문에 ‘불교를 빛낸 장자들’ ‘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등을 연재했다. 현재 BBS 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에서 ‘윤회를 끊은 사람들’에 출연 중이며 그 외에 저서로는 조선 시대를 이끌었던 절대자와 권력자의 흥미진진한 성공과 실패를 담은 <조선 임금 잔혹사>와 <조선의 2인자들> <조선의 권력자들> 등이 있다. 

[불교신문3607호/2020년8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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