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인공지능 시대 불교 무엇을 할 것인가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불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좌담이 지난 7월24일 해인총림 해인사 선림원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윤세웅 전 야후코리아 대표, 해인사 승가대 학감 보일스님, 권희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불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좌담이 지난 7월24일 해인총림 해인사 선림원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윤세웅 전 야후코리아 대표, 해인사 승가대 학감 보일스님, 권희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이 인류사회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학계와 언론에서 4차 산업혁명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술세미나와 보도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본지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한 불교의 역할을 모색하는 좌담을 지난 7월24일 해인총림 해인사 선림원에서 마련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에 대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과 인공지능을 방편으로 불교를 소개하고 학인들을 지도하는 스님이 의견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단순한 공론의 자리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고민한 내용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시대와 불교의 역할을 통찰했다. <편집자>

<좌담자>
보일스님 해인총림 해인사승가대학 학감, 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
권희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전 삼성전자 부사장
윤세웅 보스턴AI 한국 대표, 전 야후코리아 대표

보일스님 = 지금까지 방식과 달리 빅데이터(big data), 딥러닝(Deep Learning), 초연결과 융합 등의 현상을 볼 때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변화는 분명히 진행 중이다.

권희민 교수 = 인류문명사는 붓다, 예수, 마호메트가 출현한 ‘축의 시대(Axial Age)’, 중세, 산업자본 시대를 거쳤다. 지금은 디지털혁명 시대의 초입이다. 아날로그 시대는 문자, 숫자, 소리, 영상이 구분됐지만 삼라만상이 영(0)과 일(1)로 통합된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윤세웅 대표 =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하버드대를 다녀왔는데, 4차산업혁명 보다 AI 논의가 많았다. 1990년대 중반 야후(yahoo)가 시작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질 때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AI가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실생활에 들어오고 있다.
 

해인사 승가대 학감 보일스님.
해인사 승가대 학감 보일스님(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

보일스님 =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 철학과 인문학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라는 형태의 윤리적 문제, 곧 인공지능의 도덕이다. 알고리즘(Algorithm)을 누가 어떤 내용으로 개발할지가 관건이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테크놀로지(technology)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반에 인문학, 종교 등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인문학과 지성적 사유의 부흥기이다. 인문학이나 철학의 신(新)르네상스가 도래할 수 있다.

윤세웅 대표 = 정부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AI가 미국보다 2년 뒤졌다고 하지만, 하버드나 MIT에서는 한국이 4년6개월 뒤졌다고 한다. 철학적 담론도 중요하지만 테크놀리지를 비즈니스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권희민 교수 = 그 부분은 한국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디지털 시대를 빨리 받아들여 비즈니스화 해서 삼성, LG, SK가 성장했다. 그렇듯 AI기술이 뒤쳐져도 비즈니스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

윤세웅 대표 = 정부가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는냐가 이슈이다. 프라이버스(privacy)를 이유로 막아 놓은 게 많다. 데이터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잘못된 데이터가 들어가면 결과가 엉망이 될 수 있다.

빅데이터, 딥러닝, 초연결 등
인공지능 기반 변화 진행 中
석유만큼 중요한 ‘빅데이터’
0과 1로 통합된 디지털 혁명

보일스님 =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병력(病歷)이 거래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윤리적 문제가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 4차산업 혁명 시대에 빅데이터는 과거 산업시대의 동력이었던 석유만큼 중요하다. 딥러닝의 핵심도 알고리즘보다 데이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부족하고 관리도 소홀한 것 같다.

