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대종사 원적] 해봉당 자승대종사가 걸어온 길

1954년 강원도 춘천서 출생 열아홉살 해인사서 삭발염의 군대전역 후 봉정암 기도정진 2009년 제33대 총무원장 당선 종단사상 유례없는 최다 득표 소통과 화합으로 불교중흥 원력 8년 총무원장 임기 원만회향 후 백담사 무문관서 두 안거 지내 2019년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국난극복 불교중흥 향한 순례 연속 2023년 43일간 108 대중 이끌고 1167km 인도순례 회향 종단화합 최근까지 대학생포교로 원력 선포

2023-11-30     하정은 기자
2011년 7월 백사마을에서 기초수급자 어르신들을 위해 쌀 포대를 나르는 모습.

“늘 그래왔듯이 종단을 위해 희생한다는 정신으로 봉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주인’이라는 신념으로 떳떳하고 바르게 임하여 희망의 앞날을 열어가십시오. 원로 대덕 스님들의 지혜로움에 공경의 인사를 드리며, 이러한 덕화로써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합니다.” 2017년 10월30일 해봉당 자승대종사가 8년의 총무원장 소임을 내려놓으면서 조계종 종무원들에게 전한 퇴임사다. 1962년 통합종단 조계종이 출범한 이후 총무원장직을 여법한 절차로 연임하고 두차례 임기를 보내고 소임을 원만하게 회향한 사례는 자승대종사가 유일하다. 종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종단을 화합으로 이끌고 불교위상을 끌어올려 불교중흥을 구축해낸 스님이다. 올해로 대종사의 법납 51년. 자승대종사의 반백년 넘는 출가수행자의 삶은 소통과 화합, 전법포교와 불교중흥의 원력 그 자체다.

자승대종사는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열아홉살 앳된 소년의 얼굴로 산문에 든 스님은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2014년 8월 방한한 프람시스코 교황과 만났다.

자승대종사가 8년의 총무원장 소임을 회향하고 두 안거를 지낸 설악산 백담사 무문관 정진은 잘 알려졌지만, 스님의 설악산 정진은 40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1979년 한겨울 설악산 봉정암에서 스님은 당시 3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출가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정진에 들어갔다. 영하 30도를 웃도는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칼바람에 성인 키만큼 눈이 내려 쌓이는 봉정암에서 스님은 하루 네 번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루 8시간 목탁을 치며 정진을 이어갔다.

2019년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에서 한 철을 나며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에 맞섰던 자승대종사의 뜨거운 결기가 사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5개월간 ‘봉암사 정진’ 후 스님은 통도사 동화사 봉암사 등 전국 선방을 돌며 방부를 들였다. 7년여간 선방 수좌로 살다 1986년 자승대종사는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소임을 맡으면서 종무행정을 관할하는 사판(事判)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규정국장 재무부장 등을 거치며 종무행정을 익혔고 수원포교당 삼막사 연주암 주지 등을 역임하면서 가람수호는 물론 대중포교에 본격 매진했다.

1992년 10대 중앙종회의원에 선출되면서 조계종 대의기구에 몸담고 제11대 중앙종회 사무처장, 제12, 13, 14대 중앙종회의원으로 활약하다, 제14대 전반기 중앙종회의장까지 지내면서 종무행정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종도들을 화합으로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였다. 2009년 10월22일 개최된 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대종사는 선거인단 320명 중 317명이 참여한 가운데 290표(91.48%)를 확보하는 쾌거를 거뒀다. 한국불교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다 득표로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이 날 자승대종사는 종도들을 향해 “한 모금의 물을 마실 때도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의 뜻을 거울삼아 큰 책무의 근본을 잊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자승대종사는 “소통과 화합을 근간으로 한국불교 중흥의 기틀을 만들겠다”는 종단 운영기조를 설정하고 총무원 구성부터 파격에 가까운 ‘여야화합’으로 ‘연합집행부’로 구성해 종단안팎에 눈길을 모았다. 2010년 1월 제33대 총무원 집행부 4년 운영계획을 담은 로드맵 발표에서는 침체된 한국불교를 일신할 수 있는 대대적인 혁신안들이 등장했고, 이는 임기내 착실히 실행에 옮겨졌다. 2010년 6월에 조계종 종단사상 최초로 사회갈등 현안에 대한 중재기구로서 ‘조계종 화쟁위원회’를 발족시켰고 2011년에는 전 종도들과 함께 ‘자성과 쇄신 결사’를 이행했다.

자승대종사의 혁혁한 공로와 종단안정의 기로에서 2013년 10월 스님은 94년 종단개혁 이후 첫 연임 총무원장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2014년 1월 제34대 집행부의 관문을 열면서 대종사는 ‘자비와 화쟁으로 이웃과 함께’를 종단운영기조로 삼고 ‘사회와 이웃을 향한 자비나눔행’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2015년에는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발족시켰고, 대중공사가 열릴 때마다 직접 참석해서 각계 각층 대중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종책에 반영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2017년 10월 총무원장 소임을 마친 자승대종사는 조촐하고 소박한 가운데 퇴임식을 갖고 종무원들에게 감사편지로 소감을 대신하며 조계사를 떠났다. 그해 동안거를 맞아 인제 백담사 무문관에 들었고 다음해에도 백담사 무문관 정진을 이어갔다.