윤세웅 대표 = 데이터를 비즈니스화 하는데 기획력이 필요한데, 불교의 유식(唯識)이 대안이 될 수 있다. AI가 불교에게는 대중에게 깊숙이 다가갈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왜냐하면 유식사상이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많은 의미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보일스님 = 불교의 유식 전통에서 이해하는 인간의 인식체계와 딥러닝의 구조와 작동원리는 매우 유사하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오감(五感, 인터페이스) 즉 전 5식인 감각을 통해 얻은 외계의 개별 정보들을 자상(自相)이라고 하고, 제6식에서 그 개별 정보들에 대해 비교하고 분류하여 공통된 형태의 패턴들만 인식해 정리하는 것을 공상(共相)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딥러닝’이 하위 층수에서 비교 분류된 데이터들에 대해 상위 층수에서 공통된 ‘특징값’을 찾아내는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유사성은 유식전통의 스승들이 인간의 인식 구조 자체에 대해 치열하고 집요하게 수행하고 연구해 체계화시킨 결과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식 흐름이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메커니즘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윤세웅 대표 = 불교철학에서도 테크놀로지 쪽으로 많은 영향을 주면 좋겠다. 인터페이스를 이야기 했는데 머신러닝은 인간의 시각(視覺)과 동일한 수준이다. 인공지능 스피커도 굉장히 빨리 학습한다. 청각(聽覺)이다. 다음은 촉각(觸覺)인데 완벽하지 않지만 절반 정도 왔다. 냄새를 맡는 취각(嗅覺)과 맛을 느끼는 미각(味覺)은 머신러닝에는 없지만 돌릴 수 있는 단계다.
 

권희민 서울대물리천문학부 교수(전 삼성전자 부사장)
권희민 서울대물리천문학부 교수(전 삼성전자 부사장)

보일스님 = 후각이나 미각도 불가능하지 않다. 유식 입장에서는 이미 정리된 체계다. 과거 유식의 논사(論師)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오히려 ‘자기 인식’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과연 인간처럼 자의식을 갖게 될까? 일반적으로 칠식(七識)정도는 가져야 자의식이 형성됐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것이) 칠식은 갖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불교는 달리 생각한다. ‘나’라는 것 자체를 허구적인 개념체로 이해하는 게 불교의 무아론(無我論)이다. 어차피 제7말나식이 허구적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식이라면, 인공지능이 그 허구적 관념을 갖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오히려 고도의 연산능력과 인지능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공고한 자아의식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막강한 컴퓨팅(Computing) 능력으로 데이터를 대량 확보하기만 하면 성능이 향상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에는 집적된 상태로 바로바로 답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이터를 줄이거나 은닉층(hidden layer)를 삭제하면 인공지능이 공통된 패턴을 인식하면서 찾아내기 시작한다. 데이터를 덜어냈는데 오히려 역량이 더 강화되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윤세웅 대표 = MIT나 하버드에서 어떻게 작용해 아웃풋(output)이 나오냐고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했다. 인간도 갑자기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설명하기 어렵다. 유식의 과정을 통해 나왔을 거라고 예상한다. 알고리즘을 만드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보일스님 = 유식 전통에서도 똑같은 맥락으로 설명한다. 알라야식에 수많은 경험과 기억들이 모두 기억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이나 정보는 잊어버린 것 같지만 실제는 알라야식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완전히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연기법에 의해 인연이 계합(契合)되면 튀어나온다. 원인과 조건이 제공이 되기 때문이다.

윤세웅 대표 = 스티브잡스가 지금 있으면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스티브잡스는 티벳에 가서 명상을 했는데 유식은 몰랐던 것 같다. 야후에 있을 때 새로운 프로젝트 코드 명이 모두 티벳불교 용어였다. 연구자들은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인공지능 시대에 불교는 유식으로 또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권희민 교수 = 유식과 정보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주면 되는가. 농사를 지어 땅이 중요한 시대를 거쳐 자본이 중요한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정보가 중요한 시대로 바뀌었는데 유식과 정보의 연관성을 맺어주면 불교의 역할이 나올 것 같다.

보일스님 = 지금은 초연결의 시대이다. 빅데이터나 유식 이야기는 결국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개별적인 생명체들이 모여 사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연기법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나 마음을 정보의 속성처럼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 과거처럼 소유하거나 경계를 획정 짓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 삶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 유식의 사유는 결국 일심(一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연결돼 있다. 화엄(華嚴)에서도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을 이야기 한다. 결국 하나로 연결돼 있는 시스템이라고 하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윤세웅 대표 = 인공지능 때문에 지구가 더 합리적으로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리소스(resource)를 합리적으로 하기에 더 좋아질 수 있다. 디지털로 책을 만들어 나무들을 보존하거나 자율주행차량 상용화로 탄소배출량도 감소할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 특히 AI가 기여하는 부분이 늘어날 텐데, 불교 쪽에서 깊이 들어와 줘야 한다. 불교는 AI시대를 리드할 수 있는 굉장한 찬스가 왔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유식이 본체이다. 누구나 AI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진전되고 철학적인 게 뭔지 궁금해 한다. 불교가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보일스님 = 어려운 불교 용어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격의(格義)이다. 동아시아불교를 격의불교라고 하는데 중국인의 문법으로 압축해 본의(本義)를 드러냈다. 비판도 있지만 중국의 거대 문명에 인도의 불교사상이 이식되고 저변이 확대되는 데 역할을 했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감각을 지닌 언어를 찾아야 한다. 일종의 ‘인공지능 격의’이다. 반론도 있겠지만 ‘과학의 격의불교’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불교는 충분히 과학을 끌어 안을 수 있다. 불교는 결국 고통에 대한 응시이자 관심이다. 싯다르타가 출가하고 붓다가 된 것도 모든 고통에 응시하면서다. 커다란 변화들은 결국 인간의 고통 문제로 귀착될 수 있다. 디스토피아(Dystopia)로 갔을 때 고통으로 귀결 될 위험성이 있다면 선제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욕망, 탐욕, 이기심이 개입되면 인공지능도 고통의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언어체계에 갇혀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중생에 대한 연민이 대승불교라면 중생이 관심 갖고 있는 언어체계와 시스템으로 다가서는 게 맞다. ‘과학의 격의불교’가 필요한 이유이다. 과학의 기준에 끼워 맞추자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충분히 대화 가능한 용어를 찾아야 한다.

인문학과 철학의 新르네상스
알고리즘에 영감 주는 ‘唯識’
낯설고 어려운 불교용어 장벽
현대적 해석 용어 재창조 필요

윤세웅 대표 = 불교가 과학으로 귀결되고 과학은 다시 테크놀로지와 비즈니스가 돼서 일상으로 들어와야 한다. 불교가 과학도 하지만 비즈니스 쪽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관념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 지행일치(知行一致) 해야 한다.

보일스님 = 해인사 주련 중에 ‘즉사즉리(卽事卽理)’라는 가르침이 있다. 화엄의 세계인데 현상세계가 곧 진리의 세계이고, 진리 세계가 곧 현상세계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초연결 시대에 부합한다. 진정한 비즈니스는 이윤과 가치를 함께 창출해 내야만 한다.

윤세웅 대표 = 같은 생각이다. 불교가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더 많은 사람이 유식을 연구해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전달하고,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권희민 교수 = 불교 용어나 단어가 낯설고 어려워 소통하는데 장벽이 높다. 모든 학문이나 종교는 자신의 언어들로 벽을 만들고 있다. 특히 한자를 많이 사용하는 불교는 젊은이들이 다가가기 어렵다. 디지털시대에 불교가 인간 정신 측면에서 좋은 점이 많은데 접근이 어렵다. 현대적 해석과 용어를 재창조해서 쉽게 스며들어야 한다. 심하게 말하면 불교에서만 사용하는 ‘불교사투리’가 있는데, 그러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
 

윤세웅 보스턴AI 한국 대표(전 야후코리아 대표)
윤세웅 보스턴AI 한국 대표(전 야후코리아 대표)

보일스님 = 불교의 지적 전통을 인류의 보편적 문화이며 지적자산이다. 그런데 어려운 용어 때문에 스님들의 문제의식이 사장될 우려가 있다. 계승해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한다. 직렬이 아니라 병렬로 연결해서 전방위적으로 불교용어에 대한 쇄신을 해야 한다.