2019년 동안거에 결행된 ‘위례 상월선원 동안거 천막결사’는 세상 한복판에 선방을 열어 화두를 참구하는 자승스님의 신심과 원력으로 세상에 울림을 줬다. 8명의 스님들을 이끌고 한겨울 비닐하우스 천막 안에서 ‘하루 한 끼 공양’에 ‘삭발과 목욕금지’, ‘하루 14시간 정진’이라는 청규를 준수하면서 목숨을 건 정진결사에 임했고 원만하게 회향했다. 세상 속 불교가 곧 불교 본래의 길임을 알리고 국민화합과 세상의 평화를 위한 행보였다. 불교계는 물론 전 국민들이 우려하고 외호하면서 한국불교의 지향점과 방향성을 알림으로써 한국불교사상 큰 획을 그었다. 그와 같은 원력은 ‘국난극복과 불교중흥’의 염원으로 꽃피어 ‘상월결사’는 멈추지 않았다.

자승대종사는 상월결사 회주로서 2020년 10월7일 대구 동화사를 출발해서 서울 봉은사까지 20일간 500km가 넘는 긴 구간을 도보로 순례하는 만행결사를 펼쳤다. 2021년 10월에는 “예경과 순례의 마음이 신심과 원력으로 어우러진 전법과 신행문화를 만들기 위해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로 이어진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실행했다. 2022년 2월부터 10월까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평화방생순례를 통해 지역 교구마다 새로운 신행문화를 만들었다. 2023년 2월9일 조계종 종정예하의 증명하에 마침내 43일간 1167km의 상월결사 인도순례의 대장정을 열었다. 이 날 조계사 부처님전에서 자승대종사는 고불문을 통해 “상월의 정진이 불교의 중흥으로 나아가고 모든 생명이 차별없이 사회와 인류가 화합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처님의 길에서 정진하겠다”고 서원했다. 사부대중 108명을 이끌고 자승대종사는 부처님께서 태어나 출가해 진리를 설한 인도와 네팔을 두 발로 걸어서 순례한 여정은 불교는 물론 대사회적으로도 큰 울림과 감동을 줬다. 43일간 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 후 조계사에서 봉행한 회향법회에서 자승대종사는 “부처님 법 전합시다”를 선창하며 미래불교를 위한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총무원장 시절, ‘100인 대중공사’를 통해 대학생들과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한국불교 기둥이 될 대학생 포교의 중요성을 절감한 스님은 인도순례 회향 후 상월결사 대학생전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학생 전법을 위한 기금 마련에도 적극 앞장섰고 지난 10월31일에는 중앙종회의원들에게 불조 혜명을 이어가는 불제자의 사명을 다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전법하고, 혁신할 것을 경책했다. 11월11일에는 상월결사 대학생전법위원회를 통해 대학생 전법기금 150여 억원을 모연해 미래불교 토대를 세워놓아 사부대중의 환호와 찬탄을 받았다. 이 역시 2004년 이래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을 맡으면서 청소년 전법포교에 공덕을 쌓고 2021년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건학위원회 총재를 맡으면서 한국불교의 미래동량을 키워온 원력의 결실이다.

대종사는 열반에 들기 이틀 전인 11월27일에도 교계언론사 데스크들을 한자리에 모아 상월결사의 가치와 대학생 전법포교의 중요성에 진정성을 보여 눈길을 모았다. 1986년 서른 초반에 총무원 총무국장으로 종단에 입문하여, 40여년간 불교중흥 원력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자승대종사의 거룩한 행적과 고귀한 가르침은 큰스님이 떠나고 난 40년, 50년이 지나도 우리 가슴에 오롯이 살아 숨 쉴 것이다.

개미마을에서 연탄봉사를 환하게 웃는 자승대종사.
2015년 레바논 동명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모습.
2009년 33대 총무원장 취임 후 첫 공식행보로 용산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습.
201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소통하는 모습.

■ 해봉당 자승대종사 연보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72년 10월 해인사서 사미계 수지

1974년 4월 범어사서 구족계 수지

1982년 이천 영월암 주지

1984~1986년 수원포교당 주지

1986년 총무원 교무국장 규정국장

1987년 이천 영월암 주지

1988년 용인 대덕사 주지

1991~1994년 안양 삼막사 주지

1992~1994년 제10대 중앙종회의원

1994~1999년 과천 연주암 주지

1996~1998년 제11대 중앙종회의원

1997~2002년 과천종합사회복지관장

1999~2000년 총무원 재무부장

2000~2005년 제12대, 제13대 종회의원

2004년 2월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

2005~2006년 총무원 총무부장

2006~2008년 제14대 중앙종회의장

2009~2013년 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

2013~2017년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2011~2017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

2019년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2020년 국난극복 자비순례

2021년 삼보사찰 천리순례

2021년 동국대 건학위원회 총재

2022년 평화방생순례

2023년 상월결사 인도순례