윤세웅 대표 = 인터넷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 하고 20년을 지나왔다. 앞으로는 AI가 우리 사회에 전방위로 침투할 것이다.

권희민 교수 = 유튜브를 적극 활용해 20~30대의 관점과 언어로 불교를 전달해야 미래가 있다. 다른 종교에 비해 좋은 가르침이 많은 불교의 미래를 이어받을 젊은 20~30대를 타깃으로 유튜버(Youtuber)를 육성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의 격의불교가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유튜버를 발굴하는 콘테스트를 불교신문에서 하면 좋겠다.

윤세웅 대표 = 젊은 사람들의 사고, 또는 AI 기획자, 딥 러닝, 머쉰러닝 담당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수 있는 여러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IT 밸리로 불리우는 판교에서 불교와 AI를 주제로 강연회를 연다면 인구에 회자가 될 것이다. 불교신문과 해인사가 공동주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권희민 교수 = AI는 인간과 다른 방향에서 훨씬 뛰어나다. 다만 인공지능이 참선을 해서 깨달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AI가 작곡하고 기사도 쓰지만 선사(禪師)들이 깨달은 경지에는 가지 못할 것이다. 깨달음은 영(0)과 일(1)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윤세웅 대표 = 인간과 인공지능을 이분법으로 나눠 대결구도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일스님 = 무정불성론(無情佛性論)에 근거해 존재론적 관점을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인공지능이 불성이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수행은 욕망이나 욕구를 거스르는 것이다.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소실시켜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과연 그런 의지를 인공지능이 구현할지 의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이해 또는 자발적 자기희생이 가능할까? 워렌버핏(Warren Buffett)은 평생 축적한 부(富)를 사회에 환원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비합리적, 비논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대전회(大轉回)를 과감하게 실행하는 용기, 직관에 의한 통찰, 기존의 가치 관념을 뒤짚는 것을 인공지능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권희민 교수 = 참선을 할 때 브레인 웨이브(brainwave)를 측정해 어떻게 되나 연구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인공적으로 깨닫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인데, AI와 휴먼의 복합체라 할 수 있다.

보일스님 = 외부에서 영향을 줘서 평정상태에 들어가고 선정에 들어가는 시도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상적 형태의 선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 뇌파를 포착해 자극을 준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존중 여부는 별도의 문제다. 우리가 스승을 존경하는 것이 단지 선정과 경지 때문인 것은 아니다. 수행은 자판기에서 손쉽게 인스턴트 커피나 콜라를 사 먹는 것과는 다르다.

윤세웅 대표 = 불교가 관념으로 흐르지 말고 현실에 다가서야 한다. AI는 작은 현상이 아니다. 현실에 깊숙이 들어오고 개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툴(tool)을 제공할 수 있다. 유식사상을 좀더 쉽게 풀어 젊은이들과 소통하면 좋겠다. AI 업계에 많은 영감과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면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관심있고 눈여겨 볼 것이다.

권희민 교수 =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한국은 빠르게 성장 했고, 지금은 어려움이 있지만 골드만삭스(Goldman Sachs)가 밝혔듯이 북한과 더불어 성장을 할 것이다. 이 때 제일 필요한 정신문화를 불교가 공급해 줄 수 있다.

윤세웅 대표 = 불교에 비유가 많은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식사상을 외국인들에게 이야기 하면 깜짝 놀란다. 불교의 논리를 사회에서 알기 쉽도록 전하면 반향이 클 것이다.

보일스님 =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아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고통으로 귀결될지, 우리 모두의 행복으로 갈지 아직은 모른다. 시대를 읽는 통찰(洞察)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불교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 앞에 던지는 나만의 화두 하나씩은 품었으면 한다.

해인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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